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로 과연 세상이 바뀔까?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

by 강물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기 전까지는 작가 이름도 몰랐고, 그녀가 쓴 다른 소설을 읽은 적도 없다. 국내 인터넷 서점들에서 뽑은 ‘2024년의 책’ 1위에 올랐고, [뉴욕 타임스]에서 ‘21세기 최고의 소설’ 중 하나로 선정했다고 하니,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무척 궁금했다. 2021년에 소설이 출간되었는데 3년 만에 영화로 나올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니 꼭 읽어봐야지, 싶었다. 읽고 나니 가슴에 뻐근한 생각거리를 던지는 소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작으로 꼽으며, 여러 차례 반복해서 읽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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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은 18세기부터 1996년까지 운영되던 ‘막달레나 세탁소’를 이 소설의 소재로 삼고 있다. 아일랜드 정부의 협조하에 가톨릭 수녀원에서 운영하던 막달레나 세탁소와 여성직업학교의 인권유린과 폭력행위를 묘사하고 있다. 이 시설들은 미혼모나 성매매 여성, 가정에서 버림받은 여성과 아이들을 돌보고 교화시키고 직업교육을 시키려는 선한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점차 변질되어서 강제노동과 감금, 억압 등으로 인해 사회적 공분(公憤)의 대상이 되었다. 2013년에 아일랜드 정부 차원에서 공식 사과까지 할 정도로 파장이 컸던 사건이었다.


이 소설은 그 사건을 정면으로 다루지만, 사회 고발적 성격을 드러내거나 정치참여로 독자를 이끌려는 의도는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독자의 양심에 종소리처럼 은은한 파동을 남긴다. “내가 만약 이런 일을 보고 듣는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행동할까?”를 자문(自問)하게 만든다. 이 소설은 간결한 하나의 사건만을 다루고, 분량도 한글 번역본 기준 110여 쪽 정도로 얇은 중편소설이다. 하지만 암시로 가득한 묘사들과 절제된 감정표현을 통해서 독자들이 소설 속 인물과 감정이입이 되게 만들고 있다.

석탄과 목재를 판매하는 평범한 상인 ‘빌 펄롱’은 아내와 다섯 딸과 함께 단란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그는 출생의 아픔을 안고 있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아이로 태어났다. 어머니도 12살 때 먼저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가사 도우미로 일하는 집의 주인인 ‘미시즈 윌슨’이 이 모자(母子)를 극진하게 아껴주었다. 빌 펄롱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고 싶은 욕구가 늘 있었지만, 미시즈 윌슨의 따뜻한 돌봄을 받은 기억은 그를 선량한 성품으로 형성시키는 데에 밑바탕이 되었다.

빌 펄롱은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갔다가 우연히 그곳에서 고통에 처한 아이들을 만난다. 어린 딸 다섯을 키우는 펄롱은 그 여자 아이들의 처지를 가볍게 여길 수 없었다. “만약에 내 딸이 저런 상황이라면?”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채 외면하는 것은 신앙인의 양심에 적절하지 않다고 여겼다. 자녀들에게 미칠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행동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그는 침묵보다는 행동을 선택한다.

이 소설이 독자의 마음에 던지는 질문은 예리하면서도 무겁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너는 비슷한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할래?”라고 슬쩍 묻는다. 그리고 그 화두(話頭)가 더 아프게 느껴지는 이유는, 순간순간 이와 유사한 갈림길에 자주 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대체로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는 선택을 더 자주 하기 때문이다. 억압당하고, 고통을 겪는 이웃이 있는 걸 알면서도, 당장 나의 안락한 소파를 지키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삶의 현주소이다.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나설 것이고, 내가 나서서 귀찮아지거나 손해 볼 필요는 없다는 자기중심 행동강령이 좌우명처럼 머리에 새겨져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의 메시지가 더 마음에 찔림을 안겨준다.

하지만 안주(安住)의 껍질을 깨트리고 일어서서 작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통해서만 세상은 조금씩이나마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감명 깊게 본 영화 가운데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Pay It Forward>가 바로 그 주제를 다루고 있다. 12살 ‘트레버’라는 남자 아이에게 학교 선생님이 과제를 냈는데,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그걸 시도하라는 것이었다. 트레버가 세운 원칙은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으면 바로 그 사람에게 신세를 갚는 것이 아니라 나도 다른 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푼다는 것이다. 영화는 이 트레버의 시도가 다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그 아이의 아이디어가 일파만파로 퍼져간다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트레버의 작은 실천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움직인 것처럼, 이 소설 속 주인공 빌 펄롱의 작은 선행 역시 주위 사람들에게 동심원처럼 퍼져갈 수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런 선한 파장이 안 생길 수도 있다. 소설에도 그런 언급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사랑의 실천은 다른 누군가에게가 아니라 먼저 나 자신의 마음에 선한 파동을 선물한다. 소설 속 주인공 역시 딸을 출산해서 품에 처음 안았을 때보다 더 뿌듯한 희열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나에게 진 신세를 갚을 길 없는 타인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 때, 그 기쁨은 세상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충만한 행복이다.

