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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선규 Aug 08. 2018

프라하 르제테조바(Řetězová) 거리의 숨은 이야기

기괴한 원주민 벽화

 프라하 시내를 걷다 보면 다양한 벽화가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래서 프라하 골목을 걷는 일은 하나의 발견을 위한 모험 같은 기분이다. 르제테조바(Řetězová) 거리의 벽화를 발견한 것도 까렐교를 향하던 중 이곳저곳에 있는 벽화를 구경하다 우연찮게 길을 잘 못 들게 되면 서다. 벽화는 세월이 흘러 칠이 많이 벗겨진 상태로 사람인지 괴물인지 구분이 어려워 간신히 사람 형태를 한 '어떤 것' 두 명이 그려져 있다는 것만 알아볼 수 있었다.  보통 이렇게 낡은 벽화는 없애거나 새롭게 칠해놓는 경우가 많은데, 문득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 마침 벽화가 있는 건물에 카페가 있어 커피도 마실 겸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카페는 한산했다. 벽화와 같이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지만 흘러간 시간만큼 숙성됐다는 듯 진한 커피 향과 고풍스러움이 느껴졌다. 진한 커피 향에 빠져 취해 들어온 목적조차 잊을 뻔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커피를 주문하면서 슬쩍 벽화에 대해 물었다. 종업원은 벽화에 대해 물어보는 게 신기하단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능숙하지 않은 영어로 대강의 설명을 해주었다. 

벽화는 오래전 이 장소에 있었던 어떤 사건을 풍자하기 위해 그려 놓은 것으로 원래는 기괴한 모습의 원주민 세명이 그려져 있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씩 지워져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긴 내용의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대강 들었던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벽화는 왼쪽 몽마르트 카페 간판 위에 있다
본래 3명의 원주민이 그러져있던 벽화


 이야기는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대륙에 대한 항해가 활발해지면서 유럽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미지의 대륙 원주민에 대한 궁금증과 환상이 생기게 되었다. 간간히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선원들의 얘기는 이를 더욱 증폭시키곤 했는데,  그들의 말에 따르면 원주민은 기괴하게 생겼으며 날고기를 먹고 동물의 언어를 사용할 줄 안다고 묘사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대륙에서 온 한 남성이 자신의 쇼에 그가 데려온 원주민을 출연시키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절정에 이르렀다. 그가 진행하는 '원주민의 기상천외한 쇼'는 세 명의 원주민이 가죽으로 만든 옷과 깃털이 달린 장식을 쓰고 나와 전통 춤을 추고 특이한 소리를 지르며 사람들 앞에서 생고기를 먹는 등 쇼의 이름대로 기상천외했다. 이 쇼는 단숨에 프라하 최고의 쇼가 되었고 그의 재산은 날이 갈수록 쌓여갔다.

흥행이 계속되던 어느 날, 남부 보헤미아의 농부가 이 소문을 듣고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 프라하로 왔다. 쇼가 시작되자 난생처음 보는 볼거리에 그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렇게 평소와 같이 진행되어 드디어 마지막 원주민 쇼만 남긴 그때. 그는 익숙한 세 명이 무대 가운데로 입장하는 것을 보았다. 

"어이 프랭클린! 알로이스! 빈체! 어떻게 된 거야 너희들이 거기 왜 있어?"

세 명의 원주민은 관객석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그대로 얼어붙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평소와 같은 기괴한 묘기를 펼쳤다. 

하지만 곧이어 농부는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야! 너네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거기서 뭐 하고 있어! 말없이 프라하로 가더니 여기서 있었던 거야?"

이로 인해 그동안의 원주민 쇼가 사기극임이 밝혀지자 그들은 모든 것을 둔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쳤다. 그 후, 그들이 있던 장소에는 건물이 세워졌고 이 사건을 풍자하기 위해 건물에 벽화로 남기게 되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전설을 기대했던 나에게 이번 이야기는 싱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벽화 하나에도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고 이런 프라하가 좋아 떠나지 못한 채 머물고 있는 나 자신을 생각하니 혼자 웃음이 터졌다. 한참 웃고 나니 빤히쳐다보는 주변 눈빛에 얼굴이 빨개져 그만 마시던 커피를 두고 급히 카페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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