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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소녀 Jul 23. 2020

편지로 쓴 소설


A가 X에게, 존 버거 (2009)


이 책에는 좋은 문장이 너무 많다. 연인을 잃은 자의 펜 끝에서 담백한 문장이 나오기란 어려운 일이다. 한 문장 한 문장 가슴 절절함이 느껴진다. 소설이지만, 편지로 쓰여진 소설이다. 상황과 등장인물에 대한 그 어떤 서술도 없다. 그저 편지로 시작해서 편지로 끝이 난다.


시간은 짧다. 지나간 시간의 끝에서 뒤를 돌아보면 지나온 시간은 다 짧게만 느껴진다. 시간 속에 있을 때는 그 순간이 영원할 것 같지만 현재는 늘 끝나고 과거가 된다. 이 소설의 현재는 온전한 현재가 아니다. 과거의 기억만 공유할 수 있는 대상과의 현재다. 글로만 시간을 공유할 뿐이다.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것 같다. 사랑도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고 그 대화 속에서 정치적인 상황에 대한 비판도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자본주의와 세계화와 폭력. 정치, 사회의 문제 속에 있는 개인의 삶에서 작가는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 눈에 읽히는 건, 실체 없는 국가와 사회라는,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삶이다. 사랑에 어느 정도 빠지는 게 가능하냐는 아이다의 말에서, 나는 사랑을 본다.


도서관에서 빌린 이 책을 보면서 같은 책을 읽었던 사람들의 마음이 궁금해진다. 책을 사서 읽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책 속지는 이미 누렇게 변했고 겉표지는 너덜너덜 해졌다. 이 책을 빌려 읽었던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을까. 어떤 마음으로 첫 페이지를 펼쳤고 어떤 마음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읽었을까.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이렇게나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도서관에 꽂혀있던 책을 읽는데, 학생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집어 들었을까. 내가 대학생이었다면 나는 이 책에 눈길을 주었을까. 그리고 설령 읽었다 한들, 지금처럼 한 문장 한 문장을 농도 짙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같은 글도 그 글을 읽어 나가는 감정은 나이에 따라서, 경험에 따라서 달라진다. 아마 이 책을 대학생이던 스물세 살에 읽었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감정이었을 것이다.


사랑은 개별성에 대한 맹목적인 긍정이라는 역자의 말을 읽으며 사랑이 뭔지 다시금 생각해 본다. 부재와 무의 차이를 생각한다. 부재는 있던 것이 없음이고 무는 원래부터 없음이기에. 그 차이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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