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책 읽기의 즐거움에 입문한 계기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가 사 주신 [세계 위인전기 전집]과 [세계 대백과 전집]이었다.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 월부로 그 많은 책을 장만하신 것은 어머니로서는 큰 출혈이었다. 하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는 최고의 복이 시작된 날이었다. 세상에 독서만 한 행복이 없다는 걸 그때부터 체험했다.
그런데 돌아보면 아쉬운 점이 있다. 사실 초등학교 때 먼저 읽어야 할 책은 세계 명작 동화이다. 그런데 정보와 사실 위주의 책에 먼저 맛을 들이다 보니 동화와 소설이 너무 허황되고 맹숭맹숭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아이들 때에 누구나 읽는 [보물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오즈의 마법사] 같은 모험 이야기나 판타지 동화들을 재미있다고 느끼지 못했다.
이번에 모험 소설의 원조인 [로빈슨 크루소]를 나이 들어서야 손에 들었지만, 사실 별 기대는 없었다. 어릴 때 모험담을 읽어 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에 모험담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싶었다. 그런데 웬걸, 450여 페이지나 되니까 천천히 읽어야지, 생각했는데 재미가 있어 하루 만에 독파했다. 왜 사람들이, 특히 어린 시절에 모험담을 읽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1719년에 출간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로빈슨 크루소]는 영문학사에서 최초의 근대 소설로 평가된다. 신들의 전쟁, 영웅들의 무용담, 귀족들의 로맨스가 주류였던 소설에서 처음으로 평범한 개인의 삶과 생각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를 했기 때문이다. 리얼리즘 소설의 효시가 되었고, 그 이후 쏟아져 나온 모험, 해양 소설들의 원조가 되었다. 영국의 언론인이었던 다니엘 디포는 스코틀랜드의 선원 알렉산더 셀커크가 남태평양에서 표류한 뒤 칠레의 후앙 페르난데스 섬에서 4년간 혼자 살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서 59세의 나이로 상상력을 동원한 첫 장편 소설을 써서 대박을 터뜨렸다.
주인공 로빈슨 크루소는 영국 중산층의 아들로서 가만히 있어도 아버지의 후광 아래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미지의 세계를 동경해 온 그는 부모의 반대를 뿌리치고 배에 오른다. 처음에 풍랑을 겪어 고생도 했지만 브라질에 건너가서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을 마련하는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농장에 필요한 흑인 노예를 아프리카에서 밀무역하기로 작정하고 마지막이라고 결심한 항해를 나선다. 그 항해에서 풍랑을 만나 무인도에 혼자 살아남는다. 다행히 난파된 배에서 필수적인 물품들을 가져다가 활용할 수 있었다. 그는 뜻하지 않게 무려 28년 2개월 19일간 그 섬에서 살게 된다. 마지막 해에 배 안에서 쿠데타가 일어나서 죽을 위기에 처한 선장을 구하고, 그 배를 되찾아 영국으로 돌아간다.
스토리 자체는 간결하지만, 섬에서 혼자 살아가는 과정에 대한 묘사는 세밀하다. 거처를 만들어가는 과정, 양식을 마련하기 위해 농사를 익혀가는 과정, 염소나 앵무새 등을 길들여가는 과정, 갑자기 닥쳐올 위험과 섬 탈출을 위해 카누를 만드는 과정 등을 다큐멘터리처럼 섬세하게 기록했다. 물론 유럽 열강이 식민지를 개척하는 시대에 나온 소설이요, 노예제도를 당연시하는 상황 속에서 쓰여진 소설이기에, 저자의 인종차별과 제국주의적 사고가 조금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예술작품은 그 시대의 산물임을 이해하고 읽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완역본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 소설의 성격은 기독교적인 소설이라는 점이다. 모험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군데군데 주인공의 신앙 고백이 적혀 있다. 처음 배를 탈 때만 해도 신앙심이 별로 없었던 로빈슨 크루소는 섬에서 홀로 살아남은 상황에서 신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고, 고독과 절망과 불안 가운데서 기도하는 사람으로 변모해간다. 파선된 배에서 입수한 성경책을 읽으면서 나중에는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수준까지 올라간다. 마치 신앙 간증문을 접한다고 느껴질 정도로 이 책은 단순한 모험 이야기를 넘어서 신앙 소설의 면모를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기본적으로 자신의 내면세계를 탐구하는 성장소설이자, 더 정확하게는 고난 가운데서 신을 발견하는 신앙 성장 소설이라고 이름 지을 수 있다.
로빈슨 크루소가 섬에서 처음 신에게 감사의 마음을 품게 된 것은 자신이 무심코 버린 닭 모이가 어느 순간 파란 보리 이삭들로 탄생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섭게 몰아치는 태풍과 땅이 흔들리는 지진을 겪으면서 처음으로 신에게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살려달라고 기도를 한다. 심하게 몸이 아파서 몸부림치는 가운데 신의 은총을 염원하면서 배에서 가져온 성경책을 읽기 시작한다. 그가 성경책을 펼쳤을 때 처음 눈에 들어온 구절이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시 50:15).
