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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장에서 론세스바예스_의외의 피레네

온몸으로 걷다

by 푸시퀸 이지

산티아고 순례길 시작점은 포르투갈 길, 은의 길, 마드리드 길 등 여러 개다. 난 가장 보편적인 프랑스길 800km를 택했다. 가장 많이 이용했다는 건 그만큼 길도 고르고 잠 잘 곳과 먹을 곳도 양지 바를 테니. 지난 날 나폴레옹이 걷던 숨결도 훔칠 겸. 프랑스 생장피에드포르(ST JEAN de PIED DE PORT, 이하 '생장')부터 스페인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까지 평균 25.1km다. 그 유명한 피레네산맥 고도를 감안하면 27km다.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를 위해 몇 달 전부터 걸음 연습을 해야 된다, 몇 달은 고사하고 하루 20km 이상은 걸어봐야 한다, 등의 말들을 결국 듣지 않고 왔다. 일상에서 축적된 근육만 지참 했을 뿐. 뇌가 아닌 몸을 믿기로 했다. 내 몸에 승부수를 걸었건만 막상 도착해서는 뇌에 말렸다.


프랑스, 언제 여길 와 보나 싶어 싸돌아다녔다. 성모 발현지인 루르드 성당을 방문했다. 낮에는 기적의 샘물을 체험하고 밤엔 촛불미사(21시)를 드렸다. 다음 날은 미처 보지 못한 루르드 성당 지하를 샅샅이 훑었다. 생장으로 넘어와 첫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코골이, 이갈이, 잠꼬대, 별별 서라운드가 밀폐 공간을 밀어냈다. 새벽 1시부터 뒤척이다 4시에 일어났다. 시차는 우리나라보다 8시간을 빽(back) 했건만.


내가 미쳤지 무슨 관광을, 뇌가 요동 쳤다. 가만 있어 보자. 아이를 옆구리에 끼고 잔 세월 15년, 사택 등 나 혼자 잔 세월 6년. 다 늙어 남녀혼숙 열댓명 합방이라니. 더 한 소리에 내가 잠을 못 자는데 정작 난 2층침대 삐그덕 소리가 미안해 복도로 기어나오다니. 새벽이 며칠처럼 느껴졌다. 첫 날 죽음의 코스 '피레네 산맥'이라는데 지금 이 순간이 순례길이요, 알베르게에서 죽게 생겼다.


불안이 엄습했다. 원초적 본능의 소유자로서 인격보다 성격이 치솟았다. 가슴 안에도 숨 막히는 산맥이 들어섰다. 성취욕이 강해 그 점 뜯어 고치려고 여기 왔는데 첫 날 완주에만 눈이 뒤집혀 신경이 곤두섰다. 아침 6시30분. 자기신뢰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둠은 불안을 더했다. 사지가 떨렸다. 낭떠러지에서 손가락으로 버티는 사람마냥 등산스틱을 부여잡았다.


온몸의 긴장은 하늘을 바라봄과 동시에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해가 떠오르면서, 시야에 풍경이 들어차면서 허벅지, 엉덩이, 종아리, 코어, 등 근육에 순차적으로 자연이 들러붙었다. 걷는 건 다리가 아니었다. 달, 별, 해가 일렬종대로 모였다. 휴대폰으로 사진 열고는 액정에 뭐가 묻은 줄 알았다. 달, 그 밑에 별, 그 밑에 태양. 내 머릿속에 이들은 따로국밥이었다. 삼자대면 풍경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늘은 내게 '공존'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었다.


밑밥 깔은 태양은 서서히 주전 선수로 뛸 준비를 했다. 해가 떠오르는 속도에 발을 맞추었다. 다리가 무거워질수록 노랑머리 태양은 점점 백발이 되었다. 하루살이 태양은 내게 하루를 온전히 살라고 했다. 자신이 매일 다르듯 날마다 거듭나라며.


