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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에스테야, 역광 아닌 후광

빛으로 걷다

by 푸시퀸 이지

5일차. 몸은 5일장에 매일 나가 물건을 판 듯했다. 먹던 가락이 있어 그런지 전날 저녁식사가 만땅으로 차야 몸이 굴러갔다. 어제 또 잠을 설쳤다. 알베르게에서 남성 분들이 저녁상을 차려 주었지만 삼겹살을 먹지 않는 나로서 배가 부르지는 않았다. 저녁미사를 마치고 오는 길에 bar에 들어가 다행스럽게도 남은 치즈케익 한 조각을 먹었음에도.


귀가 예민해 잠을 못 자면 위가 보상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오늘은 스피드를 올려 근육을 혹사시키기로 했다. 사진 찍는데 체력과 시간도 뺏기지 않으리라. 안그래도 오전에는 손이 시릴 정도로 추웠다. 스마트폰을 가방 깊숙이 넣었다. 경주마가 되어 보자. 당기고 뻐근했던 종아리 옆길도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말 발길질처럼 햄스트링으로 걷던 습관을 무릎 높게 들어 대퇴사두근으로 걸었더니 사라졌다).


뇌도 첫 날과 비교해 짧은 거리면 우습게 생각했다.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에서 에스테야(ESTELLA)까지 21.9KM(경사 포함 23.4KM).


아이쿠야. 이를 어째. 작심 3일이 아니라 작심 3분이었다. 자연은 꽁꽁 묶은 손을 단숨에 풀었다. 가방(전대)에서 스마트폰을 꺼내고 스틱을 옆구리에 끼워 사진을 찍고 다시 또 스마트폰을 전대에 넣어 지퍼를 닫고 스틱을 양손에 거머쥐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다이소에서 산 3천 원짜리 하얀색 전대가 얼룩무늬 회색가방이 될 정도로.


태양은 전등을 서서히 켰다. 햇빛이 어떻게 온전히 밝아지는지 다 보여주겠다는 듯이. 빛은 자연풍경에 물감을 덧칠했다. 배색 감각도 뛰어났다. 초록빛, 하늘빛, 갈색빛, 누구 하나 강조하지 않고 은은하게 조화시켰다. 난 사진 찍는 데에는 똥손으로 유명하다. 회사에서는 내가 찍은 맛집 음식 사진에 맛 없어 보인다는 말까지 들었다. 얼굴이며 옷이며 하고 다니는 것만 봐도 감각을 유추할 수 있다. 자연은 내 실력도 그림처럼 만들었다. 갈 길이 멀 땐 조준이고 자시고 걸어 가면서 찍는 데도.




"어째 이리 맨날 새롭냐?"

"오늘은 또 뭔 일이?"

조직에서 일 할 때 말투였다.


"어쩜 이리 매일이 다를까"

"오늘은 또 어떤 일이?"

산티아고에서 걸을 때 말투였다.


그날 그날 다른 자연에 오늘이 최고였다. 지금 이 순간이 최선이었다. 아 다르고 어, 퍽도 달랐다. 자연은 사람을 참 고분고분하게 했다. 밭에서 본 누런 빛은 마을까지 물들였다. 건물도 가을을 탔다. 누런 돌담도 나를 감싸 안았다. 어제 본 밭은 노랬다. 오늘은 힘을 뺀 누런색이었다. 이러니 자연은 질리지 않는 평생동반자가 될 수밖에 없다. 자연도 내게 싫증내지 않을 것만, 아니 나를 늘 새롭게 볼 것만 같았다.


자연과 나와의 관계처럼 노랑과 초록도 서로를 추켜세웠다. 단짠단짠마냥 초노초노 한 것이 생명력을 더했다. 솜털 같은 풀은 마음을 간질였다. 태초에 툭 던져 뿌린 씨앗일 텐데 어찌 이리 아름답게 자리를 메웠을까. 자연스러움은 자유롭게 자랄 때 나타났다. 벽의 돌담도 산의 나무들도 자로 잰듯이 반듯한데 자연에 맡긴 결과라니.