지금 그의 처지에 딱 맞는 구절을 만난 것이다. 지금 로빈슨 크루소는 상상도 해 본 적 없는 환난 속에 던져져 있다. 그 스스로가 이름 붙인 ‘절망의 섬’에 홀로 버려져서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암담한 상황이다. 무인도라서 말할 상대도 없고, 식량이나 물이 언제 떨어질지도 모르고, 아직 발견하지 못한 사나운 맹수에게 잡아 먹힐 수도 있다. 배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외딴 바다라 구조될 가능성도 희박하다. 평생 빠져나오지 못할 지하 깊은 구덩이에 떨어진 것과 같은 심경으로 낙담한 그의 가슴에 꽂히는 말씀이 구원의 약속이었다. 하나님을 부르면 건져주리라는 이 약속을 그는 절실한 심정으로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절망과 고독의 깊은 수렁에서 그는 자신에게 내미는 하나님의 손을 잡은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생각도 해 본 적 없었고, 제대로 된 기도조차 하지 않고 살았던 그는 절망의 섬에서 기도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사실 로빈슨 크루소가 처한 현실을 상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에서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눈을 감는다는 것은 사방이 벽으로 닫힌 감옥에서 사는 삶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미래가 없는 현재를 산다는 것은 절망의 저 밑바닥으로 날마다 추락하는 기분일 것이다. 하루하루 자신의 마음을 나눌 가족이나 친구가 없이 산다는 것은 태평양 바다 한 가운데 둥둥 떠 있는 심정일 것이다. 불의의 사고에 의해서 고립된 그의 처지는 고독이라는 단어로도 표현하기 힘든, 절망의 최전선에서 칼바람을 온 몸으로 맞는 것 같다. 만약 이 주인공처럼 외로운 섬에서 28년 넘게 견디라고 한다면, 나는 과연 참아낼 수 있을까? 상상할수록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다.
로빈슨 크루소의 불안과 고독에 비하면 하찮은 한 줌의 먼지 같은 경험이지만, 나는 몇 년 전 탈진으로 인해서 실직의 상황에 떨어진 적이 있다. 탈진을 이기지 못해서 불가피하게 사직을 하고 나니 오갈 데가 없었다. 그로부터 다음 일터에서 일하기까지 7개월의 시간은 앞이 보이지 않는 암흑천지를 걷는 기분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기도 싫었고, 어서 밤이 와서 자리에 눕기만을 기다렸다. 사람도 만나고 싶지 않았고, 밥을 먹어도 쉽게 소화가 되질 않았다. 아내에게도 내 속마음을 다 털어놓지 않았고, 친구에게도 상세한 사정을 다 토로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갈대밭에 부는 가을바람처럼 마음에 점점 더 윙윙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럴 때, 김수영 시인이 ‘로빈슨 크루소를 생각하며’라는 시에서 읊은 구절이 구구절절 공감이 되었다.
오갈 데 없는 사람들 사이의 한 섬
그 속에 갇힌 한 사람을 생각한다
외로움보다
더 가파른 절벽은 없지
살다 보면 엉망으로
취해 아무 어깨나 기대
소리 내서 울고 싶은
그런 저녁이 있다.
그 당시, 소리 내서 울고 싶지만 막상 눈물을 속으로 삼키던 나도 절벽 위에 홀로 선 기분이었다. 결국 마지막 선택으로 화려한 도시를 떠나 구멍가게 하나 없는 바닷가 마을로 들어오게 되었다. 파도 소리만 철썩거리고 개구리 우는 소리가 처연한 이 외로운 섬에서 나도 어느새 기도하기를 배우게 되었다.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 밀려나서 간절한 기도로 견뎌낸 것처럼, 나도 인생의 바닥에 엎드려서 기도의 신비에 눈을 떴다. 로빈슨 크루소가 환난 날에 하나님을 만난 덕분에 28년의 시련을 이겨낸 것처럼 나도 고독과 절망의 나락에서 겸손한 감사와 믿음의 비밀을 체득했으니, 우리 인생에서 결코 쓸모 없는 경험은 없는 것 같다.
살다 보면 누구나 무인도에 불시착할 때가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게 실직일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중병일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실연의 아픔일 수 있다. 꿈이 자꾸 좌절되는 상황을 겪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거절당하는 슬픔을 맞기도 하고, 경제적인 바닥에 떨어져 허우적거리기도 한다. 내가 원하지 않는 길, 내가 안 가고 싶었던 그 막다른 골목에 떠밀릴 때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그 무인도에도 하나님은 존재하신다. 나를 도와줄 아무도 없는 것 같지만 나에게 손을 내미는 하나님의 사랑이 거기에 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내 이름을 계속 부르시는 하나님의 목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려 온다. 그 목소리를 듣고, 그 손을 붙잡는다면, 인생 역전의 드라마는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닐 수 있다. 그 전에 느끼지 못했던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는 설렘을 맛볼 수 있다.
로빈슨 크루소에게 고독의 섬은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학교였다. 나에게도 외로운 섬은 기도를 배우는 은총의 자리였다. 이 글을 읽는 독자 가운데서 절망의 섬에 불시착한 인생이 있다면, 그의 삶에도 새 출발의 줄을 붙드는 희망의 문이 열리기를 두 손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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