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하는 일이 있다. 신문을 스크랩하는 일이다. 조간은 8시에 일을 끝낸다. 뉴스데스크마냥 손을 놀리고 임직원들에게 공유하고 나면 시계도 8시에 손을 척 얹는다. 아니, 8시에 꾸역꾸역 일을 끼워 넣는다.
8시가 넘어야 하루 개시 손님인 사과를 만난다. 전날 밤8시부터 아침 8시까지, 12시간은 위장에게 자유를 부여한 금식 시간이다. 기다림이 클수록 만남은 더 뜨겁기 마련. 사과를 한입 베어 물면 “그래, 이 맛이야.”가 즙으로 베어 나온다. 그 맛은 비단 사과가 풍기는 당분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공복 후 아침 사과를 맞이한 지 8개월째다(어른들은 공복에 먹지 말라 하시지만). 그동안 사과는 밤낮 할 것 없이 식후 조연에 불과했다. 포만감에 들러붙은 입가심이라 사과 씹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허기진 기다림과 일을 마친 성취감이 한데 뒤섞여 그런지 사과 씹는 소리가 그리 우렁찰 수가 없다. 전엔 입에서 씹는 소리보다 위장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더 컸다. 이젠 사과의 신음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사과는 땅속에서 씨앗 한 점으로 시작해 마스크 아닌 봉스크도, 비바람도 견뎌 먼 길 드라이브해 내게 왔다. 사과는 송곳니, 어금니와 부딪치며 자신의 여정을 고래고래 소리친다. 그런 사과 맘도 몰라주고 후식으로 대충 만났으니 원. 만회 좀 하려고 나도 인내와 기다림, 고귀한 몸으로 사과를 안으로 들인다(사과, 그가 겪은 세월에 비하면 우스워 보이겠지만).
정들면 예뻐 보인다고. 사과에게 무슨 일이 있어 그리된 건진 몰라도, 시퍼렇게 골병이 들었든, 검버섯에 쭈글쭈글 해졌든, 볼 빨간 사춘기를 겪든지 간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 사과와의 인연이 아름답기만 하다.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 사과 몸에도 칼을 대지 않는다. 한 손은 접시를 받치고 한 손은 사과 홈에 엄지와 중지 끼워 갈비 뜯듯이 먹는다(칼로 썰어 먹으면 떨어져나가는 살점도 많아 씨와 꽁지만 남기고 해치운다)
산 음식 사과, 그 어떤 것도 가미하지 않은 순수 美. 나도 그 상태로 사과를 받아들인다. 사과는 불로 익히지 않아도 나와 뜨겁게 포옹하고 내 속에서 데워진다. 각자 있을 땐 싸늘했는데 산 음식이 내 몸에 흡수되니 생동감으로 내가 산다.
내 속 빈 강정에 뛰어든 사과 240알,
‘사과 같은 내 얼굴 예쁘기도 하지요. 눈도 반짝 코도 반짝~’ 이라면
코로나19, 이제 그만 세상에 사과 좀 하시지!
고입 지원을 앞둔 중3 아들,
초딩, 중딩, 대딩 될 아이들,
우리 신입생들에게 이제 그만,
학교 추억과 설렘 되돌려주면 안 되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