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댓가.
마르틴 니묄러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저작권 오마주 버전으로 완성 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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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쓴 이유
이 시는 마르틴 니묄러의 저항시 '처음 그들이 왔을 때' 에 대한 오마주입니다.
그 시는 정치적 침묵이 어떻게 전체주의를 가능케 하는지를 경고했다면,
이 시는 창작물과 저작권을 둘러싼 ‘무관심’이 어떻게 예술과 존재의 존엄을 잃게 만드는지를 말하고자 합니다.
언어, 색, 소리, 빛, 형태, 시간, 공간.
그것은 단지 콘텐츠의 요소가 아니라, 한 존재가 세상을 표현하는 방식의 총체입니다.
우리는 종종 “내 것이 아니니까” 침묵하지만,
결국 ‘그들’은 모두를 가져갑니다.
그리고 남겨진 ‘나’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저작권은 단순한 법의 문제가 아니라,
표현의 권리와 존재의 고유성에 대한 윤리적 메타인지입니다.
누군가의 작품을 지킨다는 건,
나의 존재 가능성을 함께 지키는 일입니다.
이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가장 먼저 던졌다.
그리고 오히려 이 질문 자체가 이 글의 핵심이라 판단한다.
원작자 니묄러 목사의 시는 공공영역(public domain)에 들어갔는가?
부분적으로는 맞다. 그러나 여전히 국가나 기관에 따라 보호 범위가 다를 것이다.
구조와 형식을 오마주하면서, 그 철학을 전혀 다른 주제로 확장하는 것은 허용될 수 있는가?
패러디와 변형에 의한 창작물로 볼 수 있으며, 명확한 출처 언급과 목적 설명이 있다면 공정 사용(fair use)의 맥락에 들어갈 수 있다.
나는 니묄러의 ‘기억하라’는 목소리를 들었고,
그 메시지를 오늘의 언어와 사유로 다시 말하고자 한 것이다.
왜 나는 여운이 아니라, 설명을 선택했는가?
예술은 때로 여운으로 끝나는 것이 가장 강렬하다.
그러나 나는 독자의 직관이 한계에 닿는 지점을 알고 있다.
‘왜 하필 저작권인가?’
‘이 시는 혹시 표절 아닌가?’
‘무겁지 않나?’
‘감동은 있지만 설명이 없으면 어정쩡하다’
나는 그 여운을 꺼내어 생각의 도구로 바꾸고 싶다.
감탄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고 연결되길 원한다.
독일의 루터교 목사이자 반나치 저항자였던 마르틴 니묄러(Martin Niemöller)가 나치의 점진적 탄압과 침묵의 공포를 고발하며 남긴 『처음 그들이 왔을 때(First they came...)』라는 시입니다.
이 시는 버전이 약간씩 다르지만, 핵심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처음 그들이 왔을 때
(First they came...)
처음 그들이 공산주의자들을 잡으러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그다음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잡으러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
그다음 그들이 유대인들을 잡으러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을 때
남아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글의 표지 이미지 출처 : 침묵의 댓가 (그들이 처음 왔을 때)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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