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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Nov 22. 2020

기어오르는 여운이 주는 클라이밍 끝맛

- 다시 끌어 오르는 힘, 그래, 이 맛이야! -

※ "다른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되는 글인데 넌 공감하기 어려운 '운동' 글이다"라며 어렵게 누누이 말씀 주셨던 엄마에게 끌어오르는 기운으로 이 글을 바칩니다!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었을 때 그 스릴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못 먹던 음식을 먹든, 이틀에 한 번 간 화장실을 매일 가든, 빈곤에 절은 뇌가 풍요로워지든 간에 그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말이다. 몸으로 직접 부딪쳐봐야 이해력이 작동하는 나로선 몸 쓰는 일이 스릴으뜸이다. 무형적 요소는 이게 나아진 건지, 어쩐지 긴가민가하다. 운동은 결과 값을 눈에 담아준다. 시간투자 대비, 성장 속도로 보나, 가시적 성과로 보나 스릴 만점으로 치면 클라이밍이 독보적이다.


클라이밍은 벽과의 눈 맞춤으로 시작한다. 둘만의 소통이 시작된다. 더 높은 벽을 오르거나 더 멀리 갈 때, 나를 위협하는 경사를 건넜을 때 전보다 한 발 앞선 나를 발견한다. 마찰력으로 날 밀쳐내는 애매모호한 볼더(벽에 들러붙은 돌), 그들을 손으로 잡아내고 발로 디딜 때도 마찬가지다. 이 느낌을 나 혼자 고이 간직했다면 클라이밍을 ‘스릴’ 랭킹에 등극시키진 못했을 게다.


벽과 나, 이 둘을 응시하는 뒤편 동료들, 샌드위치 선상에 내가 섰다. 한 손 한 손, 한 발 한 발, 나의 거미발 박자에 그들의 숨결도 리듬을 탄다. 내 발이 볼더에서 미끄덩할 땐 “아우~”하는 알토가, 내 키보다 높은 볼드에 손을 뻗어 척 갖다 붙일 땐 “이야~”하는 소프라노가 울려 퍼진다. 이어지는 화음소리,


“할 수 있다! 다 왔다! 조금만 더!”


그 어떤 멜로디보다 심금을 울리는 소리다. 20대로 보이는 그들은 중년 아줌마인 내게도 모자라 우리 아이들에게까지 옥타브 넘나드는 음정으로 응원을 과소비한다.


클라이밍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마냥 아이들(고2,중3)을 모니터에서 구출하려는 작전에서 시작되었다. 그 목적 하에 클라이밍짐에 도착하면 내 할 도리만 하겠다는 결의로 옆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같은 시간대인 주말반, 그들끼리는 농담도 잘하고 협업도 잘해 ‘아는 사이’이겠거니 하며 경계심 반, 소외감 반을 감정에 밀어 넣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집안 내력을 고수한 채.


헌데, 그들은 지인이나 식구가 아니었다. 벽과 마주하며 역경을 딛고 오른다는 목적의식이 분명한 사람들이었다. 같은 방향으로, 말이 필요 없는, 한 배 타고 항해하는 선원들이었다. 그 배에 우리도 태워 어디쯤에 파도가 있는지, 어떻게 하면 뒤집어지지 않고 타넘을 수 있는지 알려주었다. 주말에 일이 생겨 다른 날 보강 받았을 땐 힘들어서 그만두었나를 토의했던 이들. 그 토의 속엔 우리가 또 다른 벽에 부딪친 건 아닌지, 하는 염려도 포함되었으리라.


더 오래 더 높이 더 멀리 벽과 싸우는 ‘성취(成就)’에 한 술 더 떠 “할 수 있다”를 외치는 그들의 ‘성취(聲取)’가 포개진다. ‘스릴 만점’을 부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여운은 ‘오늘보다 나은 나’로서 내일을 향한다. 의무감만 들어찬 운동이라면 스트레스 호르몬도 함께 성장하는데 기대감까지 더해지니 ‘어제보다 나은 나’ 호르몬이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뒤끝 있단 말. 사람 염장 지르는 말만은 아니었다. 나를 향한 환호성은 손발을 다음 정류장으로 안내한다. 손발 기운은 심장 벽을 타고 기어오른다. 눈물은 중력에 속절없지만 클라이밍은 중력을 거스른다. 가뜩이나 뒤끝 있는 사람인데. 영화 <던월, (THE DAWN WALL)에서 모두가 불가능하다 했던 엘 캐피탄 암벽을 등반한 토미 칼드웰도 뒤끝 작렬이었을까.


얘들아! 시험 끝난 기념으로 오늘 불타올라 보자고! 렛츠고!!





※ 엘 캐피탄: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최고난도로 일컬어지는 높이 910미터의 암벽. 그 중에서도 새벽 빛이 가장 먼저 닿는 곳이라 하여 ‘던 월’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손톱조차 들어가지 않는 매끈하고 아찔한 벽면으로 악명이 높아 누구도 시도한 적 없는 곳(네이버 영화소개 참조).



클라이밍 전후로 흥얼대는 노래. '암벽을 달리다'

가사 중 "검은 절벽 끝 더이상 발 디딜 곳 하나 없었지",  "선혹 너무 태양 가까이~ 날아 두 다리 모두 녹아내린다 해도~"

엑센트 뙇! 노래방을 달리다...가 조속히 이루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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