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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소녀 Jan 31. 2021

너도, 너 옆의 사람도 행복하기를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2019)


한국에 번역본이 출간된 건 2019년이지만, 원저는 2008년에 나왔다. 교보문고를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제목은 물리학 도서 같은데 소설 칸에 있어서 눈에 띄었다. 단편소설을 위한 플래너리 오코너 상(Flannery O'Connor Award)을 수상했다고 한다. 총 10편의 단편 소설을 담고 있다. 담고 있다는 말이 가장 적절해 보인다. 이 책은 열 편의 소설로 수십 명의 인생을 담고 있다.


기억에 남는 작품은 세 개다. 하나는 "내 아버지는 실패한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이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코요테], 여러 번 읽어도 읽을 때마다 마음이 울렁이는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그리고 말하지 않은 부분에서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코네티컷].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 내 주변에 충분히 있을 법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일어나는 감정의 동요와 사건들도 말하지 않은 부분까지도 상상이 되고 이해가 간다.


작품을 해설하는 관점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오겠지만, 나는 세 개의 이야기 모두 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눈으로 읽었다. 이십대 초반에 진심을 다해 사랑에 빠졌던 이와의 초기 관계에 대한 기억 때문에, 이미 망가진 관계를 끊어내지 못하는 [코요테]의 엄마와 아빠. 누군가를 사랑하지는 않지만, 그와 결혼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는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의 헤더. 갑자기 찾아온 사랑의 감정을 좇지 못하고 현실에 남은 나의 '어머니'와 사랑을 찾아 떠난 '벤틀리 부인'까지.


그중 여러 번 반복해서 읽은 건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다. 왜 헤더의 마음이 이해가 가는지 알지만, 그 이유를 혼자 쓰는 일기장에도 적을 수 없는 헤더의 사랑. 그리고 사랑이 아닌 헤더의 사랑까지도. 그 마음이 이해가 가서 더 쉽게 그리고 무겁게 읽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헤더가 있을까. 수많은 헤더들이 모두 행복하기를, 그리고 헤더 옆에 남은 사람들까지도 행복하기를, 이 책을 읽으면서 소망했다.


감정의 깊이와 경험은 본인이 생각하기 나름이다. 스무살에게는 스무 살의 인생에 전부인 사랑이 있고, 서른에게는 서른에게 전부인 사랑이 있다. 물론 그즈음되면 사랑이 전부가 될 수도 있고, 전부로 만들지 않을 수도 있지만. 모든 이에게는 과거의 사랑들, 그 안에서 쌓은 나만의 성숙이 만들어낸 지금의 관계가 있다. 감정을 감내해보기도 하고, 새로운 감정에 놀라 보기도 하고, 사랑에 미쳐서 모든 걸 포기할까, 라는 고민도 해보고. 그런 모든 시간들이 쌓인 후에 이 책을 읽으면 쉽게 책을 덮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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