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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소녀 May 11. 2020

중고서점으로 달려간 날


고통과 쾌락은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며 오로지 그 안에서만 존재한다.
- 몰입, FLOW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난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토요일 저녁, 교보문고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잠깐만 들렀다 가야지'하고 들어갔다가 늘 책 한 권씩 사서 나오는 곳. 저번 주 토요일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도 했고 복직 후에 마음도 심란해서 심리학 책이 읽고 싶었다. 이유를 아는 불안은 보통 책을 읽으면 해결이 되니까.


심리학 코너에 가자마자 표지 색이 아주 예쁜 책이 눈에 들어왔다. '몰입, FLOW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난다.' 책 표지도 눈에 확 들어오는 다홍색인데 제목까지 완벽했다. 행복한 나도 좋은데 '미치도록' 행복한 나라니, 책을 집어 들 수밖에 없었다. 들어보기만 했던 플로우 스테이트(Flow state)에 관한 책이었다. 


초본은 꽤 오래전에 나왔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 교수가 쓴 책인데 한국에는 2005년에 첫 번역본이 나왔다. 내가 발견한 예쁜 표지의 책은 이번에 새롭게 나온 개정판이었다. 작가가 말하는 플로우(Flow)는 사람들이 무언가에 온전히 집중하는 그 상태를 뜻한다. 



책을 읽다가 갑자기 원서가 읽고 싶어 졌다. 최근에 번역서보다 원서가 더 저렴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 영어가 원글인 경우에는 원서를 읽으려고 한다. 작가가 의도하는 바를 나의 언어로 이해하고 싶어서다. 한글보다 읽는 속도가 더디지만 덤으로 영어 공부까지 하는 셈 친다. 책 출간이 오래돼서 그런지 동네에 있는 큰 서점을 전부 검색해도 찾을 수 없었다. 오늘은 번역서로 읽고 원서는 주문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갑자기 중고서점이 떠올랐다. 


검색을 해보니 딱 한 권이 있었다. 그것도 내가 있는 곳에서 버스 한 번이면 닿을 거리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버스를 타고 중고서점으로 달려갔다. 무언가에 홀린 듯이 책을 사고 있는 나를 보면서 아, 이게 몰입이구나 했다. 남이 시키지 않아도 하는 것. 물이 흐르듯,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는 것. 누가 이 책을 채갈 것도 아닌데 그렇게 급하게 서점으로 달려 나가는 내가 신기할 지경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몰입하는 건 무엇인가를 생각해봤다. 가장 먼저 생각난 건 글쓰기였다. 아침에 일기를 쓰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는 때가 많다. 출근 준비를 해야 하는 데 시계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일기 쓰는 시간을 위해 5분, 10분씩 기상 시간을 당기다 보니 어느새 아침 준비 시간은 한 시간이 넘는다. 


밤에 잠이 와도 글을 쓰기 시작하면 잠이 깬다. 남에게 보여주는 글이 아니라 혼자 쓰는 일기가 그렇다. 일기야 말로 진정한 몰입이 된다. 눈은 멍하지만 손가락 끝에서 수없이 많은 글자들이 나온다. 한 문장 쓰기 시작하면 세상은 멈추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몰입의 책을 찾는 순간에 몰입을 경험하고, 그 책을 읽으면서 내가 언제 세상을 잊을 만큼 집중하는지 알았다. 몰입하면서 만족을 얻는다. 행위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하다. 20대의 끝자락에서 나는 자꾸자꾸 나를 발견한다. 평생을 함께 살아온 나지만 여전히 알아가야 할 내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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