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으로 걷다
어제 피레네 산맥을 넘었지만 잠을 또 설쳤다. 음식 남기면 배가 불렀냐는듯이 고생을 덜 했나 싶었다. 먼저 맞은 매에 매를 덜 맞은 게다. 자신에게 가혹했던 나 자신을 만났다.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는 밤 열 시부터 오전 여섯 시까지 강제 소등 한다. 잠 잘 기회를 충분히 줬건만 못 찾아 먹는 걸 보면 예민한 사람임에 틀림 없다. 혼자 지낸 사람이 수십 명과 함께 잔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순례길 오기 전에 점검할 건 걸을 수 있느냐보다 잘 잘 수 있느냐였다. 새벽은 나를 복도로 이끌었다. 뒤척이는데 미안해서가 아니라 내 시간이 아깝다는 이기심의 발로였다. 인간의 본능은 치솟고 인간의 진화는 역행 했다. 탄력밴드를 가지고 나가 근육 피로를 자처했다. 어제보다 짧고 낮은 길에 위로 받으며 아침 7시에 출발 했다.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 ~ 수비리(ZUBIRI) 평균 22.1km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은 남도 원망스럽게 했다. 이성을 마비시킨 장본인이었다. 눈에 뵈는 게 없을 때 기쁨이 들어차거나 성찰이 이루어질 줄 알았다. 대박까지는 아니지만 내 안에 들어찬 욕심과 기대를 달빛이 비추었다. 헤드랜턴에 의지해 숲길을 건넜다. 가다 보니 더 환한 불빛이 나타났다. 어제는 첫 날이라 긴장해 지나쳤던 바(bar)였다. 첫 bar에다 이른 아침 문 연 곳도 드물어 사람이 몰렸다. 줄을 섰다. 평소 아침은 과일과 달걀이었다. 달걀이 그리워 또르띠야(Tortilla)를 시켰다. 한국에서도 먹지 않던 에스프레소를 시켰다. 스페인 커피맛이 궁금하기도 하고 아메리카노와 달리 에스프레소는 원샷만 넣었다. 입을 놀려 잠이 달아난 건지, 기가 막힌 맛에 눈이 뜨인 건지 지금 이 순간이 대박이었다. 멕시코 음식 또르띠야와는 차원이 다른 달걀-감자-양파의 하모니였다.
어둠이 걷히자 동화 속에 나올 법 한 집들이 나타났다(부르게테). 어떻게 같은 집이 하나도 없을까. 인간이 추구해야 할 '나다운' 집들이었다. 나답게 사는 삶이 엿보였다. 창문 밖에 꾸민 꽃은 걷는 자에 대한 배려 같았다. 아파트 모델하우스보다도 흥미로웠다. 태양이 떠오르면서 내 안의 '악(惡)'도 걷혔다.
다 죽어가던 몸은 초록길을 지나며 힘차게 차올랐다. 내 이름도 떠올랐다. 이지(芝). 풀로 나아가는 정체성. 산티아고 순례길은 고개가 절로 들렸다. 구름이 화가이기 때문이다. 숲길은 또 다른 마을을 안내 했다. 주택 퍼레이드였다. 모두 똑같은, 건너 마을과도 비슷한, 아파트 풍경과 달리 나만의 색깔로 지은 집들이 모여 있었다. 어차피 내가 살 집, 한 번 살다 가는 인생, 건축 소재는 '나다움'이 맞았다. 집 짓는 사람이 되고 싶다던 아들이 생각났다. 당장 영상통화를 누르고 싶은 마음을 새벽 시차라 카메라 셔터로 억눌렀다. 아들 정체성은 발에 모터를 달아 주었다. '애미가 아니라 네가 왔어야 할 곳'이라는 메시지 전송 후 마음이 급했다.
부르게테에서 에스피날로 향하는 이 구간에서 집 따라 가다 까미노 화살표를 놓쳤다. 교통수단이 굉장히 발달한 우리라나에서도 난 알아주는 길치였다. 경기도와 강원도를 안전하게 모셔주는 통근버스를 강산이 변할 만큼 이용해 대중교통은 내게 '대중 없는 교통'이었다. 그 세월동안 아이를 혼자 키웠다. 통근버스는 대중교통이자 관광버스였다. '회사-집' 순례길은 아이도 초등학생에서 대학생으로 안전하게 모셨다. 친정아버지는 물건(휴대폰, 지갑)을 잘 잃어버리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찾을 수 있는 곳에서 잃어버린다"고 큰 소리 치셨다. 2일차에 '길치' 신분이 탄로났다. 하지만 "나도 찾아주는 사람 곁에서 잃어버린다." 까미노 천사들은 소리 질러 나를 바른 길로 인도 했다. 어쩌면 지금의 나를 있게 하려고 지난 날에 잃었던 건 아닐까. 하늘은 앞으로 내가 그렇게 되길 바라여 지금 이렇게 만든 건 아닐까. 잃어 봐야 찾은 감격을 안다. 비로소 현재를 받아들이게 된다.
