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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Mar 28. 2020

숫자보단 감각

- 와인 세 병 보단 바디감 한 잔이 낫잖아? -  

일을 할 때 데드라인을 정하라고들 한다. 마감 시간을 정하면 몰입도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일부러 정하지 않더라도 너나할 것 없이 우린 데드라인 속에 묻혀 살고 있다. 당장 내야 할 각종 세금이며 학원비가 그렇고, 직장에서 고객과의 접점 일들이 그렇다. 타자와의 이런 숫자 계약을 내 자신에게도 적용시키면 그만큼 효율적이고 성과도 높다는 것이다.


때론 그 숫자가 소 뒷걸음 질 시키기도 한다. 스쿼트 하나 하기도 힘든 사람이 100개 하는 사람을 본다던지, 이제 막 책과 친해졌는데 1천 권 독서법을 마주한다든지, 충분히 검토할 작정이었는데 당장이란 자료타령에 시달리던지, 글쓰기에 간신히 스위치 켰는데 쥐어짜야 할 마감 날이 찾아 온 경우가 그럴 것이다. 감성이 기분 좋게 들어 왔다가도 숫자 보고 줄행랑을 칠 수 있다. 나에겐 청개구리 유전자 칩이 있어 혼자 그런 걸 확대해석하는 수도 있다.


아무튼 난 데드라인 시간까지 해냈다는 성취감보단, 감각에 몰입하다 시계 보고 화들짝 놀라는 짜릿함을 선호한다. 사회라는 커튼에 가려져서 그렇지. 직업이란 블라인드를 내려 그렇지, 난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다. 운동도 동일한 박자를 탔다. 처음 멋모를 땐 동작을 배우고 익히느라 몇 개, 몇 세트에 목숨 걸었다. 무슨 운동을 몇 개 했느냐에 집착했지, 어느 동네 근육을 방문했는지, 만나야 할 근육과 결을 제대로 논했는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반명함판 증명사진에 나오는 상반신만큼 통증이 있었다. 그때 시작한 기구운동이 있다. 'CHIN ASSIST' 라는 건데 이름 그대로 턱이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거다. 턱이 위로 올라가려면 양 팔은 만세 자세로 바를 잡고 잡아 당겨야 한다. 내려올 땐 양 팔의 힘을 서서히 푸는 동작이다(*낙추주의: 추의 낙하 굉음에 사람들 주목을 한목에 받는 수가 있다).


마치 뜨고 지는 태양마냥 턱을 하늘로 추켜세우고 오르내린다. 기계는 나를 떠받친다. 들린 몸은 종일 화면에게 굽실대던 어깨와 불림 당한 뒷목을 어르고 달래준다. 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있다는 게 삶과 닮았다. 기분도, 역할도, 상황도. 그래도, 위든 아래든 중간 지점은 반드시 지나친다. 힘 들여 올라가는 여정은 남을 위한 길일 테고, 힘 빼고 내려오는 건 나를 위한 길일 게다.


이 운동에서 위아래 움직임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시작하기에 앞서 양 어깨를 최대한 끌어 내리고 손잡이와 팔, 몸통이 일직선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처음 숨 고를 준비 자세가 제대로 갖춰져 있어야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도 의미가 있다. 양 손으로 바 부여잡고 위아래로 무턱대고 리듬타기보단 첫 자세를 유지하며 천천히 되돌아와야 한다. 잡은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가면 평소 이를 악물고 산 건 아닌지 인기척이 느껴진다. 동작의 핵심도 양 손의 힘은 최대한 빼고 살포시 얹는 것이다. 팔이 할 역할을, 팔의 자리를, 손이 뺏으면 안 된다.   



이 운동 하나만 보더라도 3세트 20개를 반드시 채워야겠다는 야심보다 중요한 게 있다. 20개가 아니더라도 첫 준비 자세, 움직일 때의 감각, 독수리 날개 펴는 느낌을 느꼈는가이다. 근육은 겉으로 보기엔 단단한 것 같지만 예민하고 결이 섬세하다는 걸 같이 지낼수록 느낀다. 그 흔한 스쿼트도 어디까지 앉느냐에 따라 신호탄이 다르다. 엉덩이 영토까지 침범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깊이와 기울기도 달라지니까. 나의 의식과 감각이 만나도록 주선하면 될 일이다. 숫자는 자란 근육 보면서 몇 개였는지 궁금할 때 활용하면 된다.


< CHIN ASSIST 기구>  우린 기구 없이 얼마나 턱이 하늘을 향하게 살고 있는가!

'2020년부터 매일 스쿼트 100개 도전!' 하며 두 주먹 불끈 쥐기보단 '노후 보장 상품으로 허벅지에 투자해 볼까.' 마음으로 거울 앞에 서 보는 건 어떨까. 마음 근육은 숫자 보고 변심할 수도 있다. 잠깐을 만나더라도 움직이는 내 몸과 즐기는 시간이 되려한다. 또 보고 싶도록 하는 나쁜 여자 스타일이랄까.


새로움은 설레는 감각을 가져온다. 새로움이 기존 경험으로 자리 잡는 순간 식상함이 될 수 있다. 근육도 이미 눌러 앉은 근육은 식상해지고 새로 만난 근육에 설렌다. 운동할 때 이 느낌만 간직한다면 만남의 횟수나 강도는 절로 따라붙는다. 공부의 신이 어떻게 하다 보니 1등을 하게 되었다며 속 뒤집는 소릴 할 때가 있다. 감각운동 좀 해 보니 그런 말 조금은 이해된다. 내 몸 자체가 센서기다. 감각전기를 쥐락펴락하는 두꺼비집이다. 내 느낌 믿고 몸의 가동 범위를 작동해 보는 건 어떨까.


신체와 운동에 비전문가라서, 전문 지식이 없어 느낌이네 감각이네 운운한다 생각할 수도 있겠다. 공부를 썩 좋아하지는 않아 그런 면이 없지는 않다. 그래도 감각 찾아 삼만리에 진입하는 게 목표량 몇 개 도전보다 즐거운 과정이 되지 않을까. 의미를 부여해야 기억으로 남고 몸에게는 추억의 흔적이 된다. 와인 3병을 마셨네 보단 바디감으로 한 잔 취하는 쪽을 선호하는 나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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