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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경훈 Aug 06. 2019

응급실 일기

5월의 두 아이


 1.
 환자는 가슴을 짜내듯 숨을 몰아쉬었다. 119 구급대원이 비강 카테터를 이용해서 산소를 공급했으나 환자의 증상을 호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인 듯 했다. 환자는 119 구급대의 이동식 침대에서부터 상체를 앞으로 잔뜩 숙이고 앉아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숨을 거칠게 내뱉았고 응급실 침대로 옮겨서도 마찬가지였다. 간호사가 측정한 혈압과 체온은 정상 범위였으나 호흡수는 분당 35-40회로 증가했고 맥박수 역시 분당 110-120회로 빨랐다. 나는 즉시 환자의 가슴에 청진기를 가져다댔다. 오른쪽 폐음은 현저하게 감소했고 왼쪽 폐에서는 천명음과 수포음이 들렸다. 센서를 사용해서 측정한 산소포화도 역시 80%를 겨우 넘겼다. 그래서 나는 비강 카테터 대신 보유주머니 마스크(reservoir bag mask)를 사용해서 산소를 공급하라 지시하고 흉부 X-ray를 처방했다. 오른쪽 폐음이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감소했다는 것은 결핵 같은 만성질환으로 오른쪽 폐가 거의 파괴되었거나 기흉(pneumothorax)이나 심각한 흉수(pleural effusion)로 폐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했는데 왼쪽 폐의 천명음과 수포음은 흉수나 기흉으로 설명할 수 없어 오른쪽과 왼쪽 폐에 각각 다른 종류의 병변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 빠른 확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흉부 X-ray를 시행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물론 호흡곤란이 심한 환자에게 산소를 투여하며 X-ray를 시행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나 환자의 경우에는 의학적 요소 외 사안이 더 문제였다. 환자는 의료보험증, 여권,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같은 신원을 파악할 수 있는 소지품이 없었고 호흡곤란이 너무 심해 제대로 말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구급대원에게 누가 신고했는지 물었는데 그는 난처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게 말이죠. 아들이 신고했습니다.'

 그제야 나는 환자가 119 구급대의 이동식 침대에 실려 응급실에 들어올 때부터 따라 들어온 꼬마를 인식했다. 초등학교 1학년 혹은 2학년, 아무리 나이 많아도 초등학교 3학년은 넘지 않을 꼬마는 짱구머리와 동그란 검은테 안경 아래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지녀 비록 옷차림은 남루하나 총명해 보였다. 그러나 아무리 똑똑해도 그 또래 아이가 아버지의 주민등록번호를 알 가능성은 낮았다. 

 '아버지 이름이 뭐지?'

 내가 꼬마에게 묻기 전에 응급실 행정직원이 꼬마에게 물었다. 그도 나만큼 환자의 신원을 찾아 병원 전산시스템에 등록하는 것이 절실했다. 꼬마는 총명해 보이는 외모에 걸맞게 아버지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똑부러지게 대답했고 다행히 몇 년 전 우리 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어 주민등록번호를 몰라도 전산시스템에 등록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시행한 흉부 X-ray에는 예상보다 심각한 문제가 관찰되었다. 

 일단 오른쪽 폐는 정상 부위가 10-20%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그저 하얗게 보였는데 일반적으로 X-ray에서 폐가 하얗게 보이는 것은 흉수(pleural effusion, 복강에 고인 물을 복수라고 부르듯 흉강에 고인 물을 흉수라고 한다)나 농양(abscess, 고름)일 가능성이 높은데 환자의 병변은 모양이 독특했다. 흉수라면 일어서서 찍은 흉부 X-ray에서는 아랫쪽으로 모이기 마련이고 농양이라면 타원이나 반원 모양을 지니기 마련인데 환자의 병변은 거대한 기둥이 오른쪽 가슴에 박힌 것 같은 모양이었다. 다르게 생각하면 종격동(mediastinum)이 커진 것처럼 보였는데 그런 식으로 종격동이 확장하는 병변은 대동맥 박리(aortic dissection)일 때 나타난다. 그런데 그 병변이 대동맥 박리라면 환자는 호흡곤란이 아니라 극심한 흉통을 호소해야 했고 그 정도 크기까지 진행된 대동맥 박리라면 심각한 저혈압이 나타나는 저혈량성 쇼크(hypovolemic shock)가 나타나야 했다. 그리고 환자의 왼쪽 폐에는 전체의 1/3에 걸쳐 전형적인 폐렴 병변이 확인되었다. 결국 나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오른쪽 폐 병변을 규명하기 위해 흉부 CT를 처방했다. 