멋모르고 오르니 첫번째 휴식처 '오리손 산장'이 나왔다. 불안하면 뭔가를 씹는 버릇이 있다. 그 버릇도 뜯어 고치려고 여기 왔는데 들어갈 자리가 없을 정도로 뱃속은 이미 든든했다. 출발 후 두 시간도 안 되어(8km) 방광까지 빵빵했다. 여전히 긴장하고 있었다. 화장실이 급했다. bar에 들어가 세요(순례자 여권 스템프)니 스페인 음식이니,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몸상태, 산맥을 넘느냐에만 골몰했다. 융통성 없는 것도 고칠 점인데 첫 날부터 줄줄이 다 걸리네. 지나고 보니 멋진 곳이었던 '오리손' 내 눈엔 화장실만 보였다.


초반에 예습한 경사길과 비워낸 방광으로 완만한 포장도로는 가뿐히 걸었다. 저 멀리 마리아상이 보였다. 마음이 좀 누그러지면서 옆길로 샜다. 손가락 만하게 보이던 마리아상은 다가가니 나를 안을 것만 같았다. 오리손봉까지 오르며 뭉쳐 있던 근육을 잠시나마 풀 수 있었다.


피레네 산맥. 여기저기서 하도 죽음의 산맥이라는 통에 오기 전에 책도 덮고 유튜브도 접었다. 백지상태다. 몸이 길을 읽기로 했다. 올 게 왔다. 계속 오르막이다. 저 머얼리 산, 개미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언제 오르나 싶을 때마다 양들이 능선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양은 찍찍이 신발을 신은 것처럼 가파른 경사에 잘도 붙어 있었다. 산티아고를 다녀온 후 집어든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에서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해 또 놀랐다.


"산 중턱에서 풀을 뜯고 있는 염소 떼들이 보였다... 문득 녀석이 어떻게 그곳까지 올라갔는지 어떻게 내려올 것인지 궁금했다...주위의 모든 것은, 불안하지만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인 평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평화는 여전히 계속 자라나고 생성되는 과정 속에 있었다...자연 역시 계시를 찾아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51-52p)"


길에 마중나온 양도 있었다. 차도에서 사람이 건널 때마다 차를 멈추고 미소로 기다려주던 스페인 사람들이 생각났다. 나도 따라했다. 한쪽 길로 피해 미소 지그시. 양들에게 다가갈수록 '평화'가 맴돌았다. 아흔 아홉 마리의 양과 한 마리의 나. 이 길을 걷기까지 난 길 잃은 양과 같았다. 정작 길을 찾아주는 건 아흔아홉이 아닌 한 마리 양이다. 길에서 길을 찾은 듯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오를수록 공존, 평화, 고요의 농도는 짙어만 갔다. 내 곁을 에워싸는 산맥과 생명체들로 빽이 생긴 것처럼 든든했다. 높게만 바라봤던 산과 구름은 나와 눈높이를 같이 했다. 산과 나 자신이 동일시 되었다. 어떤 일도 해내겠다 싶었다. 날 응원 했던 사람들이 큰 바위 얼굴처럼 산맥 하나하나에 걸쳤다. 그 힘에 또 걸었다.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라더니 길도 마찬가지였다. 다리가 아닌 자연으로 걸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루하기 짝이 없던 길이 걷는 게 체질인가 싶을 정도로 자연의 끌어당김은 놀라웠다. 입에 담을 수도, 입을 닫을 수도 없는 위대한 존재가 끝도 없이 펼쳐졌다. 털 끝 하나도 모두 다른 우주의 생명체를 느꼈다. 길도 나무도 하늘도 구름도 어디 하나 똑같은 게 없었다.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이 이럴진대 내일과 모레, 앞으로의 순례길은? 희망은 이럴 때 쓰는 단어였다. 설렘은 이럴 때 떨어지는 콩고물.

