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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경훈 Aug 06. 2019

응급실 일기

Good Doctor


 1.
 어린 시절부터 레지던트 무렵까지 다닌 교회는 한국전쟁 직후까지 거슬러 오르는 긴 역사를 지녔으나 가장 많을 때에도 전체 교인 숫자가 200명을 겨우 헤아려서 교인 대부분이 서로 잘 알았다. 대가족 혹은 확장된 가족 같은 진짜 공동체 분위기라 즐거운 추억도 많고 나의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남겼으나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면 늘 평안하고 따뜻하지는 않았다. 100-200명 사이, 대부분 150명 전후였던 규모의 친밀한 집단은 자질구레한 분쟁이 끊이지 않을 수 밖에 없고 드물게는 심각한 반목도 있었다. 그리고 그저 혼자 교회 다니는 아이가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 외할머니와 외삼촌들까지 모두 같은 교회에 출석하고 교회 초창기부터 활동했던 가족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은 녹록하지 않았다. 부모님, 특히 어머니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거나 이런 저런 분란에 휘말리는 것을 아주 싫어하셔서 나는 교회에서 예의바르고 공손하게 행동하며 사람들이 싫어하는 얘기나 오해하기 쉬운 말을 하지 않도록 교육받았다. 물론 그런 교육이 나쁘지는 않아 냉소적인 독설가에 거친 싸움꾼이 된 지금도 나는 '상대가 나쁘다고 밝혀지기 전'까지는 예상 외로 정중하고 예의바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이답지 않게 권력 구조에 민감하고 사람들이 던지는 말을 표면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이면에 있는 진짜 뜻을 추측하는 버릇을 지니게 되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성장한 덕분에 나는 의대생과 레지던트 시절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이란 독특한 조직에서 '비주류', '소수파' 시쳇말로 '아웃사이더'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의대생 때는 선배에게, 레지던트 때는 윗년차와 교수에게 고분고분하지 않고 밉상스런 말을 서슴치 않았으며 후배와 아랫년차에게도 때때로 대단히 가혹하고 조직의 관행과 불문율을 우습게 알고 종종 어겼음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과장하면 '음모가 판치는 르네상스 이탈리아 궁정에서 자란 아이' 같은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나는 집단에서 누가 실질적 권력자인지, 별다른 권력은 없으나 겉으로 드러나는 지위만 높은 사람은 누구인지, 총애 받는 후계자는 누구이며 시샘하는 잠재적인 찬탈자는 누구인지, 강직한 소수파 리더는 어디에 있으며 욕심 많고 멍청한 다수파 행동대장은 누구인지 잘 파악했고 사람들의 말에 담긴 진짜 의도를 남보다 쉽게 알아차렸다. 다만 그렇게 '부정적 감정과 의도'에 대단히 민감한 만큼 나는 사람들이 지닌 순전한 호의나 감사, 이른바 '긍정적 감정과 의도'를 마주하면 아주 어색하고 당황한다. 

 2.
 '선생님! 진짜 멋있어요!'