거리에 속지 말자. 20km 언저리라고 긴장은 풀 게 못 됐다. 가파르게 오르는 경사에 뒤통수 제대로 맞았다. 바(bar)가 등장해 나온 입을 넣을 수 있었다(마네루 마을). 오늘도 어김없이 또르띠야다. 여긴 토마토와 치즈까지 핀에 꽂혔다. 한국에서도 뭐 하나에 꽂히면 다른 지역 체인점을 돌며 비교하는 버릇이 있다. 남과 나를 비교하는 것보다 '든든한' 습관이다. 또르띠야를 먹는데 옆에 앉은 분이 맛집에서 산 바게트를 내게 건넸다. DIA 마트에서 0.5유로에 산 바게트를 여러 날 걸쳐 먹던 내겐 신기루였다. 민폐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내 입에서 "저 조금 더 떼어 먹어도 될까요?"라는 본능이 튀어 나왔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나보다는 연배가 있는 그 분과 함께 걸었다. 먹을 땐 맛에 취하던 나를, 걸을 땐 자연과 소통하던 나를 맞춰 주었다. 오감을, 그것도 디테일하게 쪼개 말하는 걸 좋아하는 나를, 이상한 사람이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대하는 그녀도 자연으로 느껴졌다. 오래 누릴 수는 없던 자연. 마라톤 출신에, 대기업 명예퇴직 후 이 길을 세번 째 걷는 그녀를 난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그녀는 구름 같은 자연이었다. 어쩌면 나와 대화 나눈 시간은 인내심으로 걸었을 수도. '우리'라서, 역광 제대로 맞은 우리라서, 더욱 빛이 났다. 포도밭(시라우키)도 한창 광합성 중이었다. '서리자'가 아닌 '순례자'로서 침만 꼴깍 삼켰다. 포도밭으로 와인 생산지를 직감하며 오늘밤은 와인 수면제를 복용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지하도마저 빛을 온몸으로 받았다. 신비한 모험의 세계였다. 어두운 밤 불빛에 몰리는 생물처럼 길에서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지하도에 모였다. 우리라서 또 빛난, 길은 곧 작품이었다. 에스테야까지 터널은 대략 여섯 개다. 지금 이 시간 여기가 아니면 누릴 수 없는 빛이었다. 사람도 인생도 지금 여기가 가장 찬란할 수 있겠다. 길에 숨겨진 오르내리막이 지치게 했다. 근골격계는 무겁디 무거운데 위장은 가볍디 가벼웠다. 언덕배기를 힘차게 오르는데 결승선 테이프를 끊은듯 bar가 나타났다. 한국인 여성 사장님이 운영하는 곳이었다(로르카, 호세의 집). 또르띠야와 샐러드 맛집이라는데 중복으로 복용하면 어떠랴. 첫번 째 bar에 비해 짰다. 입맛조차 난 대중성이 떨어지나 보다. 여자의 적은 여자인 양 난 스페인 음식점에 손을 들어 주었다.




곡선은 직선보다 아름다웠다. 강물에 붙은 초록 풀은 강물 위에 떠 있는 초록 다리보다 우아했다(비야투에르타의 아란수강). 급한 성질로 우회로를 못 해 직격탄 날리던 내 모습을 비추었다. 비야투에르타 교회(성모승천성당) 사진을 보면 여전히 성격이 급한 걸 알 수 있다. 성당 우측에 순례자 수호성인인 산 베레문도(San Veremundo) 동상이 의미 있다는데 돌 테두리만 있고 잘렸다. 후다닥 찍고 빨리 걸은 흔적이다. 두번째 등장한 산 미겔 성당이 기회를 또다시 주었다. 강줄기 따라 흘러흘러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내 마음에 쏙 드는 알베르게(카푸치노스 로카마도르)였다. 차량 많은 시내 도로를 걷다가 누가 낚아채듯이 마당 깊은 곳으로 연결되는 것까지 마음에 들었다. 알베르게 현관에 들어선 순간 1층 로비부터 방까지 마음이 평온 했다. 아니나 다를까. 카푸친 프란치스코회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스피드를 올리자는 다짐은 빨래에 땡볕을 선사했다. 빨래를 널러 가는 길목도 아름다웠다. 한국에서는 비오는 날 차 한 잔 마실 때 행복감을 느꼈다. 여기 와서는 햇볕에 바짝 바른 빨래에 행복했다. 두 다리를 바삐 놀리는 동력이었다. 역시나 행복은 거대함이 아니었다. 세계 어딜 가나 행복은 소소함에서 배어나오는 향기일 터였다. 그래서 소확행은 유행도 안 타고 장기 집권 하나 보다.




저녁은 근처 마트에서 크림소스해산물리조또와 빵을 사와 0층 식당에서 전자렌지에 돌려 먹었다. 초록빛이 감도는 완두콩, 붉은빛을 뽐내는 새우가 화이트소스에 빠져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는 듯했다. 실은 오늘도 일찍 도착한 남성 분이 장을 봐 스파게티를 만들어 주었었다. 걸음 후 단백질 보충, 오늘밤 꿀잠, 내일 걸을 근육이라는 계획 하에 스파게티는 노땡큐, 와인만 한 잔 받았다. 식당 구석에서 혼자 먹는데 이렇게나 맛있는 건 처음이라는 말은 어김없이 또 튀어 나왔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5일차. 남은 27일을 생각하면 창창하게 젊은 날이다. 빠른 걸음으로 근육도 비축 할 겸 순례자답게 수고도 더 할 겸 의 속도로 걸었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을 때 빛을 쫓는다. 그림자가 싫어 역광은 피한다. 사진의 진정한 고수는 역광만 찾아다닌다. 빛을 온몸으로 받으면 펑퍼짐할 뿐더러 주름살과 팔자주름, 인생의 굴곡진 피부까지 다 나온다. 역광은 색과 톤, 라인이 정갈하다. 그야말로 후광이 비친다.



걷는 내내 후광이 비쳤던 자연,

나는 누군가를 비출 빛나는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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