나무도 발바닥 찍찍이로 능선에 꼿꼿하게 서 있다



어려운 코스라 그런지 대피소가 보였다. SOS 버튼도 군데군데 보였다. 초입 오리손에는 알베르게도 있었다. 택시 부르는 곳까지. 이토록 유혹이 널렸는데 자연을 맛 본 이상 걷지 않았다면 십리도 못 가 발병 날 뻔 했다. 드디어 정상(뢰푀더 안부)이다. 고도 1,450m. 여기까지 오르는 동안 바람이 거셌다. 얼굴에 끈 바짝 조인 모자가 날아다녔다. 바다로 착각할 만큼 바람은 파도 같았다. 축복의 소리였다. 빗물이 아닌 공기로 땀을 닦았으니. 정상에 올라서야 긴장이 풀렸다. 때마침 쉼터에는 외국인들로 앉을 자리가 없었다. 신발 양말 벗어 던지고 자연에게 다가갔다. 세찬 바람에, 능선에, 굴러 떨어질 것 같아 아찔 했지만 내몸 렛잇비.


오르막에 막을 내린 정상_스페인어 알토 데 레푀데르/뢰푀더 안부(바스크어), 돌아가는 내리막에서 만난 산살바도르 예배당


이젠 무릎이 긴장 할 시간, 내리막길이다. 오기 직전 오른쪽 무릎이 말썽이었다. 오늘도 다리 모양에 따라 무릎이 삐그덕 댔다. 인공미 없는 흙길로 내려가고 싶지만 첫 날이라 최대한 몸을 사렸다. 오른쪽 포장도로를 택했다. 무릎 보호대를 장착하고 스틱 길이를 늘렸다. 그러고 보니 종일 스틱에서 손을 떼지를 않았다. 쵸컬릿과 빵, 과자, 단백바를 꺼내 먹을 때 빼고는. 심호흡과 한숨이 구분되지 않는 상황에서 숨이 턱 막혔다. 오르막에서 보던 자연과는 또 다른 장관이었다. 오감으로 호흡 했다. 그러고 보니 프랑스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스페인(나바라주)으로 넘어갔다. 국경이란 게 그런 건가. 둘이 하나로 스미는 것. 관계도 너나 구분 없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었으면 좋겠다.


론세스바예스, 목적지에 도착했다.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 수도원 공립 알베르게로 쾌적하고 수많은 외국인과 함께라서 좋았다. 헌데 수십명이 함께 자니 서라운드 볼륨이 벌써부터 걱정 됐다. 하늘은 걷는 고통 밀어내라고 잠 자리 고통을 준 건가. 자연의 힘으로 걸었듯이 '자연' 죽부인이라도 끼고 자야겠다. 알베르게가 예뻐 그 자체를 자연으로 보자. 나는 자연의 일부.


인근 식당에서 '순례자 메뉴'라는 걸 처음 먹었다. 애피타이저 콩스프, 본메뉴 닭, 후식은 아이스크림이었다. 내 다리를 축복하듯 닭다리 하나가 접시에 척. 온몸으로 걸었는데 다리만 있는 게 서운했다. 숙소에 들어와 1층 자판기에서 요거트 하나 뽑아 먹고, 크로와상 두 개를 더 먹었다. 피레네 산맥 때문인지 불안이 덜 가신 건지 먹어도 먹어도 배가 차질 않았다. 산맥을 넘어선 내 몸이 그저 기특했다. '올라, 부엔 까미노' 인사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걸 보니 몸과 맘이 어느 정도 풀렸다.


오기 직전 3시간 걷기 연습 하고는 물집, 굳은살, 무지외반, 발볼 염증, 발가락 상처, 무릎, 고관절, 허리 통증이 생겼다. 이런 게 기적인가. 자연은 '통증'을 잊게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첫인상은 내 가슴을 부풀렸다. 자신감 버블로. 방심은 금물이다. 영화 더 웨이(The Way)는 순례길 떠난 아들이 생장에서 죽어 아버지가 그 길을 대신 걷는다. 무게감 있는 가벼움으로 긴장의 끈을 끝까지 놓지 말자.


동식물과 사람, 길 위에서 하나가 된 우리.

모두가 자연인 풍경을 꿈엔들 잊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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