 아침 해가 완전히 떠오른 시각, 응급실에서는 예상하기 힘든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기분 좋은 미소를 띤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목소리의 주인은 급성 충수염(acute appendicitis, 이른바 맹장염)으로 응급수술을 기다리며 응급실에 대기 중인 환자의 보호자였다. 그런데 환자는 이미 다른 지역에서 복부 CT를 찍어 급성 충수염으로 진단받고 전원해서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게 감사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이미 진단받은 질환에 대해 설명하고 수술 시간과 앞으로 치료 계획을 간략하게 얘기하며 '곧 일반외과 전문의가 수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것입니다'고 덧붙였을 뿐이다. 오히려 환자는 내게 야단 아닌 야단을 맞았는데 다른 지역의 병원에서 퇴원하고 우리 병원으로 이동하는 동안 목이 마르다며 물을 마셨기 때문이다. 물 한 모금 정도가 아주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은 높지 않으나 응급수술이라도 가능하면 금식 시간을 지키는 것이 좋고 복부 CT를 시행해서 충수염을 진단한 의사가 분명히 '수술 전까지 아무 것도 먹지 말라'고 얘기했을 텐데 사소한 이유로 의료진의 지시를 함부로 어기는 것은 자칫 큰 문제를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의아했다. 사람이 누군가를 칭찬하고 추켜 올리는 것은 감사와 고마움의 표현일 때가 많으나 그 보호자는 내게 크게 고마워할 것도, 감사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감사와 고마움의 표현 외에도 칭찬에는 종종 다른 목적이 있다. 첫번째는 칭찬하는 대상의 호감을 얻는 것이 내게 실질적 이익을 주는 경우다. 두번째는 그냥 내뱉는 상투적인 표현일 때다. 이른바 '영혼 없는 칭찬'인데 공개적인 장소와 공식적인 자리에서 주고 받는 칭찬이 여기에 속한다. 세번째는 칭찬을 통해 상대를 공격하려는 자신의 진짜 의도를 감추고 나아가 상대의 경계를 해이하게 만들려고 할 때다. 네번째는 겉으로만 칭찬일 뿐 실제로는 조롱에 가까운 내용을 전하려는 경우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보호자의 칭찬은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아까부터 듣고 있었어요. 처음 환자한테는 그냥 그러려니 생각했는데 두번째 환자한테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정말 괜찮은 의사라고 느껴져서요.'

 첫번째 환자와 두번째 환자라. 누군지 어렵지 않게 추정할 수 있었다. 급성 충수염으로 응급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 외에 응급실에 머무르는 환자가 둘 뿐이었기 때문이다. 

 첫번째는 '온 몸이 아파서 견딜 수 없다'고 호소하는 환자였다. 몇 달 전부터 같은 증상을 호소했고 인근 병원에 서너차례 입원해서 이런저런 검사를 시행했으나 별다른 이상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하며 우리 병원에서도 소화기내과 외래에서 시행한 혈액검사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어 그날 오전 위내시경이 예약된 상태였다. 환자는 우리 응급실을 찾기 몇 시간 전에도 인근 응급실을 찾아 진통제를 투여받았으나 계속 '온 몸이 아파 참을 수 없다'고 호소했다. 그런데 혈압, 맥박, 호흡수, 체온이 정상 범위에 있을 뿐 아니라 이학적 검사에도 별다른 문제가 확인되지 않았다. 그리고 환자가 호소하는 통증의 양상도 조금 이상했다. 엄밀히 따져 통증보다는 불안에 가까웠고 어떤 진통제든 주사를 맞으면 금방 호전하고 병원을 떠나 집에 가면 다시 악화되는 양상이었다. 그래서 나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응급실에서 진통제를 투여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며 지금껏 치료받은 과정과 우리 병원 외래에서 시행한 검사 결과를 종합하면 실제로 심각한 이상이 있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고 몇 시간 후 시행할 위내시경에서 경미한 위염이 나타날 수도 있겠으나 그외 별다른 이상을 찾지 못한다면 계속 '육체적 원인'을 찾을 것이 아니라 '심리적 원인'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환자와 보호자는 내 설명에 수긍했다. 그래서 진통제 투약 같은 처치 없이 외래에서 예약한 위내시경을 시행할 때까지 응급실에서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두번째는 '영양이 부족해서 어지러우니 비싼 영양제를 달라'며 찾아온 환자였다. 환자는 7-8년 전부터 종종 '눈 앞이 빙글빙글 돌아 걸음이 휘청거리는 증상'으로 인근 응급실을 찾아 영양제를 투여받았고 우리 응급실도 최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실질적인 검사는 전혀 진행하지 않고 오직 '비싼 영양제'만 투여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환자에게 영양제를 투여하면 증상이 좋아졌는지 물었는데 '당연히 영양이 흡수되는 시간이 필요하니 며칠 지나면 좋아지더라'고 대답했다. 나는 환자에게 신경학적 검사를 시행했는데 안구진탕(nystagmus)이 있고 자세 변화에 따라 악화하는 '빙글빙글 도는 양상의 어지러움'이 확인되었다. 다행히 근력 저하는 관찰되지 않았고 소뇌 경색을 의심할만한 증상도 없었다. 환자는 '영양이 부족해서 생긴 어지러움'이 아니라 양성 발작성 체위성 현훈(BPPV, Benign Paroxysmal Positional Vertigo) 같은 말초 평형기관 장애였다. 사람들이 흔히 '이석증'이라 부르는 질환인데 치료하지 않아도 며칠 동안 안정을 취하면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영양제를 투여해서 좋아진 것이 아닌데도 환자는 영양제 때문에 좋아졌다고 믿기 시작했고 아무리 비싼 영양제를 투여해도 며칠이 지나야 증상이 좋아지는 것은 '영양이 흡수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했다. 그래서 나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영양제가 필요한 증상이 아니란 것을 얘기하고 말초 평형기관 장애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수액과 진경제, 소량의 안정제를 처방하고는 신경과 외래에서 비디오 안진검사를 시행하도록 조치했다. 

