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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플로나에서 푸엔테 라 레이나, 누가 누굴 용서해

바람 따라 걷다

by 푸시퀸 이지

어젯 밤도 복도 신세를 졌다. 팜플로나에서는 국내외 남녀 합쳐 열네 명이 한 방을 썼다(코 고는 소리도 K팝을 방불케 했다). 대도시 알베르게(플라자 카테드랄)라 그런지 아파트처럼 주방 옆에 거실 같은 공간이 있었다. 쇼파는 두 개였다. 쇼파 한 곳은 이미 외국인 여성이 차지 했다. 나머지 하나에 다가갔다. 쇼파를 보니 집에서 하던 스트레칭 습관인 비둘기자세가 절로 나왔다. 뭐가 됐든 몸을 괴롭혀 잠이 오길 바랐다.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실눈으로 휴대폰 액정을 보니 새벽 두 시와 세 시 사이였다. 모르는 게 약. 이젠 새벽에 잠 못 이뤄도 시간을 보지 말까 싶었다.


오늘은 팜플로나(PAMPLONA)에서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까지 25km다. 그동안 아침마다 떠오르는 태양이 내겐 희망이었다. 오늘은 용서의 언덕이라는 '페르돈(PERDON)' 봉이 기대됐다. 스페인 사람들은 용서를 많이 하는지 '페르돈' 단어를 많이 쓴다고 했다. 피레네산맥 이후 두 번째로 힘든 오르막이다. 오르막이라는 사실보다 용서가 정말 되는지가 궁금했다. 시골길이 내겐 어울리지만 첫 대도시인 만큼 팜플로나(나바라주 주도) 시내를 샅샅이 살폈다. 건물이며, 자동차며,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눈에 주워 담았다. 떠난 후 떠올리면 곁에 머무는 것처럼.




도시를 빠져 나가니 코에 산소 줄 낀 것마냥 숨통이 트였다. 집들은 구름 처마 밑에서 각자의 개성대로 거리두기를 하고 있었다. 평화롭기 그지 없고 바람 따라 뉘인 풀에 눕고 싶었다. 저 멀리 풍력발전기(바람개비)도 손짓을 했다. 어제까지 초록빛에 마음을 뺏겼다면 오늘은 누런빛에 물들었다. 사람이든 풀이든 익을 때 더 매력적이다. 어제와는 또 다른 결, 또 다른 색으로 분위기를 바꿨다. 끝없는 들판은 점 만한 사람을 포근히 감싸 안았다.




나보다 큰 외국인, 내 것보다 큰 가방을 보고 이제 몸을 그만 사려야겠다고 다짐했다(고관절증과 척추협착, 디스크탈출로 800km에 지장 있을까봐 택배서비스를 이용했다). 네모 반듯한, 각 제대로 잡힌 볏짚 곁을 지날 땐 심리적 안정감이 들었다. 기온도 떨어지고 바람도 많이 불어 비록 내 몸은 떨렸지만. 볏집은 날씨에 굴하지 않았다. 뭐 하나 허투루 하는 게 없고 어디 하나 예술 아닌 곳이 없으니 감탄만 나왔다. 그저 경작지이거늘.




공중화장실을 처음 봤다. 대낮이건 새벽이건 화장실을 자주 가는 나로서 줄이 늘어져도 들려야 했다. 가방 속에 간식이 있는데 bar에서 소변을 비싸게 치룰 땐 억울했다. 가뜩이나 걸음이 느린데 화장실에서 한 사람이 오랫동안 나오지를 않았다. 방광보다 마음이 더 급해졌다. 종아리 스트레칭을 한 판 다 했어도 아직이었다. 앞에 줄 선 분까지 따라할 정도인데 깜깜 무소식이었다. 순례길에서는 애초 상상할 수 없는 공중화장실에서 누가 큰 일을 보나 속으로 욕할 때 사람이 나왔다. 어제 아침 수비리에서 출발할 때 어둠 속에서 헤드랜턴 불빛으로 함께 걸은 일본 여성이었다. 너무나 아름다워 내가 한 눈에 반했더 그녀였다. 그녀의 유창한 영어 실력에 입 뻥긋 못하고 미소와 간식만 건넸던 그녀. 밝을 때 보니 더없이 아름다웠다. '페르돈' 봉을 오르기도 전에 화장실을 전세 냈어도 충분히 용서 되었다.




