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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Oct 12. 2020

등쌀에 못 이기면 렛풀다운(LAT full down)

- 가깝고도 먼 사이, 멀어지면 등과 이별하는 사이 -


헬스장 가면 괜히 쓰윽 한번 건드려보는 장비 중에 ‘렛풀다운’이란 게 있다. 운동 좀 한다는 사람이든 아니든 간에 생긴 것 자체가 잡아당기면 그뿐이라는 만만함이 서려 있다. 풀다운(full down)은 아래로 당기기, 렛은 광배근(latissimus dorsi, LAT)을 의미하니 말 그대로 아래로 잡아끌어 광배근이 자극되면 게임 끝. 말은 쉽다.


이 기계 앞에서는 다들 입술 사이에 조금의 빈틈도 허용치 않고 야심차게 잡아당긴다. 헌데, 광배근에 승전보는 울린 건지 몹시 궁금하다. ‘너나 잘 하세요’ 하겠지만 주말, 아니 몇 달 만에 만난 나부터가 ‘아니올시다’였다. 광배근은 넓은 등근육이란 뜻처럼 뒤에서 봤을 때 날개뼈 아래부터 양 갈비뼈를 에워싼 모습이다. 코로나로 광배근 마저 사회적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널찍이.


코로나는 헬스장 문 연지가 언젠데, 하고 앉았고 비정상적 척추(경추+요추) 소지자로 몸은 반란 중이고, 주말에 아이들과 클라이밍도 해야겠고, 하여 한 방에 해결할 렛풀다운 기구에게 다가섰다. 오랜만이란 워밍업 인사와 함께 자, 운동 시작. 어라, 지금 내가 움직이는 팔이 진정 내 팔인지, 보조기인지, 싶을 정도로 충격적이다. 자세가 안 나온다. 운동 신입생 3년 전 그때로 필름이 돌아갔다. 공부에는 전혀 없는 승부욕이 슬슬 발동한다. ‘Back to the basic’, ‘slow slow quick quick'을 호흡에 담고 반복에 또 반복. 기억상실증 회복을 위한 몸부림.


빼앗긴 광배근에도 봄은 찾아왔고, 집 나간 광배근도 돌아오게 만든 렛풀다운 운동. 말끔히 돌아온 건 아니지만 또다시 배신하기 전에 한판 정리한다. 난 우렁각시처럼 몰래 선의를 베푸는 스타일도 아니고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의지도 없어 부랴부랴 함께 나눈다. 이리도 내가 등근육에 집착하는 건 삐딱선 탄 척추로 목과 어깨에 통증이 무단 침입하는 것도 있지만, 등과 옆구리 라인도 공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글이 대신해 렛풀다운 동작 3D체험 한다.


렛풀다운 운동을 제대로 하느냐 마느냐, 그 기로에는 등과 팔이 있다. 즉, 광배근이냐 이두근이냐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하늘에 대롱대롱 매달린 긴 바(bar)를 양팔 벌려 잡고 어떻게 끌어 내리느냐에 따라 등운동과 팔운동의 운명이 갈린다. 바와 상체가 가까울수록 등근육이 자극되고, 멀어질수록 팔근육이 자극된다(등 근육 운동이 죄다 그렇다).


기구가 민망해할 정도로 내 몸을 최대한 밀착한다. 그래야 양 팔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않는다. 몸이 기구에서 멀어지면 팔꿈치가 사선 뒤로 빠져 결국 팔 힘으로 끌어내리게 된다. 바와 가까이 몸통과 팔이 일직선일 때 광배근이 자극된다. 잡아당기는 손, 손목, 팔, 목, 어깨는 바(bar)에 살포시 얹은 느낌으로 나대지 말아야 한다(손목 말아 쥐기와 꺾기도 금지). 광배근이 주인공이라 이두근은 조연급으로 빠져주는 원리다.


쌩떽쥐베리의 <어린왕자>에서 여우가 사이좋게 지내잔 뜻에서 ‘길들여짐’을 말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근육은 잘 길들여진 소나 말 같은 사역 동물과 비슷하다고 했다. 코로나에 더 길들여지기 전에 근육들이 ‘길들여Gym'에서 재미 좀 봐야겠다. 평소 나몰라라 하다 이렇게 갑자기 근육에게 들이닥치면 ’자지러Gym'이 될 터이니.


세상 등쌀에 못 이길 때마다 입을 내밀 게 아니라 고개 쳐들고 하늘의 바(bar)를 보면 되겠다.

렛풀다운 운동으로 내려놓기 한 판!

바(bar)도, 삶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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