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눈
- 겨울눈 -
지고 나서야 알겠더라
지난 시간의 의미를
그 시간을 함께한
사람의 의미를
그들과 함께 지은
공간의 의미를
무너지고야 알겠더라
아무리 기를 쓰고 애를 써도
무너질 것은 반드시
무너져야 한다는 걸
그것 또한 얼마나
부질없다는 걸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만든 것은 모두
무너진다는 걸
세상 제일 부질없는 건
말로 지은 사람 관계라는 걸
모두 떠난 뒤에서야 알겠더라
인연만큼 허무한 것도 없음을
악연만큼 질긴 것도 없음을
악연과 인연은 순서를
바꿀 수 없음을
우리가 사는 시간은 아등바등
그 모진 연을 짓기 위한
시간이었음을
무연으로 돌아가지 않는
시간은 없음을
그 무연의 끝은
자연이라는 걸
바람조차 빈 봄날
빈 나뭇가지에서
의무감을 지운 겨울눈과
마주한 그 빈 봄날
보았다
시간 아래로
가라앉지 않으려고
허덕대며 끊길 듯 말 듯 한
숨 길을 찾는
마음 빈 사내와
그의 빈 마음에 겨울눈을 틔우려
숨 넘어가는 두 아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