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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Dec 20. 2020

‘몸’ 쓰기의 말들

말 한마디가 천냥 힘 갖는다!

헬스장 다닐 때 트레이너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다.

“회원님 팔 힘은...뭐...등 힘도 뭐... 아주 뛰어나십니다 ”

이 말에 낚여 푸시업을 하게 되었다. 등짝이 얼굴이려니, 하고 바디프로필 사진도 찍게 되었다. 인바디(INBODY) 측정결과, 상체근육은 ‘발달’로 자리를 고수하게 된 이유이기도.       


폴댄스 체험수업 때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다.

“회원님은 봉을 팔로 밀어부치는 힘이 대단하시네요.”

이 말에 낚여 신입 주제에 전문가반 수업에 덜컥 뛰어들었다. 정작 폴댄스는 코어, 유연성 등 다른 힘이 무더기로 필요한데 봉에서 수시로 거꾸로 뒤집고 있다. 20대로 거꾸로 돌아간 것 마냥 20대들 틈바구니에서.   

       

플라잉요가 체험수업 때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다.

“회원님은 가능성이 충분해요. 겁이 없으시거든요.”

이 말에 낚여 천장에 매달린 천(해먹)에 몸을 훅 맡겼다. 중고급반 시간에도 굳이 끼어들어 곁눈질로 되는만큼 천 휘감아 하늘을 날고 있다. 꼭 전철에서 임신부 자리에 잽싸게 앉는 아줌마처럼. 못 따라가는 기술은 수업 도강하는 셈 치라고 선생님께 일러두었다.          


클라이밍 체험수업 때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다.

“왠지 이것도 충분히 가능하실 듯한데... 한번 해 보시죠.”

이 말에 낚여 아이들까지 꼬드겨 암벽을 타게 되었다. 요상한 돌(홀더) 잡고 꽃게처럼 옆으로 뻗는 지구력 운동, 더 요상한 돌 잡고 원숭이처럼 위로 뻗는 근력 운동중이다. 끝나고 힘은 빠졌지만 “충분히 가능” 발언이 형식상인지, 상식상인지 혼자 슬쩍 점검도 한다.        




모두에게 강조하는 한마디도 있다(여러 마디 중 한마디만 건진 건가). 아침에 들은 노래가 종일 맴돌듯이 선생님 소리가 더빙되어 일상까지 파고든다. 숙제검사 맡는 학생처럼 집에서 자율학습을 한다. 집엔 봉도, 천도, 돌도 없으니, ‘봉’ ‘천’ ‘돌’ 만날 날의 몸가짐이다(코로나19 할애비가 우리 사이를 갈라놓을지라도).          


트레이너 선생님은,

“자세 잡고! 축신장!!”

하며 시작할 때 바른 자세를 강조했다. 집에서 운동할 때도 오프닝 무대처럼 첫 자세에 부쩍 신경 쓴다. 시작이 반이라고, 반을 차지하긴 했다. 첫 자세가 운동의 질을 크게 좌우했다. 나머지 반은 평소 자세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앉으나 서나 자세생각’을 흥얼댈 정도로, 위에서 누가 내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는 꼿꼿한 자세가 되었다. 태도도 자세에 따라붙겠거니.  


폴댄스 선생님은,

“기립근에 힘! 무릎에 힘!!”

하며 굽은 등과 들뜬 무릎을 제어했다. 구부정한 모양도 모양이지만 가뜩이나 척추질환자라 등에 붙은 척추기립근이 도와야 한다. 평소 정 안 가던 슈퍼맨(엎드려 팔다리 들어올리기)과 코브라(엎드려 바닥 짚고 상체 올리기) 자세를 주3회 한다. 세면대 앞에서도 허리 빳빳 기립근에 힘주고 씻는 자신 모습에 화들짝 놀랐다. 이러다 만나는 사람마다 기립근에 힘주고 90도로 인사할라.


플라잉요가 선생님은,

“팔에 힘 빼고! 코어 힘으로!!”

