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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원 Sep 23. 2024

18. 공기 위로(慰勞)_쉼,

당신의 삶에 쉼표가 필요할 때.

추석이 지나도 더위가 가시지 않던 여러 날의 마지막날이었습니다.  분명 여름 마지막 글램핑을 해보겠다고 집을 나섰는데 굵은 비가 내려 마음을 심난하게 하더니, 하루종일도 모자라 밤새도록 무섭게 휘몰아치는 바람에 밤잠도 설칩니다.


글램핑이기 망정이지 텐트였으면 가차 없이 도로시가 될법한 바람 속에서 밤을 보냈습니다. 밖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가 커다란 동물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방향 없이 휘몰아치는 탓에 텐트 여기저기가 펄럭였습니다. 실로 다 큰 어른이도 겁을 주워 먹고는 선잠으로 지새운 그런 밤입니다.


아침이 되어 크게 마음을 먹고 텐트 지퍼를 올리고 얼굴을 내밀어 봅니다. 코끝이 서늘합니다. 지난날의 더위와 습한 공기는 온데간데없고, 서늘한 정적 뒤로 조금은 잦아든 바람만 남았습니다.


용기를 내어 온몸을 텐트 밖으로 빼내고서 주변을 조사하듯 둘러봅니다. 부서진 나뭇가지며, 솥뚜껑과 파라솔 우산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뭔가 많이 휩쓸고 간 흔적이 분명합니다. 이런저런 추리를 해보다 발아래 스며드는 옅은 햇살에 하늘을 보니 무겁고 어두운 구름이 아주 빠르게 밀려나가는 것이 보입니다. 파랗고 하얀 물감을 한줄한줄 채워나가 듯한 모습에 하늘멍을 한동안 하고 섰습니다.


그렇게 꽉 채운 하늘은

 " 가을입니다.!"


언제부터 계절이 이렇게 스며드는 게 아니라 전환되는 형태로 바뀌었을까요?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한 문지기가 된 마냥 얼떨떨합니다.


' 아...... 이렇게 계절이 오기도 하구나!'



가을이 왔는데, 그냥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기가 아쉬워 근처 북카페를 찾아 들려보기로 합니다. 경기도 양평 용문산 아래에서 잠시 멈춰 서 있는 바람개비를 만났습니다. 밤과 같은 세찬 바람은 아니어도 분명 바람이 머물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저 바람개비는 멈춰 있는 거지?  멈춰진 건지, 멈추게 해 둔 건지는 알 수가 없으나 이곳이 잠시 들렀다 갈 북카페입니다.


급하게 찾아들어온 곳이지만 단숨에 저의 '오즈'가 되었습니다. 저의 세상과 잠시 격리되었고, 겁쟁이 사자와 똑똑해지고 싶은 허수아비, 심장이 필요한 양철 나무꾼 그리고 어쩌면 서쪽 마녀(?)도 만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골목 안쪽 숨어있어서인지,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북적임 없는 조용한 북카페입니다. 곳곳에 비치된 연륜이 느껴지는 책들과 소품들에 절로 웃음이 납니다. 한편에는 주인장의 생각이 투영되는 판매용 서적들도 보입니다. 대형 서점들에서 느낄 수 없는 친근함이 있습니다. 손을 뻗어 책장을 넘겨보는 일이 이렇게 가벼운 일이었나요?


주인장님의 취향이 저와도 많이 닮아 있어서 그 공간 안에서 한없이 행복감이 차오릅니다. 저는 분명 책에 대한 물욕이 넘쳐나는 사람입니다. 다 읽어내지 못해도 소장하는 것 자체가 즐거우니 말입니다. 그렇게 조용한 그 방을 한참 동안 서성여봅니다. 그 공간 까지도 혼자 빌려 쓰는 느낌이 들 무렵 책 한 권을 집어 들고 나옵니다. 마침, 창을 통해서 들어오는 시원한 공기의 압력이 느껴져 멈춰 서서 뒤돌아 봅니다.


하얀 커튼이 바람을 품어 날고 책 특유의 냄새가 함께 어우러지는 찰나의 순간입니다.


잠시만

정지


그렇게 멈춘 시간을 눈과 마음에 담고 자리로 와서 다 살펴보지 못한 구석구석으로 시선을 옮겨 봅니다. 오래 묵은 안경을 버리고 새로운 안경으로 세상을 보는 날 같습니다. 티끌 없이 맑은 시야가 현실적이지 않아서 몇 번이고 눈을 비벼 봅니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세상을 대하는 나를 내버려 둬 봅니다.


오즈는 너무 흥미로운 세상입니다.





이제 나의 세상으로 다시 나가야 한다고 자각할 무렵  눈앞에 자꾸 글자가 아른거려 그 창으로 걸어가 봅니다. (창문을 정말 깨끗하게 닦아 두셨네요!)


창문에 붙여진 글씨였는데,

창 너머를 바라볼 때면 내 눈앞에 떠 있는 3D 활자 같습니다.


" 당신의 삶에 쉼표가 필요할 때"





정말 멋진 곳 아닙니까? 그 쉼표 제가 찍고 갑니다.

여름가을이 아닌 여름, 가을 중입니다.


글을 쓰다 보니 다시 한번 더 느낀 사실은 우리를 위로하는 것이 세상에 너무 많다는 사실입니다. 단지 그 위로를 받아들일 멈춤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가끔은 나 스스로를 잠시 멈출 수 있는 용기를 내어보면 좋겠습니다.  그럼 쉼의 이 공기가 우리 모두를 위로하려고 멈춤의 시간 안으로 찾아올 테니까요.


[ 다시 길 떠나기 전 든든히 배 채우는 것도 있지 마세요! ]



-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따스한 위로를 전하고픈 마음에 연재를 시작한 공기 위로(慰勞)는 정작 제 자신을 가장 많이 위로한 것 같습니다. 글 이란 것은 참 용감하고 힘이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조금씩 단단해져 가는 저에게 칭찬과 더불어 제 글을 응원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조금 더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꿈꾸는 가을밤 되세요. (모리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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