 흉부 CT를 시행하는 5-10분 간의 짧은 시간이 흐르고 진료용 컴퓨터를 통해 영상을 확인하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병변이 나타났다. 흉부 X-ray에서 환자의 오른쪽 폐 대부분을 차지한 '하얀 기둥 같은 병변'은 다름 아니라 위였다. 정상적으로는 폐와 심장이 자리한 흉강(thoracic cavity)과 위, 간, 신장, 소장, 대장 같은 장기가 위치한 복강(abdominal cavity) 사이에는 횡경막(diaphragm)이란 단단한 근육막이 있어 양쪽 공간이 독립적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대동맥, 대정맥, 식도는 흉강을 지나 복강까지 이어져서 횡경막에는 이 구조물이 통과하는 구멍이 있다. 물론 대동맥, 대정맥, 식도 이외 장기나 조직이 그 구멍을 통과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데 가끔씩 위의 일부분이 그 구멍을 통해 흉강으로 말려 들어갈 때가 있다. 그런 질환을 열공 탈장(hiatal hernia)이라 부르는데 응급수술이 필요하거나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다만 환자는 위의 일부분이 흉강으로 말려 들어간 것이 아니라 위 전체가 흉강에 있었다. 며칠, 몇주 혹은 몇달 정도가 지난 증상이 아니라 최소 수년이 경과했을 가능성이 높았고 오른쪽 흉강 대부분을 위가 차지한 덕분에 오른쪽 폐는 쪼그라들어 거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다행히 왼쪽 폐에는 만성 병변은 없었으나 X-ray에서 확인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랫쪽 1/3에 심한 폐렴이 관찰되었다. 

 CT 결과로 환자의 호흡곤란 원인은 명확해졌다.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된 열공 탈장으로 환자의 오른쪽 폐는 사실상 기능을 상실했다. 사실 이 부분도 이상했다. 보통 열공 탈장은 왼쪽에 생기는데 환자는 아주 심한 열공 탈장이 오른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의 일부가 딸려 올라간 것이 아니라 아예 식도가 짧아지면서 위 전체가 흉강으로 올라간 것 같은 형태였다. 그래도 왼쪽 폐는 정상이라 평소 일상 생활에 큰 문제는 없었으나 왼쪽 폐에 폐렴이 생기자 심한 호흡곤란이 나타난 상황이었다. 

 다행히 벤토린(기관지 확장제) 분무치료를 하자 보유주머니 마스크를 쓴 상태에서 산소포화도는 96-97%까지 상승했다. 물론 여전히 호흡양상이 좋지 않아 조금만 악화하면 기관내삽관(endotracheal intubation)과 인공호흡기 치료(ventilator care)가 필요했으나 일단 정맥 항생제를 투여하고 중환자실로 입원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의학적 요소 외 사안이 문제였다. 환자의 호흡곤란이 다소 완화되어 대화가 가능했으나 아내나 형제가 있느냐에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호흡곤란 뿐 아니라 환자에게는 정신과적 문제도 있는 듯 했다. 집요한 물음에도 보호자 여부에 대해 쓸만한 정보를 얻지 못하고 있을때 이번에도 검은테 안경의 꼬마가 다가오며 말했다. 

 '여기 고모에요.'

 약간 당돌한 태도로 꼬마는 휴대폰을 건넸고 그 휴대폰에는 환자의 누나가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환자의 누나에게 중환자실 입원이 필요하며 조금 더 악화하면 인공호흡기 치료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임을 설명하고 병원으로 와달라고 부탁했다. 30분 후 환자의 누나가 응급실에 도착했고 보다 자세히 환자의 상황을 설명하고 중환자실 입원장을 발부했다. 

 그러고 보면 호흡곤란에 끙끙거리는 아버지를 119 구급대에 신고한 것도 검은테 안경의 꼬마였다. 119 구급대에 신고하고 아버지의 신원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돕고 고모에게 전화해 휴대폰을 건네준 것도 모두 검은에 안경의 꼬마였다. 기특하다고 해야할지, 안쓰럽다고 해야할지 모를 애매한 감정을 느끼며 나는 몇 년 전 응급실을 찾은 비슷한 또래의 꼬마를 떠올렸다. 

