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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pe Jun 21. 2022

20대 후반에 찾아온 첫사랑

커피

커피를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한 건 20대 후반이다. 사실 그전에는 무서워서 커피를 마시지 못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커피를 입에 대기 시작했으나,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오는 증상(?)에 선뜻 마시지 못했다. 그렇게 대학 생활과 사회초년생을 커피 없이 보냈다. 회사에서 팀이나 그룹으로 커피를 시킬 때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부탁하고서 하루 종일 찔끔찔끔 마시곤 했다. 지금도 벗어나진 못했지만, 그때는 더한 '카페인 쓰레기'였다. 당시 시험 기간과 업무 시간을 어떻게 버텼나 싶다.


그러던 중 운명적으로, 다시 커피를 다시 마시게 되었다. DDP에서 진행하는 한 박람회에 갈 일정을 앞두고 있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입장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광장에 마련되어 있는 파라솔에 앉아 잠시 책을 읽었다. 그때 옆 파라솔에 어떤 아주머니 두 분이 앉으셨다. 그리곤 자신의 가방에서 보온병을 꺼내어 서로 그 음료를 나눠마셨다. 들려오는 대화에 따르면 그것은 라떼였다.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내 독서에 집중했다.


그런데 내 옆에서 떠들썩하게 이야기하며 자기들끼리 라떼를 마시는 것이 내심 맘에 걸렸나 보다. 아주머니 한 분께서 종이컵에 라떼를 따르더니 내게 권하셨다. 자신이 직접 내린 거라고 하셨다. 나는 당황했지만, 거절할 수 없어 그 종이컵을 받아들였다. 지금 생각하면 겁도 없었다. 어떤 건지 알고 그렇게 낯선 사람이 준 걸 덥석 마셨는지. 하지만 선의를 모른척할 수도 없었고, 무엇보다 커피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을 막을 수 없었다.


식후 아메리카노가 한때 내 로망이었다. 식사 후 티타임을 즐기고 싶지만, 카페의 티 메뉴는 조금 더 비싼 편이었다. 티 라떼 또한 배가 불러 맛있게 마시지도 못했다. 그래서 늘 아쉬움이 남았던 것이 커피였다.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었던 나는 아메리카노 한 잔의 여유가 참 부러웠다.


그렇게 종이컵 반 잔의 라떼를 홀짝였다. 두통이 올까 걱정했지만, 웬걸. 나쁘지 않았다. 그 후로 조금씩 커피에 도전하며 마시기 시작했다. 늘 음료를 탄산음료로 교체해야 했던 맥도날드 맥모닝 메뉴도 당당하게 주문한다. 하지만 진한 에스프레소나 늦은 시간 커피는 함부로 도전하지 않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라떼, 따뜻한 라떼는 종종 마시고 있다. 가끔 아인슈페너와 같은 크림 커피, 캡슐커피도 찾는다.


같은 아메리카노라도 가게에 따라 나타나는 증상이 달랐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띵한 느낌이 천차만별이었다. 지금도 나는 나만의 아메리카노 여유를 누리고 있다.


나를 오래 안 친구들은 커피를 다시 마시기 시작한 과도기일 때, 내가 그들 앞에서 커피를 주문하면 깜짝 놀라곤 했다. "네가 커피를 마셔?" 그때마다 나는 "응, 조금씩 마시고 있어"라며 내심 우쭐거렸다. 개구리 올챙이일 적 생각 못한다더니 딱 그 모습이었다. 커피를 안 마셔도 잘 살고 있었는데. 새로운 문을 하나 연 느낌이었다.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니, 디저트와 티타임도 뭔가 더 풍성하게 다가왔다. 구움 과자류나 빵은 역시 커피와 어울렸다. 나름 커피를 마시기 전에도 이런 달콤한 디저트들은 불편함 없이 즐기고 있었지만, 커피와 함께 하니 또 다른 세계였다. 역시 사소하고 친근할수록 더욱 깊이 빠지게 되면 그 매력은 한도 끝도 없는 것 같다. 다만 건강은 커피를 마시기 전이 좀 더 나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커피가 불러일으키는 여러 증상들은, 내 건강을 해칠만큼 중독까지 가지 않도록 조절해주고 있다.


그때 라떼를 권해주신 아주머니께 감사한다. 그리고   잔을 무모한 용기로 받아 마셨던 당시의  또한 칭찬한다. 삶을 바꾸는 변화와 거창한 성장은 한순간에 일어나지 않는다. 기회는 우연이라는 옷을 입고 찾아오며, 선택은 무모함과 함께 이루어진다.


아마 내 인스타 피드의 반 이상은 커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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