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어쩌다가 인도로 왔을까요? 그것도 구자라트라니요. 나름 해외여행도 좋아했고, 인도에 관심도 제법 있다고 생각했는데 구자라트라는 곳에 간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나마 많은 델리나 푸네 그리고 첸나이 정도 생각했지요. 이 도시들도 모르는 일반인들이 많은데, 저는 하물며 구자라트 아메다바드라니여? 그곳이 인도 지도에 어디 있는지도 모른체 저는 주재원으로 보내지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는 사실 정확히 모릅니다. 어느날 갑자기 회사의 부름으로 주재원 면접을 보게 되었고, 그렇게 코로나가 한창인 2020년 8월 저는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회사마다 주재 지역에 대해 생활 환경, 교육 환경 등을 여러 기준으로 평가해서 급지를 나누는데 이곳은 가장 열악한 곳으로 분류되어 있었습니다. 속된 말로 '오지' 라고 불리며 선호하는 주재 지역은 아니었습니다. 오지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일반적으로 인간이 접근하기 힘든 지역'이라고 나오는데, 내가 갈곳이 정말 이런 곳인가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 왔습니다.
하지만 인도는 지난 십수년간 저에게 선망의 대상이자 꼭 풀어야할 숙제 같은 곳이 었습니다. 그곳이 오지라 하더라도 인도에서 일할 수 있다면 무엇이던지 타협할 수 있었습니다. 속으로는 오지가 아니길 바랬죠. 그 뒤로 보석같은 쌍둥이 아들들과 아내를 뒤로 하고 코로나도 무섭지 않다고 외치며 인천공항으로 향했습니다.
구자라트 그리고 아메다바드에 도착하니 인도 특유의 냄새가 저를 반기었습니다. 학창 시절 한번 경험했던 인도이기에 오히려 불쾌감 보다는 반가움과 흥분을 감출수는 없었습니다.
이곳에서의 1,500일은 제가 이곳에 오기 전 들었던 오지에서의 삶 처럼 무섭거나 두렵지도 않았습니다. 이곳에서의 주재원 생활은 저에게 보다 세상을 크게 볼 수 있게 해주었고, 외로웠던 삶은 가족을 소중함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돌이켜 보니 이곳은 저에게 오지가 아닌 포근하지만 거대한 궁전 같은 곳이었습니다. 궁전 안에 수십 수백 개의 방에 들어 갈 때 마다 저를 반기는 친구들과 추억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젊었던 저에게 꿈을 이루게 해준 곳이었습니다. 어쩌면 이곳에 오는게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주재 생활 중 홀로 두 아이를 키운 아내에게 언제나 고맙습니다. 두 아이를 훌룡하게 키워내고 있음에도 항상 부모로써 부족하다고 자책하는 아내를 보면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이곳에서 잘 지낼 수 있었던 것은 8할이 아내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