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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소녀 Apr 21. 2020

내가 모르는 아픔


"태어나서 처음으로 처절하고도 처참한 슬픔의 느낌을 왜 '가슴이 찢어진다’고 표현하는지 진정으로 알게 되었다. 심장이 가슴속에서 터지고 갈래갈래 찢기는 듯한 육체적 고통이 실제로 느껴졌다. ‘가슴이 찢어진다’는 말은 비유가 아니라 묘사였다."
- 수 클리볼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Sue Klebold, A Mother's Reckoning)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1999년에 일어난 콜럼바인 총기 살인 사건 가해자의 엄마 수 클리볼드가 가 쓴 회고록이다. 수의 아들 딜런은 그의 친구 에릭과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총기 난사로 13명을 살해했다. 미국 최악의 총기 사고 중의 하나로 거론되는 사건이다. 이 책에서 수는 본인의 아들이 사건을 일으키기 전까지 어떤 아이였는지, 어떻게 아이를 길러냈는지 그리고 사건 이후에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그녀는 미국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아이에게 올바른 삶을 가르쳤고, 사랑으로 아이를 길렀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 책이 작가의 변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화목한 가정에서 길렀고 사랑을 듬뿍 주었음에도 아이가 총기난사를 저질렀다고 변명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작가가 주는 메시지는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비극을 막기 위한 강인한 의지다. 


작가는 아이의 우울을 모르고 지나가 버린 자신을 반성한다. 아이가 우울하다고 문제가 있다고 외친 신호들을 청소년기의 투정이라고 치부해버린 자신의 무심함을 탓한다. 그래서 다른 부모들은 이 책을 읽음으로써 자식의 우울증을 알아차려 주기를, 그리고 그 우울이 자살이나 다른 범죄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다. 살인자가 되어 버린 자식,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식의 이야기를 적는 마음이 어땠을지, 그 삶의 무게가 한 문장 한 문장에서 오롯이 전해져 온다. 



타인의 아픔은 상상만 할 수 있을 뿐 실제의 감정은 느낄 수 없다. 슬프다고 울부짖는 사람의 감정도 그러할진대 드러나지 않은 슬픔은 어떻게 알고 공감할 수 있을까. 세계의 사건, 사고는 그와 무관한 개인에게도 전달된다. 뉴스와 신문기사를 통해 영상으로, 때로는 숫자와 글로 대중에게 전달된다. 


객관적인 정보의 차가움은 상황에 대한 공포, 분노 그리고 불안을 일으킨다. 반면 실제로 사건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연민과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미디어에서는 다루지 못하는 그들의 이야기에는 사건의 이름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수많은 사연이 담겨있다. 내 아픔을 타인이 모르듯 내가 모르는 아픔은 얼마나 많을지. 하루하루 삶에 겸손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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