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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소녀 Jul 22. 2020

결핍을 채우는 사랑도 사랑이려나


마담 보바리(Madame Bovary: Mœurs de province), 귀스타브 플로베르 (1857)


많은 고전 중에서 왜 마담 보바리를 집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고전답게 두꺼웠고, 다 읽는 데에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두꺼운 책은 아무래도 첫 페이지를 넘기는 데에 용기가 필요하다. 어려울 것 같고, 오래 걸릴 것 같고. 읽고 보면 다 추측에 불과하지만 처음 시작할 때의 망설임이 있다.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책과 독자도 궁합이 있다고 한다. 그 책이 얼마나 유명하고 인정받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책은 두꺼웠지만 나와 궁합이 잘 맞았다.  


단순한 사랑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그 내면에는 너무 많은 세상사가 얽혀있었다. 마담 보바리와 그의 남편 샤를르가 불쌍하면서도 불쌍하지 않다. 연민의 감정이 들다가도 그들의 어리석음에, 세상을 외면한 순수함에 화가 나는 것이다. 왜 저렇게밖에 살 수 없었던 걸까. 조금 더 현실을 바라보고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제 3자의 아쉬움과 불평이다. 


실제로 있음 직한 인물들이라 더 그런 마음이 드는 것 같다. 거의 150년 전의 소설이기에 시대적 배경을 잘 모르지만 소설에서 묘사하는 내용들로, 그리고 주석을 참고해서 대충 어떤 환경이었는지를 가늠해 본다. 그래서 이 글도, 소설 뒷부분에 있는 '마담 보바리 해석'을 읽지 않고 쓰는 것이다. 내가 가진 세계에서, 나의 시선에서 문학을 읽기 위해서다. 그 시대의 감성보다는 2020년의 감성으로 해석해 보려고.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굉장히 관대한 편이고, 삶을 살아가는데 진짜 사랑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주의다. 가슴 절절한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과는, 그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는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대화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래서 소설을 읽을 때도 보통 그들이 이야기하는, 그들이 노래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잘 공감하는 편이다. 그런데 마담 보바리의 사랑은 내가 생각하는 사랑과는 다른 무엇이었다. 순수하지 못한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 순수하려면, 그 자체로 맑아야 하는데 마담 보바리의 사랑은 본인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사랑 같았다. 


삶이 충만한 상태에서 피어오르는 사랑이 아니라 삶의 결핍을 채우기 위한 사랑이라는 거다. 그래서 무언가 인위적인 듯한 느낌. 마담 보바리가 아니라 엠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갔더라면, 그녀의 삶에 결핍이 덜하지 않았을까. 엠마라는 한 사람으로 샤를르를 만나서, 샤를르 보바리를 만나서 자신의 삶을 가졌더라면. 그래서 결핍에 의한 사랑이 아니라 진짜 마음이 동해서, 그렇게 레옹과 로돌프를 만났더라면. 그러면 차라리 엠마의 사랑이 조금은 절절하게 느껴졌을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를 않는 건지, 1800년대 중반의 소설을 2000년대에 읽어도 인물들의 행동이 이해가 간다. 결핍을 채우려는 사치와 명예와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잘 읽힌다. 그러고 보면 '요즘 애들은', '요즘 세대는'이라는 말이 큰 의미가 있나 싶다. 말하는 시점과 그들이 손가락질하는 구체적인 행위가 다를 뿐 어느 시대에나 도덕적이지 못한 사람은 있었다. 인류가 말하는 보편적인 양심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언제나 있었다. 역사로도 소설로도 그게 증명된다.  


언제 읽어도 보편적인 감정을 이야기하기에 고전이 된 걸까. 사랑을 말하는데 이렇게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인물도 처음인 것 같다. 마담 보바리.. 조금만 더 성숙했더라면. 조금만 더 자기 자신을 잘 알았더라면. 자신의 삶을 사랑이라는 감정이 아니라 다른 행복으로 채워나가는 방법을 알았더라면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사랑의 가치가 떨어져서도 안되지만 현실 없는 사랑 또한 이상일뿐이다.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말이 타자를 배제하고 살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지 않을까? 나와 같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사랑은, 고려하지 않는 사랑은 이기심일 뿐이다. 게다가 마담 보바리처럼 자기를 파괴하고 타인까지 파괴하는 사랑이라면 차라리 모르고 사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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