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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소녀 Jun 13. 2019

일주일의 휴가가 남긴 것들

3년 만의 휴식

입사 이후 처음으로, 여행을 위한 연차가 아니라 휴식을 위한 일주일간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딱히 바쁘게 살려고 했던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3년 만의 첫 휴식이다.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평일이겠지. 하지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꽉 채워 회사에서만 시간을 보내던 나에게 평일은 너무도 낯설다. 


평일에 거리를 걸으니 괜스레 새소리가 들리고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게 보인다. 적막한 거리가 여유롭게 보이고 평생을 산 나의 동네가 평일이라는 이유만으로 어색하다. 원래 평일의 시간은 이런 거였나. 가만히 앉아서 숨 쉬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서 이렇게 글을 적는다. 일주일의 휴가가 나에게 남긴 것들에 대하여.



도서관의 진가를 깨달았다.

도서관은 책을 읽는 곳이었다. 


취업 준비하던 때 이후 처음으로 동네 도서관에 갔다. 중고등학교 때도 그렇고 대학생 시절에도 공부나 자소서를 위해서 늘 일반 열람실에 갔었다. 문헌정보실을 찾아갈 엄두도 못 냈었는데 이번에는 바로 문헌정보실에 갔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을 한 아름 안고 창가 자리에 앉았다. 평일의 도서관은 사람도 별로 없고 책도 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느낌이다. 


평소에 나는 정기권을 끊어놓고 책을 읽는다. 매 달 정해진 권수가 있기 때문에 한번 고를 때마다 심사숙고를 한다. 정기권 외에 그리고 e-book에 없는 책을 구매할 때마다 책 읽는 게 비싸다는 생각을 했다. 읽고 싶은 책을 다 샀다면 월급이 남아나질 않았을 것이라며. 그런데 도서관이 이렇게나 잘되어 있다니. 이번 휴가가 아니었더라면 몰랐을 뻔했다. 그래, 공부가 아닌 독서가 도서관의 설립 목적이었을 거다. 앞으로 주말에도 도서관을 자주 찾게 될 것 같다. 


청춘을 붙잡고 싶나,  청춘이 들어간 책제목이 끌린다.



은행을 마음 편하게 갈 수 있다.

괜히 직원분도 더 친절한 것 같아..


느지막이 일어나서 브런치를 먹고 집을 나선다. (말이 브런치지 아점이다.) 회사에서는 은행을 마음 편하게 갈 수 없다. 그래서 점심시간을 이용하거나 양해를 구하고 뛰어갔다 온다. 이번에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오후 12시 30분, 3년 동안 모은 돼지 저금통을 깨러 갔다. 은행에는 내가 유일한 손님이다. 번호표를 뽑자마자 '어서 오세요' 소리가 들린다. 


돼지저금통을 깨러 왔다고 하니 은행원이 웃는다. 몰랐던 사실인데 요즘은 동전을 고객이 직접 분리해서 가져가야 한다고 한다. 동전을 분리해주는 기계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외국동전이 많이 섞여있어 분리가 잘 안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친절한 은행원 덕에 함께 동전을 분리해서 19,000원을 돌려받았다. 3년 동안 모은 돼지저금통이 이 정도인 것을 보니 정말 현금 없는 사회가 되어가는 듯하다. 그만큼 동전이 돌지 않고 있다는 뜻이니까.



일이 없으니 배고픔도 없다.

늘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평소에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배가 고프다. 아침 먹고 출근을 하면 회사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허기가 진다. 그런데 회사를 안 가니까 오후 12시가 다 되어가도 배가 안고팠다. 저녁 식사를 5시에 끝냈는데 밤 11시가 되어도 배가 안고프다. 심지어 저녁 먹고 한 시간 동안 조깅을 했는데도 배가 안고프다. 머리를 안 써서 그런가, 싶다가도 책을 읽었으니 머리를 쓴 건 맞다. 이상하리만큼 허기지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다이어트는 식은 죽 먹기일 것 같다.


아침이 영어로 Breakfast (break + fast, 단식을 깨다.)인 것처럼 첫 식사를 꼭 아침에 해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현대인은 출근 전 아침 식사를 한다. 아침 식사를 하는 문화가 강조된 것이 캘로그의 시리얼을 팔기 위한 마케팅 전략 중의 하나라는 설도 있다. 이 마케팅에 넘어간 것인지 아니면 어릴 적부터 아침을 먹어온 습관 때문인지, 여태껏 아침 식사는 필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을 안 하니까 하루에 두 끼만 먹어도 될 것 같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물론 무엇이든 업이 되면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그 둘 모두가 취미인 나에게 가벼운 식사와 커피 한잔이면 하루를 날 수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컵 보잉보잉하다.




가끔은 이렇게 아무 이유 없는 휴식 기간을 가져야겠다. 평일의 여유로움을 느끼면서 생각도 정리하고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거다. 돌아갈 곳을 남겨두고 쉬는 이 시간은 막연한 휴식보다 안정감이 있다. 직장을 다니지 않아도 될 만큼 여유로운 삶이 더 행복하겠지만 우선은 이 행복감에 만족하련다. 날씨 좋은 평일에 햇볕 아래를 걷는 이 시간이 낯설면서 감사하다.


일단 하면 된다. 휴가든 여행이든 일단 저질러야 새로운 경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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