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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pe Jun 29. 2022

기억나? 우리 처음 만났던 때

자전거

두 발 자전거를 처음 탔던 건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대략 초등학생 저학년 때였던 것 같다. 그보다 어렸을 적에는 보조바퀴를 단 네발 자전거로 외할머니댁 맨션 주차장 마당을 돌거나, 한강공원을 달렸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두 발 자전거의 이야기를 하려면 우리 아빠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두 발 자전거를 온전히 타기까지 어린 나의 짜증과 투정을, 억울하게도 오롯이 받아내야만 했던 사람이었으니까. 하나의 장면처럼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두 발 자전거를 내팽개치고, 그저 씩씩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던 내 모습. 자전거 타기가 내 맘대로 되지 않으니 짜증이 단단히 난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아빠도 마냥 야속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잘 안 되는 걸 왜 자꾸 해보라고 하는지. 나도 속상한 마음이 북받친 나머지 자전거를 버리고 퉁퉁 부어 있었던 것 같다. 그 이후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아빠 없으면 집에도 가지 못했을 아이가 무슨 성질을 그렇게 냈을까. 지금 성인이 된 나는 문제없이 두 발 자전거를 타고 있으니, 기억이 없는 그 공백 동안 나는 두 발 자전거를 어찌어찌 마스터했을 것이다.




나에게 자전거란 이벤트에 가깝다.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교통과 운동, 여가로 활용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지만. 나의 생활권은 버스나 지하철로 다니기 충분한 데다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자전거도 없다. 그래서인지 서울시 따릉이가 생긴 것이 내심 반갑기만 했다. 이따금씩 바깥을 걷다가 좋은 날씨에 바람을 쐬고 싶으면 훌쩍 타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탄 것은 작년 4월이었다. 저녁 바람이 선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생과 함께 각자 퇴근 후 합정에서 만나 저녁을 든든히 먹고, 근처 한강공원에서 따릉이를 빌려 한강변을 달릴 계획이었다. 그렇게 마포 부근에서 옥수역 동호대교 부근까지 약 15km. 40분 좀 넘게 걸리는 코스였다.


오른쪽 옆으로 지나가는 한강 야경. 점점 멀어지는 동생 자전거와의 거리에 미련을 버리고 서서히 마음 편하게 달렸다. 몸에 착 붙는 라이딩 슈트에 헬멧, 온갖 도구들을 장착한 자전거 무리들도 슝슝 지나갔다. 산책이나 운동, 데이트를 하러 나온 사람들을 지나며 열심히 달렸다. 나는 그때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 기억나는 건 동호대교에 도착했을 때, 내 다리가 멋대로 지상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옥수역 게이트에 따릉이를 반납하고 마을버스를 탔을 때, 자동차가 이렇게 멋진 것이었구나 새삼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는 '처음'에 대해 생각해본다. 내게 인상적인 '처음'을 남긴 자전거. 지금은 다소 낭만적(?)인 수단으로 자전거를 찾는데, 배우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나름 다른 여가를 즐겼겠지만, 자전거로 인한 즐거움은 발견하지 못했겠지. 마치 스티커를 모은다고 하면, 내 인생 다이어리에 자전거 스티커는 없었겠지?


성장하고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마주한 '처음' 있고, 두려움과 긴장으로 마주한 '처음' 있다.  처음들이 모여 익숙함이 되고, 나도 모르는  지금  삶의 일부들이 되었겠지. 하나하나 모두 기억나지 않고 떠올리기도 버거울 만큼 가득한 '처음' 순간들. 이건  다른 글쓰기 소재로 언젠가 쓰고 있을  같다.


따릉이로 한강변을 달려 퇴근한 날. 낭만을 얻고 다리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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