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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Oct 30. 2020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는 클라이밍

- 클라이밍은 운동이 아니다, 철학이다 -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내게 맞는지를 아는 건 참으로 중요하다. 자물쇠 같은 삶의 비밀번호와도 같다. 남이 먹음 약인데 내가 먹음 독이 되는 것도 있다. 사람마다 신체구조가 다르고 신경세포도 제각각이다. 그래서 ‘나’와 온전히 화학 반응하는 그 무엇을 발견하는 건 보물찾기만큼 기쁜 일이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욕구와는 또 다른 차원이다.


제목에 나온 클라이밍을 바로 말할 것이지 뭐 그리 전주곡이 긴가, 할 것이다. 지나가는 불에 밥이 익은 것 마냥 ‘클라이밍’ 운동이 우리를 패키지로 흥분시킬 줄은 몰랐다. 우리라 함은, 나와 한 지붕에 사는 질녀 정이, 아들 영인이를 말한다. 참고로 등장인물은 각각 고2와 중3이다.


한 번의 실수가 평생을 좌우한다는데 평생만큼이나 장기 레이스가 펼쳐질 지는 두고 볼 일이나 아직까진 채찍이 필요 없는 말처럼 달리고 있다. 정이는 운동을 벌레 보듯 하는 아이다. 외식한다면 먹는 일보다 밖에 나가는 일이 더 큰 사안일정도로. 깊은 물보단 넓은 물을 좋아하는, 싫증을 금방 느끼는 성향이기도 하다. 분석도구지에서도 예술성으로 드레싱 한 ‘강한 우뇌형’이었다. 정이를 정기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건 산을 옆으로 옮기는 일과도 같았다.


한번은 ‘절친’이란 무기를 이용해 복싱을 시켜봤다. 무기가 증발하자 실패로 전락한다. 그때 권투 글러브를 사주지 않은 건 작전 실패라기 보단 현명한 선택이었으리라. 또 한 번은 엎어지면 코 닿을 곳, 집보다 광활하고 깔끔한 샤워시설, 몸을 뜨끈뜨끈하게 지질 수 있는 탕, 낙엽만큼이나 머리카락이 굴러다녀도 잔소리를 듣지 않을 그곳, 헬스장으로 그녀를 인도했다. 런닝머신에 발만 살포시 얹어, 보고 싶은 TV나 듣고 싶은 음악과 함께하면 될 일이라 꼬드겼다. 목욕탕이든 런닝머신이든 그녀 발길이 뜸해지면서 헬스장도 실연당했다.


정이는 고등학생이 된 후 키가 내 정수리를 훌쩍 뛰어넘었다. 가제트 형사처럼 팔도 길어지고 길어진 만큼 덜렁대는 팔뚝 살이 거슬린단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나풀대는 살을 근육 찹쌀떡처럼 안겨 붙게 하는 운동이 있다며 잽싸게 알려줬다. 옵션으로 스트레칭 상품 몇 개 끼어서. 평일엔 내가 원주 사택에서 지내니 과제로 내주었다. 요가매트와 덤벨(아령)에 쌓인 먼지가 이 작전도 실패임을 알려 준다.


클라이밍 운동 못 박으려고 선수 쳐서 이리 손가락을 놀려대는 건 아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제작진의 심정으로 근질거려 환장하는 입을 놀려댈 뿐이다.




사건은 지난 추석 연휴. 부침개, 잡채 등등으로 뱃속에 기름때 잔뜩 끼던 그때, 몸 청소를 빌미삼아 코로나19로 헐렁하기 그지없던 시기에 발맞춰 1일을 강조하며 클라이밍 일일체험에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후보군 8군데를 분석해 ‘손상원 클라이밍짐(판교점)’으로 낙찰. 셋이 나란히 클라이밍 간을 보고는 앞으로도 계속 배우겠다고 아이들은 입을 모았다. 야호, 맛보기 성공(체험 시식으로만 그쳤다면 학원비 결재한 사람이 알바생인 줄로만 알았을 게다. 신문, 잡지에 등장한 산악인 손상원 원장이었다).