하며 천(해먹) 부여잡고 밀든, 감든, 뱃심을 강조했다. 처음엔 쓸 힘과 뺄 힘을 반대로 줘서 팔이 결렸다. 날아다니는 새들 모임에 나가 달리기 실력을 뽐낸 식이다. 크런치, 레그레이즈 등 복근 운동을 매일 150개 이상 한다. 배에 힘 좀 붙으니 과식하더라도 뱃가죽이 제법 버틴다. 배에 힘 주고 팔에 힘 빼는 기술은 비단 날아다니는 요가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몸도 가볍고 마음도 이완시켜 그야말로 플라잉.

             

클라이밍 선생님은,

“한 번에! 손끝 힘!!”

하며 온 몸 날려 손(가락)으로 버티게 했다. 다음 돌(볼더)로 이동할 땐  팔다리와 코어 힘 다 쓰고 착지할 땐 손으로 버틴다. 작고 납작한 돌은 손가락의 끝판왕이다. 손을 바닥 짚고 하는 운동은 손가락과 손바닥 힘을 이용한다.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철봉에 매달릴 때 손의 아슬아슬한 느낌을 이젠 허용한다. 손만 죽어라 고생할 순 없으니 스쿼트도 매일 100개 이상 한다.




헬스, 폴댄스, 플라잉, 클라이밍... 헬, 폴, 플, 클...쓰고 보니 어째 모두 ‘ㄹ’이 떠받친다. ‘ㄹ’ 나온 김에 ‘말’ 마저 하면, 운동하는 동안에는 침묵과 몸이 소통한다. 몸을 쓰면 쓸 데 없는 말도 줄어든다. 몸을 쓰면 머리도 덜 쓴다. 몸을 쓰면 ‘쓸모 있는 성과’만 보지 않고 ‘쓸 데 없는 과정’에도 감각이 열린다.      


학습이론 중 ‘창출 효과’라고도 부르는 ‘시험 효과’가 있다. 다른 학습 내용이 섞여 있을 때 학습 효과가 늘어나는 것을 간섭효과라 하는데 과제 간의 차이가 각각의 과제를 더욱 두드러지게 하여 집중할 수 있고 노력을 기울이게 되어 학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학습자에게서 구별식 연습 방법이 아닌, 섞어가면서 연습하는 방법이 더 좋은 결과였다(변화하는 뇌, 한소원, 바다출판사, p247-248)       


코로나19 쇠창살이 올해 2월, 회사 헬스장 문을 굳게 걸어 잠궜다. 헬스기계에 의존하던 몸이 자연스레 자연으로 발길 돌린다. 몸 자체에 더 몰입한다. 내 몸도 자연의 일부다. 전 세계 국가의 몸도 코로나바이러스에 몸살을 앓고 있다. 옆집 사는 사람에게도 무관심한 내가 이토록 여러 나라 몸까지 걱정한 적은 없다. 세상을 발칵 뒤집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에게 강조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자연을 우습게보지 마라. 자연에서 비롯된 흐름에 따라라.”

일까. 바이러스와 백신 말들로 후각에 청각까지 마비될성싶다.


나도 코로나19에게 한마디 한다.     

“나, 몸 좀 쓰는 인간이다. 내 몸이 백신이다. 유통기한도 없다”고.      


바이러스도, 운동도 각자 힘이 서로서로 다 연결되어있다. 삶과도 이어진다. 말 한마디가 천 냥 빚 갚는다는데, 말 한마디가 천 냥 ‘힘’ 갖게 했다. 말 한 마디가 생각을 깨우고 생각은 행동을 깨운다. 매일아침 5시 반에 나도 깨운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은 고사하고, 잠자는 타자의 행동은 얼마나 건드리며 사는지. 타자의 마음을 건드려 긁어 부스럼인지, 간지러운데 긁음인 건지. 생각과 말 사이에 ‘마스크’ 간이정류장이 생겼다. 마스크 너머 내뱉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실어본다.


아침 점심 양치질로 오늘 스쿼트 100개는 기분좋게 완성! 선생님 말씀이 말짱 도루묵 되지 않기 위해 침묵 속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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