 2.
 아이는 나이에 비해 왜소했다. 남루한 옷은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세탁할 시기가 지나 꼬질꼬질했다. 아이는 가까스로 걸어오긴 했지만 심한 통증에도 얼굴만 찌푸릴 뿐 다른 행동은 하지 못할 만큼 탈진한 상태였다. 지금 생각하면 탈진한 상태가 아니라도 잔뜩 움츠러든 아이는 얼굴을 찌푸리는 것 외에 다른 행동을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이와 동행한 남자는 아버지로 추정되었는데 아이만큼 남루하고 꼬질꼬질한 차림새에 키가 그리 크지 않음에도 구부
 정했다. 그때는 술 취하지 않았지만 가끔씩 떨리는 손과 탄력 없이 가무잡잡한 피부, 좋지 않은 치아 상태를 감안하면 평소에 술을 가까이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는 응급실에 들어올 때부터 약간 짜증나 있었지만 이유는 병원이 아니라 아이였다. 사내는 아이가 아프다는 것보다 응급실에 왔다는 사실에 더 짜증난 듯 했다.

 '이 놈이 아파서요.'

 사내는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지만 아이의 체온은 40.5도였다. 고열도 고열이지만 응급실에 들어올 때부터 부자연스럽게 어기적어기적 걸음을 떼어 놓는 것을 감안하면 아이는 복부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고 이학적 검사를 실시하자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아이는 상복부에 전반적인 압통이 아주 심했다.

 '오후에 OO병원 응급실에도 갔었는데 이놈이 주사 맞고도 계속 아프다지 뭡니까. 어린놈이 엄살은.'

 사내는 나에게는 정중히 말했지만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은 상당히 거칠었다. 응급실이란 공간 그리고 나의 존재가 사내가 아이를 거칠게 흔들거나 한대 쥐어박는 것을 막는 듯 했다. 아픈 아이는 그에게 걱정과 염려의 대상이 아니라 짜증나고 성가시고 거추장스런 존재에 불과했다.

 '보호자분은 아버님 되십니까?'

 존댓말을 사용해서 정중하게 물었지만 나의 태도는 사내에게 우호적이라기보다는 냉정하고 사무적이었다. 거기에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쏘아보며 물어 사내는 아픈 아이만큼이나 움츠러들었다.

 '아, 예.'

 사내는 그저 아이가 자신의 아들이라 거칠게 대했을 뿐 악랄한 존재와는 거리가 멀었다. 물론 가난하지만 선량한 사내란 뜻은 아니다. 사내는 악랄한 인간이 되기에는 능력과 배짱이 부족한 부류였다.

 '환자는 고열과 심한 복통이 있습니다. 특히 상복부 압통이 아주 심해 단순한 위경련이나 장염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수술이나 시술이 필요한 심각한 질환일 가능성이 높아 지금 당장 복부 CT를 시행해야 합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사내는 잠깐 우물쭈물했지만 오랫동안 고민할 가능성은 적었다. 아이는 의료보험이 아니라 의료보호에 해당해서 복부 CT를 찍어도 응급상황이면 진료비가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사내는 복부 CT에 동의했다.

 고열을 동반한 심한 복통이며 이학적 검사에서 상복부에 심한 압통과 반발통이 있어 복부 CT를 처방했지만 뚜렸하게 어떤 질환일거라 예상하기가 어려웠다. 10대 초반인 만큼 장중첩증 따위는 아예 가능성 없었다. 상복부 특히 명치 부분에 압통과 반발통이 심했으니 어른이라면 위궤양 천공으로 인한 복막염이나 담낭염 혹은 담관염을 의심하겠지만 10대 초반 소아에게는 드문 질환이다. 그래서 나는 외상으로 인한 복막염을 의심했다. 다시말해 아동학대로 인해 외상으로 인한 복막염이 생긴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그러나 복부 CT 결과는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외상으로 인한 복막염이라 의심할만한 병변은 어디에도 관찰되지 않았다. 다만 터질듯 부풀어 오른 담낭 주변 염증이 아주 심했고 담관 역시 심하게 확정되었으며 1cm 넘는 결석이 존재했다. 환자의 질환은 담관결석(CBD stone)으로 인한 급성 담관염(acute cholangitis)이었다. 지방 분해에 관여하는 담즘(쓸개즙)은 간에서 만들어져 담낭(쓸개, gall bladder)에 저장되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담관(bile duct)이라 불리는 좁은 통로를 통해 십이지장으로 분비된다. 그런데 담낭에 저장된 담즙은 때때로 서로 엉켜 결석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런 담낭결석(gall bladder stone)은 담낭염(choleycstitis)를 만들기도 하고 때때로 담관결석이 되어 담관을 막아 급성 담관염(acute cholangitis)을 만들기도 한다. 심한 상복부 통증, 고열, 때때로 황당을 동반하는 급성 담관염은 항생제를 투여하고 담관을 막고 있는 결석을 신속히 제거하지 않을 경우 패혈증으로 악화되어 사망할 가능성이 높은 질환이다. 소아에게 흔한 질환은 아니지만 즉시 내시경역행담췌관조영술(ERCP, Endoscopic Retrograde Cholangio-Pancreatography)을 통해 단관 결석을 제거해야 했다.