실내암벽이라고도 하는 스포츠 클라이밍. 벽에 ‘홀드’라는 돌이 박혀 있다. 홀드 크기도 모양도 가지각색이다(사람마냥). 손가락으로 가뿐히 잡게끔 홈이 파인 것, 손가락과 맞장뜨는 평평한 것, 먹음직스럽게 생긴 딸기모양, 잡기가 여간 불편해 '야!' 소리가 절로나는 야한 엉덩이모양, 코끼리 코딱지나 개미가 쉴법한 얍삽한 모양 등등 벽에 덕지덕지 홀드 돌이 박혀있다. 홀드를 가리키는 라벨 색깔로 레벨을 구분한다. 흰색부터 시작해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순으로 어렵다. 한 레벨당 홀드 20여개가 붙어있어 벽에서 마라톤 하는 것 같다.


한발 한발 한손 한손 벽을 타니 별별 생각이 다 든다. 거미도 잡아먹힐까봐 이리 안간힘 썼나. 산악인들도 떨어져 죽을까봐 요래 아등바등 했나. 내 몸이 삼각형도 그렸다가 마름모로 변신하기도 한다. 이동하다보면 숨도 차다. 호흡을 고르며 후~ 내뱉고 훕~ 하고 발을 민다. 90도 화면회전 한 듯 벽에서 조깅한다. 힘과 호흡 조절이 관건인 클라이밍. 지구력과 근력, 유연성을 골고루 건드린다. 홀드 따라 옆으로 옆으로 위로 위로 가다보니.


정상까지 가려면 에너지 빵빵할 때 홀라당 탕진해서는 안 된다. 힘 자랑 한답시고 초반에 기고만장하면 오래 못 가 제풀에 꺾인다(내가 그랬다). 여우가 나무에 매달린 포도를 따먹으려면 몸이 받쳐주지 않는 한, 꾀가 필요하다. 클라이밍은 과학적 잔꾀까지 총동원해 몸을 조종한다. 팔다리가 몸통을 이끄는 협동조합이다. 학창시절에 배운 힘의 원리, 관성이니 가속도니 작용반작용이니 하는 법칙을 고스란히 팔다리에 녹여야 한다.




아이들의 두 손 두 발을 꽁꽁 묶었던 컴퓨터, 이제 클라이밍으로 모셨다. 클라이밍은 신체 '운동'보단 순간 '이동'에 가깝다. 한 공간에서 중딩, 고딩, 마흔딩이 머리 맞대고 섰다. 우린 더 높이 더 오래 더 멀리 가는 방법을 논한다. 인생 클라이밍을 논하듯. 인생은 타이밍이다. 아이들과의 소통도 인생 최우선 과제다. 난 아이들을 키우지 않는다. 근육을 키울 뿐이다. 우린 함께 자랄 뿐이다.


고딩 정이는 야식으로 불닭볶음면을 자주 먹었다. 영인이는 주로 빵을 먹었다. 한밤에 몰래 만난 ‘야식’이랑도 이제 데면데면하다(비대면 시대에 걸맞게). 향이 그윽한 밀가루 음식을 턱 밑에 갖다 바쳐도 이젠 콧방귀도 안 낀다. 식탐 역치도 클라이밍을 하는지, 클라이밍이 인내심 백신을 개발한 건지.


모든 운동이 그렇지만 클라이밍은 특히나 몸이 무거우면 스파이더맨을 꿈꿀 수가 없다. 가벼워지는 기술을 익힐 것인가, 힘을 쓰는 기술을 익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소이다. 주말이면 아이들과의 밥상머리 앞에서 먹는 양과 타협하게 되는 이유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다, 과학이다.

클라이밍은 운동이 아니다, 철학이다.


비우고 버리고 내려놓아야 발 떼기가 수월타. 이제 걸음마로 한 발 뗐다. 시작을 울리는 소리, 그 종소리가 세상에 울려 퍼지길 바란다.




1. 마흔딩, 늙은 애미 먼저


2. 고딩, 앉은뱅이 탈출!


3. 중딩, 난 남자라고!




※ [해외 등반 | 스페인 디멘시아 5.15a 오른 손상원] 록 클라이머 손상원 시대 다시 활짝[580호] 2018.02

http://san.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07/20180207023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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