그리고 그렇게 선행을 실천하는 것이 인생의 보람과 의미를 누리게 한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참으로 가치있다고 느끼게 된다. 빌 펄롱의 머리에 문득 스친 생각 그대로이다. “만약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또한 사랑과 정의의 행동에는 용기가 필요한데, 그 의로운 용기가 바로 양심을 지닌 시민다운 품성이요, 특히 성경을 믿는 기독교인이라면 그것이 믿음의 표현일 것이다.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이 소설을 읽으면서 불현듯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초등학교 때 간혹 ‘양친회’ 행사에 간 적이 있다. 양친회 모임에 가서 먹을 것과 선물들을 받고, 봉투도 받고, 같이 사진도 찍은 기억이 난다. 양친회는 부모 없는 고아나 한 부모 가정을 미국 등의 해외 가정과 결연시켜 주는 프로그램이다. 지금 와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컴패션이나 월드비전 등의 국제단체들이 진행하던 지원 프로그램이었다. 나도 한 부모 가정의 아이라서 연결된 것 같고, 몇 번에 걸쳐서 지원을 받은 것 같다. 물론 우리 가정을 도운 미국의 가정이 어떤 가정인지, 이름이나 신상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 그분들의 사진을 본 것 같긴 한데, 실제로 만난 적은 없으니 기억에 깊이 남아 있지는 않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양친회의 기억이 떠오른 이유는, 주인공이 그곳의 아이를 돕기로 마음을 정한 배경 중에는 자신의 어린 시절, 어머니와 자신에게 마음을 써 준 미시즈 윌슨에 대한 기억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빌 펄롱은 어린 시절부터 그 누구보다도 고독과 결핍을 경험했지만, 또 한편 따사로운 사랑을 받은 기억도 남아 있었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은 기억이 있는 사람은 그 사랑을 다른 이에게 나누는 것이 자연스럽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베푸는 법이다. 그리고 은혜를 가슴에 새기고 받은 은혜에 사랑으로 보답하는 것이 양심의 열매이다.


내가 어린 시절,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미국인 그 누군가의 도움을 받은 것처럼, 곰곰이 생각해보면, 누구나 남의 도움 없이는 오늘에 이를 수 없었다. 부모나 친지나 친구에게서가 아니더라도 살아오면서 순간순간 다른 사람의 신세를 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 누군가가 나에게 베푼 그 사랑의 나눔이 오늘의 나를 존재하게 했다. 이 사실은 이 세상이 사랑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원리를 깨우쳐준다. 세상에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다 서로의 존재를 필요로 하고, 그러기에 서로를 도와야 하고, 서로 사랑할 때 삶의 의미와 기쁨이 있다.

한자로 ‘사람 인’(人) 글자 모양처럼 서로가 서로의 어깨에 기대는 것이 인생의 본질이다. 그러기에 내가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는 것은 놀라운 일이나 위대한 일이 아니라 사람으로 태어나서 갖춰야 할 자연스런 모습이다. 그리고 그 작은 사랑의 실천 하나가 부패와 비리로 가득한 이 세상의 단단한 구조에 실금이 가게 할 수도 있다. 겨울철에 탐스럽게 내리는 눈송이 1개의 무게는 약 1-10mg이다. 그러나 그 눈송이들이 50센티에서 1미터 정도 지붕에 쌓이면 집이 무너진다. 과학적으로 눈송이가 4천만 개 이상 쌓이면 집을 붕괴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눈송이 한 개 만의 무게는 보잘 것 없지만 수천만 개 모이면 집을 무너뜨리는 것처럼, 나 한 사람의 작은 행동이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이 행동이 모이면 나중에는 세상을 흔들지 누가 알겠는가!


성경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태복음 25장 40절). 가난한 자, 목마른 자, 배고픈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 그 한 사람에게 베푼 작은 선행을 예수님에게 베푼 선행이라고 평가하셨다. 내가 한 작은 행동이 무슨 큰 힘이 있을까, 싶지만 그게 아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지만 그 이전에 그 행동은 예수님의 마음에 감동을 주고, 하늘에서 위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빌 펄롱은 미시즈 윌슨의 사소한 미소, 사소한 말 한마디, 사소한 선물 한 개를 어린 시절에 받으면서 자랐다. 그 사소한 것들이 결코 사소한 것들이 아니었음을 그의 삶으로 증명했다. 사소한 것들이 모여서 아름다운 꽃들로 피어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오늘 내가 뿌리는 사소한 사랑의 씨앗 하나가 먼 훗날 꽃향기 자욱한 정원을 이룰 수 있다는 부푼 상상을 하면서, 뿌듯한 마음으로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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