 그때 나는 레지던트 수련을 마치고 대학병원을 떠나 우리 병원에 근무한지 몇 달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우리 병원에서도 ERCP를 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어른에게만 했을 뿐 소아에게는 시행하지 않았다. 소아에게 ERCP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대학병원급 병원으로 전원 해야 했는데 안타깝게도 인근 대학병원은 '소아에게 시행한 사례가 없다'고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민 끝에 나는 모교 병원에 문의하기로 결심했다. 모교 병원은 자동차로 1시간 30분가량 걸리는 다른 지역에 있지만 수용 불가 입장을 밝힌 인근 대학병원을 제외하면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이다. 나는 일단 소아과에 연락했는데 친한 후배인 소아과 레지던트는 소아과에서 ERCP를 시행하지 않지만 소화기내과에서 ERCP를 시행한다면 입원치료는 담당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문제는 내과였다.

 'OO병원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 수련 끝내고 병원을 떠난 후 이렇게 전화로 부탁해서 미안하지만...'

 나는 응급실 당직 내과 2년차 레지던트에게 환자의 상황과 질환에 대해 설명하고 소아과에서 입원치료를 담당하겠다고 약속했으니 내과에서 ERCP를 해줄 수 있겠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레지던트 시절 내 모습을 떠올려보면 상대가 어색할 정도로 공손했지만 나는 더 이상 모교 병원 응급의학과 4년차 레지던트가 아니었고 상대 역시 더 이상 나와 함께 응급실에서 일하는 응급실 상주 내과 2년차 레지던트가 아니라 다른 병원의 응급실 의료진일 뿐이었다. 따라서 예전에 내가 그를 어떻게 대했든 관계없이 서로 간 예의를 지켜야 했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제가 소아를 윗 년차에게 보고하면 야단맞아서요. 혹시 다른 병원으로 전원하면 안될까요?'

 그러나 내가 지키려고 했던 '서로 간 예의'는 그 말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요즘이라면 다르겠지만 그때만 해도 모교 병원 응급실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응급실 상주 내과 2년차 레지던트가 한때는 응급실 인턴으로 내 밑에서 일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울컥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했다.

 'OOO선생, 막 내과 2년차가 되어 응급실 상주 근무를 시작했는데 이래저래 편한 환자만 받을 생각인가? 나나 OOO선생이나 의사로는 이제 막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벌써부터 그런 사고 방식을 가지면 나중에는 과연 어떤 의사가 되려고 그러나. 게다가 소화기내과에서 ERCP 담당하는 교수님은 OOO선생처럼 생각하지 않을 텐데 내가 직접 윗선에 전화해서 물어봐야겠나?'

 사실 응급실 상주 내과 2년차가 그런 얘기를 듣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그냥 전화를 끊어버리고 간호사들에게 전화가 오더라도 연결하지 말라고 하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모교 병원에서 내 평판은 좋지 않은 터라 그렇게 해도 내과 2년차를 나무랄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내가 응급실에서 무시무시한 악명을 자랑하며 활보했기 때문인지 내과 2년차는 잔뜩 긴장한 체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3년차 선생님께 바로 보고하겠습니다.'

 10분 후 당직 내과 3년차 레지던트에게 전화왔다. 그는 '우리는 ERCP만 하고 소아과에서 나머지를 모두 책임진다고 약속하면 ERCP하겠습니다'고 말했다. 환자의 전원은 순조롭게 이루어졌고 후에 소아과 레지던트에게 확인해보니 ERCP로 담관결석을 제거한 환자는 소아과 병동에서 순조롭게 회복하고 퇴원했다. 

 3.
 7년의 시간 차이가 있으나 두 아이는 모두 5월에 응급실을 방문했고 비슷한 또래였다. 정신질환이 있는 아버지를 돌보며 함께 사는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검은테 안경의 꼬마, 알콜 의존증이 있는 거친 아버지와 함께 살며 잔뜩 움츠러들어 아파도 아프다고 얘기하지 못하는 아이. 이제는 청소년기의 끄트머리에 접어들었을 7년 전의 그 아이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검은테 안경의 꼬마는 앞으로 어떤 삶을 겪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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