풀과 집이 혼을 뺐는지 벌써 bar가 나타났다. 배고픔보다는 호기심으로 먹었다. 삶은 달걀도 팔았다. 아침마다 먹던 달걀을 또르띠야로 대체해 놓고는 뇌는 채우지 못한 결핍으로 생각했다. 하던 습관을 고수하는 나를 발견했다. 루틴도 도가 지나치면 '집착'이거늘 내 안에 고집이 서려 있었다. 밀가루를 먹지 않던 고정관념은 비스킷으로 허물었다(합리화인가). 스페인 밀은 역시 달랐다. 이미 가득찬 위장 무시하고 입은 달콤했다. 먹고, 걷고, 자고. 산티아고 순례길의 주된 업무다. 뭐 하나라도 잘하면 우린 '전문가'라 부른다. 입의 달콤함을 넘어 눈도 달콤했다. 길 위의 도서관이었다. 순례길인지 낭만길인지 애초 '고통'이란 게 뭔지 모르고 태어난 사람처럼 느껴졌다.
오르내림의 연속이었다. 계속 오르거나 계속 내려가면 고달픈 건 다리 뿐 만이 아닐 터. 인생은 내리막이 있기에 오르막이 기쁘다. 음지에서 양지를 볼 수 있듯이. 순례길에서는 내리막이 힘든 오르막을 잊게 했다. 무엇이 먼저이건 간에 고도가 있기에 살아갈 수 있다. 순탄한 평지를 걷지 못 한 게 아니라 기울기를 달리하며 전체적으로 계속 오른 거였다. 막연한 지평선보다 선명한 경사가 나을 수 있다. 생소한 땅에 놓인 가리비 화살표. 적극적으로 찾는다면 각자 인생길에도 까미노화살표는 있을 것이다. 찾기 전에는 설렘을, 찾고 나서는 성취를 안겨 주는 게 인생이었다. 너도밤나무도 허리 빳빳이 세워 인생은 '자립'이란다.
'또' 나타났다. 이번에는 푸드트럭. bar를 두 번이나 들렀기에 미안하지만 의자만 빌렸다. 얌채 같은 나를 알아챈 듯 곁에 앉은 외국인이 마카롱과 웨하스 비스킷을 주었다. 큰 손이었다. 인심에 감격해 넙죽 받아 먹었더니 남은 것도 더 해 봉지채 갖다주었다. 난 무얼 주나. 일상에서 근육을 의식해 주인노릇 하는 운동, 난 '의식주운동' 전도사다. 정체성에 불이 들어와 그들에게 "트리 포지션"을 외쳤다. 더 선수였다.
오늘은 이틀째다. 30일 남았다. 오기 전 발가락 물집과 발볼 염증은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길도 가늘고 길게 봐야 한다. 가던 길 내달리고 싶은 성향을 내려놓았다. 처음 걷는 길처럼 '멈춤'과 '환기'는 내게 낯설다. 내 안의 틀을 깨자. 철퍼덕 앉아 발가락 운동을 했다. 오르내리던 자연 속에서 오르내렸던 까미노 친구 인생 이야기도 들었다. 길은 속을 끄집어내는 도구였다. 나무도 쓰러지는데 하물며 사람은.
내리막길 즐기는 데도 한계가 왔다. 긴 터널처럼 느껴졌다. 사진도 풍경이 예쁘면 찍는 게 아니라 체력이 찍는 거였다. 비가 내렸으면 미끄러질 곳인데 땡볕이라 퍽도 다행이었다. 다 왔나? '기대'의 싹은 싹뚝 잘라야 편했다. 아로가 강이 흐르는 공수병 다리를 건넜다. 도착을 알리는 '다리'. 어찌나 반갑던지 기분이 금세 좋아졌다. 삶이 단순해지니 하는 짓도 단순 했다.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대충 일 보고 더 큰 일을 위해 나왔다. 토요일이라 문을 연 식당은 거의 없었다. 하필 연 곳이 맛집 중의 맛집이었다. 단순함의 극치를 드러내며 샐러드-연어-푸딩을 누가 잡아가도 모를 정도로 게걸스레 먹었다. 순례자 메뉴를 먹을 때면 내가 순례자인 게 자랑스러웠다. 뜬 눈으로 지새워도 용서 될 맛이었다. 비는 내리막길을 비켜 저녁식사 때 왔다.
초록 빛깔로 생명력을 얻는 나,
건축 설계로 밤샘작업 하던 아들,
그 힘으로 걸었다. 정체성이 날 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