시를 잊은 내가, 시를 찾은 이유

- 결코 '쉬쉬' 하지 않고 '시시' 하지 않던 독서모임 -

by 푸시퀸 이지

스타벅스(정자역점)를 지나치면 떠오르는 무리.
어제 분당나비독서모임 37번째 문을 열었어요.
첫째 주는 자유도서, 셋째 주는 지정도서로 만나는데요.
바쁘다고 잊고 산 것들이 많지만, 특히나 이 부분...


정재찬의 <시를 잊은 그대에게>로
​삶을 구워 삶은 '시', 시를 찾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 2015년도에 이 책을 읽으신 시리우스님은요. ​

20대고, 30대고, 50대고,,, 그놈의 '청춘'이란 단어가 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왜 늘 '청춘' 타령을 하는 것일까,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영화 <봄날은 간다>의 명대사. 어떻게 사랑이 변하냐고. 이 부분을 다룬 문장이 청춘 타령을 졸업시켰다.


"상우를 흔드는 것은 은수나 은수 같은 여자도, 아니 여자의 갈대 같은 마음도 아닐뿐더러, 재력이나 권력도 가정환경도 시대배경도 아니었다. 그 자신이었다. 인생과 운명의 법칙이었다. 잔인할 정도로 엄정한 이 자연의 법칙, 그 이치를 체화하고 깨닫는 것은 비록 처절하고 허무하지만, 그것을 승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성숙과 관용이 찾아온다."
- 가난한 갈대의 사랑노래 파트 일부, 22p -


정재찬의 창을 통해 바라본 시가 내 나이에 맞게, 가을로 넘어가도록, 그냥 흘러가도록, 그 과정에서 성숙한 나를 만나도록 했다. 학창시절 '자체발광', '시리우스'라 불리던 나, "저 별은 나의 별.."하며 별타령 하던 그때 그 추억에 머물게 했다. 청춘을 졸업하니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더 큰 의식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와 닿는 시는 박노해의 <다시>다.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 눈물은 왜 짠가 파트 일부, 95p -




2. 몸이 녹초가 되어 간신히 나오신 루시님은요. ​

책은 진즉 다 읽었다. 강의는 얼마나 더 재미있을까, 라고 생각했다.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공감되는 시는 다 다르다. 지난 주 비행기 타고 부모를 찾아 뵈었다. 내가 부모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매 끼니마다 영양에 맞춰 5일 꼬박 요리해 밥상 차려드렸다.

집에 돌아와 그대로 뻗었다. 오늘 모임에 나와 귀깨적으로 귀만 간신히 열겠거니 했다. 부모에게 또 그렇게? 아니 더는 못할 것 같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곤 책을 다시 펼치니 김소월의 <부모> 시가 가슴에 박힌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도 되어서 알아보랴?"

- 아버지의 이름으로 파트 일부, 194p -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친정엄마. 그 와중에도 아들 딸 잘 키운 자부심을 말하고 다니는 엄마. 엄마 인생은 그 자체가 희생이다. 난 내가 행복한 일 하며 살아야겠다. 그게 자식을 위한 길일 터.



3. 30대 청년이지만 생각은 제곱근인 원주석님은요.​

시를 배우던 학생 때가 생각났다. 책의 해설을 읽다보면 빠져들게 된다. 시를 다룬 책에서의 차별성, 다음 시들을 보니 차별화가 이해되었다.

정호승의 <슬픔이 기쁨에게> 시를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이라 해석했다. 내게 있어 슬픔은 무력감, 후회를 가져다 주는 단어였다. 슬픔을 이겨낸 경험치가 쌓였다. 이젠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슬픔'은 기꺼이 받아들이는 단어가 되었다. '슬픔'은 '기대감'으로 넘어가는 단계일 뿐이다.

정호승의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시를 두고는,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엄마와 동생내외를 돌보며 내가 통로가 되어주고자 했다. 헌데 동생이 그런다. 이젠 형 하고 싶은대로 살라고. 분가를 자처했다. 이 문장이 와닿는 이유다.


"아니, 굳이 다른 이에게 희망이 될 각오까지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자신에게 스스로 희망이 되는 사람이 되면 충분하다. 그러다 보면 타인에게 희망이 되는 존재, 축복의 통로로 성장할 수도 있다."
- 눈물은 왜 짠가 일부, 97p -

정작 내가 행복해야 희망도 만들어 준다. 취업 고민하는 20대, 주거 걱정하는 30대, 둘 다 떠안은 10대, 인구 노령화... 그들에게 어떤 희망을 줄까. 시를 잊은 건 감정을 잊은 것이었다. 이제 그 감정을 찾아 나선다.




4. 문학공부를 했지만 시가 별로였던 이반님은요.​

'시'라는 건 모호한데다가 낭만이다 사랑이다를 운운하니 그닥 좋지 않았다. 이제 나이 50 되니깐 시에 눈이 떠진다. 헌데 시를 해석하는 책은 또 그닥이다. 내 시각에 방해 되니깐.

서문을 보는 순간 그러던 내가 딱 걸려 들었다. 저자는 감수성이 많고 누구에게나 편안히 다가가고 있었다. 시를 애써 설명하려 들지 않았다. 광고, 영화, 음악...등등을 총동원해 레시피를 만들어 쉽게 읽히도록 조리를 잘했다. 시 자체 맛은 퇴색될 수 있겠지만.

