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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소녀 Aug 05. 2020

자기 계발서는 늘 곁에 두어야 해


자기 계발서는 읽기 나름이다. 자기 계발서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난 좋다. 고등학교 때부터 좋았다. 도서관에서 공부하기 싫어지면 슬그머니 문헌정보실로 내려가서 자기 계발서를 읽곤 했다. 


자기 계발서가 흔히 듣는 비평 중의 하나가 다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거다. 그런데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성공한 사람들은 다 비슷하다는 뜻 아닐까?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처럼 (물론 아직 읽진 않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의 모습으로 불행하지만 행복한 가정은 비슷하게 행복하다는, 그 말과 일맥상통하는 뜻 아닐까? 


A 방식으로 산다고 다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어느 정도) A의 방식대로 살았다. 

그래서 나는 자기 계발서가 좋다.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 뒤처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편하게 사는 건 쉽다. TV만 보면서, 생각 없이 누워서 그냥 인스턴트의 감정과 인스턴트적인, 순간의 유희에 시간을 보내는 건 진짜 정말 정말 쉬운 일이다.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다. 


같은 유희라도, 마음속에 좀 오래 남는 유희가 있다면 그건 책일 것이고, 문학일 것이다. 물론 영화, 드라마, TV에도 그런 감정이 묻어 나오지만, 그냥 나는 개인적으로는 드라마보다는 영화가, 영화보다는 리얼리티쇼가 더 낫다. 그리고 개중에 제일 나은 건 책일 것이고.


아무튼, 최근에 자기 계발서를 읽었다. 서점에서 어떻게 분류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심리학일 수도 있고 자기 계발서일 수도 있다. 유튜브에서 익히 들어 알고 있었던 Wayne Dyer의 책이었다. '인생의 태도'다. 긍정적으로 살아라 좋은 걸 봐라, 이런 말들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나는 부분이 있다.


요즘의 사람들은 예전보다 훨씬 똑똑해지고 자기에 대해 알고자 해서 심리상담가를 찾아가거나 심리학 도서를 읽는다. 그러면서 현재 내 감정을 분석하고 감정 반응의 원인을 찾는다. 대부분이 어린 시절 부모의 양육방식, 경험에 그 원인이 있다. 나도 그렇게 내 감정을 객관화했다. 유달리 예민한 반응을 보일 때, 누군가에게 감정적으로 집착할 때, 그 이유를 부모와의 관계에서,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찾았다.


웨인 다이어의 포인트는 이거다. 그렇게 부모의 양육방식이나, 과거의 경험을 분석해서 탓하면 뭐가 달라지나?

망치로 머리 맞은 줄 알았다.


예를 들어 '엄마가 그때 나를 두고 가서 내가 애착 장애가 생겼잖아'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게 지금 인생에 대체 무슨 도움이 되냐는 거다. 그렇게 부모 탓을 하고 나면 마음이 편한가? 절대 아니다. 부모에 대한 아쉬움만 생길 뿐 내 마음은 여전히, 과거와 달라진 것 하나 없이 불편하다.


그렇게 분석을 하고 원인을 파악한 후에 "아 그래서 이렇구나" 하고 다음부터 안 그러면 된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아 그래서 이렇구나. 그래 난 '원래' 이런 인간이야" 하고 끝나버리면 그걸 파악하는 이유가 뭔가. 탐구와 분석이 무의미해진다. 


과거는 이미 지나왔고 우리는 현재를 살아간다. 미래를 보면서도 우리가 존재하는 곳은 현재다. 그러니까 과거가 마음속에 애잔하게 남아있을지언정, 그게 현재를 덮어서는 안 된다. 과거는 반성의 기준이고 수단일 뿐, 과거에 집착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덫이 되어버리는 거다. 과거가 닻이 현재의 덫이 된다는 거다. 그러니까, 앞을 보고 살아야 한다.


그렇다. 나에게 하는 말이다. 앞을 보고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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