화장실은 미끼였다. 길은 "이제 가벼워졌지?"라며 오르막의 막을 올렸다. 뿌린대로 거두는 법. 등산을 등 지고 산 인생이라 오르막은 내게 쥐약이다. 호흡이 거칠어졌다. 입 벌려 숨 쉬니 입 속은 더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입 안에 벌레가 들어간다면 천장에 들러붙게 생겼다. 젠장, 방광을 비울 생각만 했지 채울 생각을 못했다. 마트에서 산 생수통에 물을 담지 않았다. 무거울까봐 집에서 가져온 물병은 왜 벌써부터 버리고 난리였을까. 바람개비가 까마득했다. 허벅지는 터질 것 같았다. 모자가 금세 젖었다. 쉬면 더 힘들어질까봐 스틱 잡은 손아귀와 어금니를 악 물었다. 풍경이 궁금해 이따금씩 뒤돌아보는 걸로 휴식 삼았다. 자연은 또 불평불만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하늘, 구름, 산, 밭. 사이좋게 구역 나눠 제 몫을 다 하고 있었다. 멀게 느껴지던 바람개비도 고개 들어 보니 어느새 거대해졌다. 오르는 내내 누구를 용서할 지를 생각했다. 터질 듯 한 허벅지가 밀쳤는지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우선 '나'를 용서하고 싶었다. 간절히.




드디어 용서의 언덕(Alto del Perdón)에 다다랐다. 쉬고 싶던 마음은 단숨에 씻겨 나갔다. 철제로 된 순례자가 나를 반겼다. 바람에 다 흘려 보내라고 거대한 바람개비가 보초 선 듯했다. 철제 조각상에도 "별이 지나가는 길을 따라 바람이 지나가는 곳"이라 써 있었다. 나귀 탄 순례자 옆에 섰다. 바람을 가르고 땅을 순례한 그들 곁에서 바람을 가르고 훨훨 날고 싶어 독수리 자세를 취했다.




들판은 넓고 갈 길은 멀다. 용서는 고사하고 바람은 땀 씻는 손수건이었다. 도착 마을까지 훤히 보이듯 탁 트인 경관, 아름다운데 이젠 내려갈 일이 까마득 했다. 올라온 만큼 내려가니 경사가 만만치 않았다. 땅은 심통난 누군가가 돌멩이를 한가득 뿌려놓고 도망간 것 같았다. 피레네 산맥에서 효과 봤던 무릎보호대를 다시 꺼냈다. 후들거리는 다리와 코어를 부여잡고 내려왔다.




내려오는 그 와중에 마을(우테르가)은 또 왜이리 예쁜지. 에술에 마음이 녹았다. 스페인은 담벼락에 그림작품이 널렸다. 더 내려가(오바노스) 스파게티 bar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늘어진 줄은 맛집을 증명했다. 이제 야외에서 경치 보며 먹는 데에 길들여졌다. 접시를 싹 다 비우는 건 더 익숙해졌다. 내리막길을 마저 걷고 오솔길을 지났다. 날은 좀 흐렸다. 이토록 많이 내려왔는데 부치지 않은 편지처럼 마음 속에서 용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이번 순례길을 함께 한 남성 분들이 직접 마트에서 장을 봐 저녁상을 차려 주었다. 남성 다섯 분은 걸음이 상당히 빨랐다. 난 걸음도 느린 데다 자연과 소통하느라 매번 뒤쳐졌다. 감바스, 삼겹살, 샐러드, 고추장찌개, 피클, 과일... 혼자 생활에 익숙한 내게는 여럿이 함께 지내는 게 큰 도전이었다. 누군가에게 베푸는 것도 베품을 받는 것도 많이 어색했다(돼지고기를 먹는 것도). 잘 못 잔 날에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본능적 말투를 내뱉기도 했다. 용서의 언덕 때문인지, 그들의 배려 때문인지 저녁식사에 코골이, 이갈이가 용서됐다. 용서 고개를 스무 고개 만큼이나 넘어야 사람 되지 싶다.




저녁을 맛있게 얻어 먹고 가까운 산티아고 성당에 갔다. 미사는 전 세계가 다 똑같아 어찌어찌 따라가겠는데 강론을 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희한하게도 순례자들 나오라는 소리는 신부님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 신부님은 순례자들에게 일일이 십자가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오늘의 목적지인 '푸엔테 라 레이나'는 왕비의 다리라는 뜻이다. 마을 들어올 때 부리나케 건너기만 했지 다리와 마주보진 못했다. 미사 후 다시 돌아갔다. 다리는 아르가 강에서 자신의 반쪽을 찾았다. 물그림자로 원이 되었다. 다리 반영은 '용서'도 내비쳤다.


내가 누굴 용서하기보단 용서 받을 대상은 바로 '나'라는 것. 살면서 나를 용서한 이들에게 감사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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