 '환자가 달라고 하니 그냥 진통제 주고 비싼 영양제 처방하면 선생님도 편하실 텐데 환자가 화내고 보호자가 오해할 수 있는데도 끝까지 설명해서 필요한 치료를 받게 하는 걸 보니 기분이 좋아서요.'

 그 보호자는 확실히 다른 목적없이 순전히 칭찬하고 싶은 듯 했다. 그래서 나는 겸연쩍고 대단히 어색했다. 솔직히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러면서 마음 속에 부끄러운 물음이 떠올랐다. 

 '나는 정말 칭찬 받을 만한 좋은 의사인가?'

 3.
 서너 명의 비교적 젊은 보호자들, 크지 않은 체격이나 오랜 세월 농삿일로 단련된 강인한 팔과 다리를 지닌 환자 그리고 환자의 배우자로 보이는 역시 오랜 세월 농삿일로 가무잡잡한 피부를 지닌 보호자. 응급실을 방문하는 환자-보호자 조합 가운데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대단히 젼헝적인 조합이다. 물론 응급실을 방문한 이유와 목적은 다양하나 환자는 오랫동안 진료받은 만성 질환이 있고 비교적 젊은 보호자는 환자의 만성 질환에 대해 극히 제한적인 지식만 가지고 있으며 환자와 배우자로 보이는 보호자 역시 정확한 질환명은 모르고 가까스로 전화를 걸어 함께 병원에 간 적 있는 보호자들을 연결하면 그들은 대략 알고 있으나 사람마다 중요 사안을 다르게 말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부분은 공통적이다. 

 그날의 환자도 그랬다. '며칠 전부터 가슴이 답답하다'며 호소했는데 5-6년 이상 꽤 큰 병원에 다니고 있었으나 환자도, 동행한 보호자들도 무슨 질환으로 치료받는지 몰랐다. 그저 '심장이 좋지 않다'고 얘기할 뿐이었다. 

 환자는 경미한 호흡곤란이 있고 체온은 정상이나 혈압이 조금 낮았으며 빈맥(tachycardia)이 확인되었다. 즉시 심전도를 시행했고 분당 맥박수 170회의 심방세동(atrial fibrillation)이 관찰되었다. 혈압이 조금 낮았으나 의식이 명료해서 베라파밀(verapamil) 5mg을 정맥주사로 천천히 투여하자 다행히 분당 맥박수는 90-100회로 감소했다. 발작성 심실빈맥(paroxysmal ventricular tachycardia) 같은 문제라면 분당 맥박수를 정상범위(70-110회)로 만드는 것만으로 충분했으나 심방세동은 다르다. 심방세동은 쉽게 말해 심장이 엇박자로 뛰는 질환이라 혈전을 만들 가능성이 있어 와파린 같은 항혈전제를 복용해야할 가능성이 있고 심장 근육이나 판막의 손상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아 그런 문제를 확인해야 한다. 맥박수가 정상범위로 감소한 후 시행한 흉부 X-ray에서 심한 심비대(cardiomegaly, 심장은 기능에 문제가 생길수록 커진다)와 경미한 폐부종(pulmonary edema)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장기간 진행된 심장문제가 확실히 있었다. 당연히 심장내과로 입원해서 치료할 필요가 있었으나 응급실에서 중요한 사안은 지금 당장 관상동맥 조영술(coronary angiography) 같은 시술이 필요하느냐 여부였다. 이전에도 심방세동이 있었다면 별다른 문제가 없을 수도 있으나 이전에는 심방세동이 없었다면 '며칠 전부터 가슴이 답답하다'는 증상이 단순한 심방세동 악화가 아니라 최근에 생긴 심근경색이나 판막 질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지 확인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환자의 과거력을 알아야 했다. 

