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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pe Jul 06. 2022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불을 붙여

숫자

지난달 합동 생일파티를 치렀다. 진짜 내 생일은 불과 몇 달 전이었지만, 그때만 해도 코로나로 인해 제대로 모이지 못했었다. 덕분에 나도 다른 두 친구와 함께 생일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이렇게 주인공이 세 명이 되어버리자, 네 명이 모이는 이 그룹 중 다른 한 명이 바빠졌다.


조각 케이크와 숫자 초, 그리고 다양한 카드 엽서까지. 혼자서 세 명을 축하해주기 위해 한아름 싸들고 온 꾸러미였다. 감사하게도 주변에서 보내주신 선물들 중 디저트와 케이크들이 어느 정도 있어서,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는 작은 조각 케이크를 준비해주었던 것이다. 숫자 초 또한 저마다 다른 나이를 표현한 것이었으며, 통일된 디자인이 아닌 개성 넘치는 카드 엽서들은 여행하면서 사 모은 것 중 골라왔다고 했다. 각각 축하 주인공들을 위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초에 불을 붙이거나, 카드를 쓰지 않아도. 그렇게 선물이 다 완성되지 않아도 그 마음만큼은 뜨겁게 느껴졌다. 어디에도 없는 나만을 위한 맞춤 선물이었으니까.


2렇게 초조한데- 4랑해 널 사랑해- 6십억 지구에서- (ft. 숫자송)


이날의 즐거운 시간을 담은 사진을 다시 보다가, 조각 케이크  숫자 초들에 시선이 멈췄다. (생각보다 많아진 나이에 놀라면서...) 숫자의 의미에 대한 나만의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그것은 기억과 기록이었다.


이번 달은 내가 요가를 시작한  1년째가 되는 달이다. 처음  달은 내게 주어진 일말의 성실함과 양심으로 겨우 다녔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살고자 하는' 매력에 끌려 연장 신청을 해왔다. 동작의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호흡에 집중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으며, 무엇보다  몸을 조금씩 아끼고 사랑하게 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이거라도  하면,  정말 큰일 나겠다 하는 찔림도 빼놓을  없았다.


나름 1년 동안 쉬지 않고, 내 인생 처음 시도했던 걸 꾸준히 해왔다고 생각하니 스스로가 대견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만들어 가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창대한가 보다. 부끄럽지만 예전보다 태가 난다고 말해주는 분들이 많아, 지난 1년의 시간이 주는 선물과 보람이라 여기고 받아들이는 중이다.


그렇게 '요가'라는 이름의 시간에는 '1' 모양의 숫자 초를 꽂아주고 싶다. 마찬가지로 '회사생활'에는 '2' 모양... 이렇게 하나하나 내 마음속 축하 케이크에 숫자 초를 꽂아주다 보면, 그 케이크는 점점 다채롭게 물들어가겠구나 싶다.


커플들 사이에서 기념일을 챙길까 말까 하는 이슈들이 생기는 것을 종종 듣는다. 꼭 커플들 아니더라도,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무언가 기억하고 마음을 표현할 만한 사소한 일이 있다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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