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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소녀 Aug 25. 2020

우리는 사랑일까

우리는 사랑일까, 알랭 드 보통 (1994)


1994년에 쓰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사실적인 소설이다. 


이 책에 온갖 철학과 고전의 내용이 녹아져 있다. 알랭 드 보통이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 사랑에 관해 얼마나 오랜 시간을 고민했는지가 오롯이 느껴진다. 작년 가을에 이 책을 읽었을 때와 느낌이 다르다. 책은 그대로인데 해석하는 사람의 마음이 바뀌었다는 건, 내가 달라졌다는 뜻일 거다. 그동안 나를 지나간 사람들, 1년 동안 내가 듣고 보고 경험하고 생각한 것들이 모여 이 책의 해석을 달리하게 한다. 


책을 읽으면서 앨리스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유럽에 살고 있는 진짜 스물 다섯살의 여자 같아서. 그리고 이런 사람은 어디에나 있을 것 같으니까. 어깨를 잡고 말해주고 싶었다. 정신 차리라고. 어서 헤어지라고. 하지만 설령 실제로 내가 그렇게 말했다 한들, 앨리스가 말을 들었을까?


사랑에 빠진 상태에서 귀는 귀로 존재하지 않는다. 들어도 마음이 무시한다. 머리는 아는데 마음은 안된다. 아니, 과연 머리로도 알까? 모든 생각이 만남을 합리화한다. 이 사랑은 가치가 있다고, 그 사람은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자기가 가진 감정을 부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그게 사랑일 때는 더더욱.


상대방을 그 자체로 보는게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이미지로 보고 그 이미지를 사랑한다. 그 사람의 행동에는 이런 의미가 있었을 거야, 이런 이유로 저런 행동을 했을 거야. 하지만 내 삶이 그러하듯, 모든 행동의 이유는 본인만이 알고 상대방의 해석은 대부분 틀리기 마련이다. 


나는 일상의 행동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데 타인은 어떤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행동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사실 착각이다. 나도 그렇다. 내 행동은 지금까지 살아온 시절이 쌓인, 내 삶의 결과물인데 그걸 단편적으로 설명하고 정의 내릴 수 있을까? 


앨리스가 필립을 만나서 다행이다. 애릭과 헤어지는 것만 봐도 좋았을거다. 앨리스가 애릭과 결혼해서 평생 불안정한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고 소설이 끝났다 한들, 현실과의 괴리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앨리스는 책을 읽는 사람이었고, 독립적이었다. 그래서 본인의 문제를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던 부분은, 앨리스가 과거의 연애 경험이 있는데도 애릭에게 그렇게나 많이 빠졌다는 사실이다. 아니면 애릭 이 전의 사랑이, 사랑이 아니었거나. 만약 알랭 드 보통이 적은 대로 이 전의 연애가 그 나이 때의 욕망과 불안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관계였다면, 애릭이 앨리스의 첫사랑이었을 수도 있겠다.


사랑은 계속 변화한다. 같은 사랑은 없다. 나는 모든 연애가 독립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적 관계를 불안해하던 나에게 했던 위로이기도 하다. 모든 관계는 이전의 관계와 다르다. 이 전에 잘 되지 않았다고 해서 새로운 관계 또한 같은 방식으로 잘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나라는 사람도 동일하지 않거니와 상대 또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그래서 모든 관계는 예측할 수 없다. 


앨리스와 필립의 연애는 애릭과의 그것과 다를 것이다. 우리는 사랑일까의 원제는 The romantic movement. 앨리스는 우리가 사랑일까,라고 묻지 않을 거다. 사랑일까?라고 묻는 관계는 사랑이 아닐 확률이 높다. 사랑은 의심이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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