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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 Feb 13. 2024

오징어가 문어를 만나 악수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만날 때 어떤 마음가짐인가요?

<문어와 오징어가 악수를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어른의 시선으로 생각해 보세요.

 

1. 평소의 저처럼 그냥 별생각 없이 일단 스크롤을 내리는 분 많을 것 같습니다 ㅎㅎ 

2. 그냥 악수하면 되지 뭐. 어떻게가 필요해?

3. 뭔가 문제의 숨은 의미가 있나... 문어랑 오징어 그래 다리 개수가 다르군. 문어는 8개, 오징어는 10개. 

그래서 어떻게 한다는 거지?


여러분의 생각은 1-3번 중 무엇에 가깝나요?

맞아요. 문어와 오징어는 다리 개수가 달라요. 

만약 모든 다리로 각각 다 악수를 한다면 문어의 다리가 두 개 모자랍니다. 

같은 행동을 하기엔 서로 다른 조건이라는 거죠. 

이들은 어떻게 악수를 했을까요?






살면서 나와 다른 사람을 많이 만났다. 애초부터 달랐던 사람도 있었고, 알면 알수록 다른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똑같은 다름이 느낌이 다르게 다가오는 경우가 있었다. 대체 무슨 소리냐고?


바로 우리 남편 하하. 


나는 성격이 급하고 감정 기복이 심하다. 반면 남편은 모든 일에 여유가 있고 침착하다. 결혼 전엔 이 다름이 너무 좋았다. 내가 푸드덕거릴 때 남편이 중심을 잡아주니까. 그런데 함께 사니 답답한 게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여유 있음은 느림이 되었고, 침착은 건조함이 되었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그 모습이 어느 순간 가장 많이 싸우는 원인이 되었다. 어찌 보면 결국 내가 어떤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보냐의 차이었다. 


생각해 보면 비슷한 경험이 예전에도 있었다. 여자는 서른부터 꺾인다는 말을 심심찮게 들었던지라( 돌아보니 너무 예쁠 나인데 누가 그런 말을 한 것이야! ) 그즈음 불안 초조한 마음으로 주말마다 바쁘게 소개팅을 했었다. 소개팅을 계속했다는 건 다 실패했다는 소리지. 20대의 나는 만나기만 하면 사랑에 빠져 이상형은 선착순이냐는 소리를 들었었는데 30대의 나는 사랑에 빠지기 어려웠다. 진짜 나이 들수록 괜찮은 사람 찾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들이 말했다. 지금까지도 네가 그렇게 괜챃은 사람들을 만나온 건 아니라고. 하 하 그건 그렇다.


그래. 그렇게 눈이 높지도 않았던 난데, 그럼 왜 이렇게 연애가 어려운 거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문제는 나였다.

30대의 나는 누군가를 만날 때 생각이 많았다.

지금 또 연애했다 실패하면 안 되니까, 

이제 정말 신중히 상대방을 골라야 하니까. 

그래서 상대의 단점부터 찾았다. 

그러다 보니 모든 사람들이 결점 투성이로 보였고, 수많은 소개팅은 실패로 돌아갔다.  


반면 20대의 나는 누군가를 만날 때 별 생각이 없었다.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래서 상대의 장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반짝반짝 빛나보였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다 좋아졌다.


그런데 문어와 오징어는 나보다 한 발 더 나아갔고, 더 현명했다. 




아이랑 바다동물 책을 보던 중 아이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이랑 바다동물 책을 보던 중이었다. 아직 한글을 잘 모르는 아이는 내가 책을 읽어줘야 한다. 연체동물에 대해 설명하려 고군분투하던 중에 갑자기 아이가 노래를 부른다. 문어가 오징어를 만났단다.


문어와 오징어

문어와 오징어가 만나서 친구를 하기로 했어요
자 우리 이제 악수하자 다리를 내밀어 보았죠
문어다리 하나 오징어다리 하나 
문어다리 둘 오징어다리 둘 
...
문어다리 여덟 오징어다리 여덟
오징어 다리도 개 남았네 이걸로 무엇을 해줄까
활짝 뻗어 안아줄게 친구야 친구야 사랑해



와, 이 뭉클한 노래는 뭐지?


오징어는 문어와 다른 것을 알았을 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을 먼저 생각했다. 

그리고 바로 행동에 옮겼다.


상대와 내가 다를 때 내가 좀 더 다가가면 우리의 거리를 좁혀지게 된다.

하지만 30대의 나는 앞으로 다가가기보단 되레 뒤로 반 물러나게 된다. 

굳이 안 될 것 같은데 에너지를 낭비하기 싫으니까.


다가가는 오징어를 만난 문어도 행복하겠지만

다가갈 수 있는 오징어도 행복하겠단 생각이 든다.

물론 문어가 오징어의 다가옴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고마워하는 것도 중요하겠지.

그리고 문어도 열심히 다가오려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

어쩌면 스쳐 지나온 많은 관계들 중 좀 만 다가갔다면 찰떡이 될 수 있었던 관계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의 다가감이 뿌듯할 수 있도록 많이 감사해 줄 상대를 놓쳤을지도 모르겠다.


다름을 먼저 보완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함께 맞춰갈 의향은 있었어도.


그 시작을 먼저 하는 사람이 되어봐야겠다.

살아온 세월이 세월인지라 갑자기 마냥 순수할 순 없겠지만 

어차피 같은 에너지라면 이왕이면 간 보는 데 에너지를 쓰지 말고 다가가는 데 써봐야겠다. 






남편한테 호들갑을 떨며 이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했다.

오징어가 글쎄, 내가 문어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고. 

"아 진짜" 하고 끝나는 그대.

어후 역시 우린 달라도 너무 달라


하지만,

내가 호들갑을 떨 때 침착한 네가 있어 오늘도 균형을 맞추고 살아가는 거겠지.

문어랑 오징어 덕분에 우리의 티격태격도 조금은 줄어들지도. 

고맙다 문어야! 고맙다 오징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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