책 후반부는 시보단 시인에게 흐름이 쏠렸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시, 시인만 알았던 시를 알게 되었다. '시'가 주는 단 한구절의 충격으로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난 신경림의 '갈대'란 시를 워낙 좋아한다. 책 첫 파트에 떡하니 나와있어 내 마음을 들키는 듯했다.

난 '별'을 좋아한다. '별'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과 대화하니 외로운 사람이라 한다. 사막에서 근무하던 시절, 별이 이불처럼 쏟아져 내리던 그때가 기억났다. 알퐁스도데의 별, 황순원의 별, 독일인의 사랑...'별별' 것이 다 기억나더라.

김춘수의 <강우> 시가 가장 가슴이 아팠다. 특히 이 부분.

"이 사람이 갑자기 왜 말이 없나,
내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온다.
내 목소리만 내 귀에 들린다.
이 사람이 어디 가서 잠시 누웠나,
옆구리 담괴가 다시 도졌나, 아니 아니
이번에는 그게 아닌가 보다."
- 떠나가는 것에 대하여 일부, 71p -




5. 그냥 흘려보낸 가사가 많았다던 kkang님은요.​

무심코 흥얼대던 가사를 책에선 다 잡아냈다. 시 해석을 읽자니 우린 학교에서 주입식 교육으로 시를 배웠구나 싶었다. 패러다임에 갇혀서. 현시대를 사는 학생들도 우리처럼 주입식으로 시를 배우는 건 아닌지.

시 한 편을 두고 1시간 동안 배경과 의미를 심도있게 나눈다면 입시지옥이란 느낌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읽는내내 마음이 따뜻해졌다. 다른 사람이 해석한 시를 본다는 게. 우리 모두 같은 시를 두고 다르게 해석할 게 아니겠는가.

제3자의 해석이 궁금하고 또 소중하다. 하여, 이 시를 또 다른 이가 해석할 수 있도록 책을 누군가에게 선물하기로 했다. 박목월의 <배경>이란 시에서 깜짝 놀랐다. 시보다도 박목월 부인에게 놀랐다. 박목월을 흠모하던 여성과 박목월을 위해 한복과 생활비 봉투까지 내밀다니.

얼마나 남편을 사랑하고 자기통제와 지혜로운 여자였으면 양심의 가책으로 절로 헤어지게 만들었겠는가. 그 배경을 알고 시의 끝부분을 보니... 아~~


"...
그럴 때마다 나의 등 뒤에는
수평선이
한결같이 따라온다.
아아 이 숙명을, 숙명같은 꿈을,
마리아의 눈동자를
눈물어린 신앙을
먼 종소리를
애절하게 풍성한 음악을
나는 어쩔 수 없다. "
- 그대 등 뒤의 사람 파트 일부, 118p -




6. 나오지 못할 상황에서 짠~ 등장하신 시크릿님은요.​

도슨처치의 <깨어 있는 마음의 과학>을 읽으셨는데요.


우리몸 뉴런에서 전기장이 발생하면 에너지가 생성된다. 그 에너지는 주변에 영향을 미친다. 가능성의 장인 셈이다. 생각은 에너지이자 곧 물질이 된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은 염색체 텔로미어 길이가 길어 노화가 빨리 온다.

즉, 유유상종의 법칙, 내가 던진 화살 그대로 되돌려 받는다는 것, 인생은 100% 나의 책임이라는 것.

'거그'와 '허그' 자매가 나온다. 거그는 부정적이라 공격 당할까봐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 허그는 긍정적이라 부스럭거리는 소리에도 낙천적이다. 과거엔 짐승에게 잡아 먹힐까봐 긴장하며 살았다. 헌데 허그가 잡아 먹힌다. 그래서 인류의 영향은 거그라는 설이 나온다.

생각, 감정, 행동은 우리가 의도한대로 결론이 나오는 법이다. 과학자 조차 의도한대로 결과가 성립한단다. 일체유심조 아니겠는가.



7. 훌륭한 말씀들, 듣기만 해도 좋았던 저는요.​

책을 처음 봤을 땐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가 무단침입!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 그대 등 뒤의 사랑 파트 일부, 109p -


황순원 아들이면서, 작곡가 꿈도 접고, 고3 때 지은 시라는데, 저자의 말처럼 '매일같이 변함없이 일어나서 사소해 보일 뿐,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굉장한 일이 또 있느냐(111p)'는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 시.


이젠 이 시가 마음에 똬리 틀고 앉았다. 산문 같기도 한, 그 길고 긴 문장 중 요 부분. 그때 그때 다른 상황, 그때 그때 다른 마음이 시도, 문장도 다채롭게 건져 올린다.

"나는 국물을 그만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 댔습니다....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 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
- 눈물은 왜 짠가 일부, 85-86p -


슬퍼할 줄 알면 희망이 있다고, 남의 고통에 대한 공명을 전하고 있다. 난 영혼 보다는 즉답이 나오는 것만 쫓고 산 건 아닌지.

'시'에 일단 발 담그면 이렇게 눈 앞에 그림이 생생한 것을. 냄비 같은 근성이 투가리로 변질되는 것을. 거기까지 가는데 뭣이 그리 발목 잡은 건지.

아부지, 엄마가 살면서 늘상 하는 레파토리, 내가 흥얼대는 유행가 가사, 우리 일상의 리듬... 그게 다 '시'고 그 안에 사는 우리가 다 시인 아니겠는가, 하며 완독 못한 합리화로 마무리한다.

자신 얼굴 반토막을 무릅쓰고 셀카 찍는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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