 그러나 과거력을 아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다른 지역의 꽤 큰 병원에 다니던 고령 환자가 갑작스레 응급실을 방문한 경우 '이제 자식 사는 곳 가까이 있는 병원에 다니려 한다'가 이유일 때가 많다. 그런데 그러면서 정작 의무기록과 진료의뢰서는 가지고 오지 않을 때가 많은데 환자도 그랬다. 그리고 동행한 보호자 모두 '글쎄 심장이 안 좋습니다' 이상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환자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누군가 '심장 혈관이 막혀서 뚫고 막히지 말라고 관까지 넣었소'라고 대답했는데 혹시 병원 진료할 때 함께 갔던 사람이 있냐는 물음에 전화로 새롭게 연결된 보호자는 '심장에 혈관검사 했는데 막힌 것이 없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소'라고 말했다. 

 그러다가 대뜸 누군가 '아니, 의사가 형사도 아닌데 왜 이렇게 닦달하고 집요하게 물어요! 우리가 죄인이요?!'라고 목소리 높였다. 당연히 나도 잠자코 있지 않았다. '그러면 보호자 비위 맞추려고 대충대충 묻고 진료하거나 세월아 좋구나 느긋하게 진행할까요? 환자는 다름 아니라 여러분의 부모이고 심장 박동수는 정상으로 만들었으나 심방세동은 단순한 부정맥이 아닙니다'고 맞받아쳤다. 그러면 이어지는 상황은 비슷하다. '의사가 대단한 벼슬이냐?', '너 나이 몇살이냐?', '더러워서 치료 안 받는다', '요즘엔 의사도 친절하지 않으면 망한다더라'가 보호자 쪽에서 주로 사용하는 말이다. '의사가 벼슬이라 한 적 없고 응급실이라 환자를 위해 정확한 정보를 빠르게 수집할 뿐입니다', '그러는 분은 그 연세에 이렇게 행동하니 부끄럽지 않습니까?', '지금 저한테 치료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한 상황입니다',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사는 친절하지 않아 망하는 것이 아니라 중증 질환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면 망합니다'가 내가 받아치는 말이다.  

 다행히 그 환자의 경우 설전은 짧게 끝났다. 으례 그렇듯 오해가 있었다며 서로 사과했고 나는 한층 상세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보호자는 최대한 진료에 협조했다. 이리저리 알아본 결과 환자는 이전에도 심방세동이 있어 와파린을 복용하고 있었고 현재 심비대가 진행되고 심부전이 악화하였으나 당장 시술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어서 응급실에서 간이 심장초음파를 시행하고 심장내과로 입원해서 다음날부터 정식 심장초음파와 검사 목적의 관상동맥 조영술을 시행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런데 이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을 지켜보았어도 과연 나를 '좋은 의사'라고 칭찬했을까? 정말 '좋은 의사' 혹은 '칭찬 받을 자격 있는 의사'는 환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나는 환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가슴 따뜻한 휴머니스트가 아니다. 그날 아침 신체형 장애(somatoform disorder) 가능성 높은 환자에게 환자가 요구하는 진통제를 투여하지 않고 차근차근 자세히 설명한 것과 말초 평형기관 장애인데 오랫동안 제대로 된 진단없이 영양제만 투여받던 환자에게 영양제 처방 대신 신경과 진료를 권유했던 것은 환자를 사랑하고 그들 입장에서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의사로 내게 주어진 의무이며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 불필요한 진통제를 투여하고 비싼 영양제를 처방하는 것은 의사로 지닌 자존심과 자존감을 스스로 깍아먹는 행동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앞으로도 '칭찬 받을 만한 좋은 의사'는 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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