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일기

- 아빠, 가지마 -

by 이주형

느낌 일기

- 아빠, 가지마 -


한 때는 주말은 물론 심지어 명절에도 학교에 갔습니다. 특히 명절에는 고향 마을을 찾는 귀성객들에게 조금이라도 학교와 고향의 정을 공유하기 위해서 차례를 지내자마자 갔습니다.


연도 내놓고, 투호와 제기도 내놓고, 피아노실, 도서실 문도 열었습니다. 당연히 축구공, 농구공 등도 잘 보이는 곳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본관 입구에는 커피, 녹차, 초코 음료 등 각종 음료와 간식도 두었습니다.


"학교를, 고향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편하게 교무실에 말씀 주세요."


명절 인사가 담긴 환영의 팻말도 정성껏 준비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망설이든 사람들도 긴장과 경계를 풀고 금세 즐겁게 학교 시설을 이용하였습니다.


인천에서 온 아버지와 초등학생, 중학생으로 보이는 두 딸의 이야기를 잊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이 학교가 당신께서 다녔던 학교라고 딸아이에게 학교의 역사를 들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는데, 없어졌다고 생각했던 학교가 이렇게 있으니 너무 좋다고 연신 웃음꽃을 피우셨습니다. 덩달아 딸아이들도 기분 좋게 웃었습니다.


그중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는 자신은 이 학교에 다닐 거라고, 아버지에게 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그러면 할머니도 자신이 돌 볼 수 있지 않느냐고, 정말 철이 가득한 말로 아버지께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어떻게 하면 이 학교에 다닐 수 있는지 물으셨습니다. 그러면서 당신이 다니실 때의 학교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 어떤 보물보다 더 귀한 이야기였습니다. 꼭 학교박물관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한 때 꿈꾸고 꿈꾸었던 학교가 바로 "돌아오는 학교"였습니다. 공부 때문에 외지로 나갔던 사람들이 공부 때문에 다시 고향으로 온다면,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교육을 위해 온다면, 그것이야말로 지역 붕괴를 막는 것은 물론, 공부로 모두가 행복해지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몇몇 성과도 있었습니다. 대도시에 살던 손녀가 학교로 전학을 왔고, 그 아이는 자신의 꿈을 이루어 '다시 돌아오겠다'는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졸업하였습니다.


그때는 즐거웠습니다. 뭔가릍 해도 힘이 났습니다. 누구는 "하고잡이"라고 놀렸습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즐거운 사명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아닙니다. 출근 길이 너무 깁니다. 어쩔 수 없는 의무만 남은 학교까지 가는 길 참으로 멉니다. 학교 가기 싫다고 떼쓰던 아이를 이해하지 못한 게 한으로 남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잘하고 있는지, 맞는지를 모르겠습니다. 또 누구를 위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비록 아무것도 결정된 것은 없지만. 어쩌면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를 내보내는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만 착잡합니다. 절대 그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더 힘을 내어 방법을 찾고 찾아야 하지만 이젠 힘이 없습니다. 지금의 한계가 죽도록 싫습니다.


누구는 그냥 맘 편히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하지만 의미를 잃은 일을 해야 하는 마음은 정말 죽을 맛입니다.


오늘도 알람보다 훨씬 일찍 깬 아이가 눈이 붉어진 채 멍하니 서 있는 내게 손수건을 건네며 말합니다.


"아빠, 학교 가지 마. 안 가도 돼!"


도저히 아이에게만은 붉은 눈을 보일 수 없어 인사도 못하고 집을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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