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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pe Jan 16. 2023

밑줄치고 싶은 단어

<오늘의 단어> 임진아

평소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했던 어느 날, 삼성역 인근에 있는 북카페를 찾아갔다. 다소 시끌벅적한 인상의 삼성역 동네에서 홀로 고요한 분위기를 내는 곳이라고 했다.


직접 찾아가 보니 과연 그랬다. 나무 소재로 지어진 책상과 의자, 2층 침대, 벙커와 같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읽을 책을 챙겨 오긴 했지만, 왠지 '지금 여기서만' 읽을 수 있는 책을 보고 싶었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주문, 특히 낯선 여행지에서 많이 외우게 되는 주문. "지금 여기서만.")


그러다 보니 어렸을 때 읽었던 만화책 코너부터 눈이 갔다(?). 아무 생각이 없어지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 집어든 드래곤볼 완전판 한 권을 그 자리에서 단숨에 읽었다.


'아차. 그래도 에세이 하나는 찾아봐야지.' 북카페에 처음 들어와 자리를 찾던 중에 눈에 들어온 책이 있었다. 바로 임진아 작가의 에세이. 글쓰기는 물론 삽화까지 직접 그렸다. 우연히 만난 이 책은 집에 가서도 더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럴 때는 스마트폰이 참 편하다. 동네의 스마트도서관 홈페이지를 검색해 보았다. 같은 책은 없었지만 같은 작가의 다른 책은 대출이 가능하다는 애매한 결과가 나왔다. 일단 이걸로라도 만족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북카페를 나섰다. 이것이 <오늘의 단어>와 만나게 된 계기다.



<오늘의 단어>는 임진아 작가, 그리고 그의 반려견 키키의 시선이 각각 담긴 책이다. 작가의 이야기는 글로, 키키의 이야기는 만화로 그려져 있다. 이 책의 기획안에 이런 문장이 있었단다. "일상에서 키키가 산책하며 동거인 진아를 관찰한 일기." 나라도 반려견이 있었다면 무척 흥미로웠을 문장이다.


내가 온갖 애정을 쏟으면서, 그가 하는 말을 알아듣고 싶을 존재. 그 존재가 나를 관찰하다니. 그 일기에는 내가 아는 모습, 바라는 모습, 그리고 직면하고 싶지만 두려워서 피하고만 있던 '나'의 모습들이 담겨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작가는 네 개의 계절마다 '오늘의 단어'들을 두고 이야기한다. 일상을 보다 다르게 보고 싶고, 그를 표현할 단어를 고민하며 피곤하게 지내는, 나같이 살아가는 사람이 또 있는 것만 같아 반가웠다.


오늘, 나를 잃어버릴 뻔한 일을 겪었나요. 밤에는 내가 아는 나를 만나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나를 내버려 둔 채 그저 나와 단둘이 고요히 있다 보면 여럿의 나를 만납니다. 거기서 가장 만나고 싶은 나를 만나 다시 출발한다면, 내일 아침에는 오늘보다 조금 더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을지도요.
_겨울의 단어, '밤' 207쪽


지나간 시간에 구부린 만큼 당기고 내일 더 유연해지고 싶은 만큼 쭉 펴면서, 주어진 삶을 조금이라도 느리게 걸어가려고 합니다. 일할 때의 자세는 마치 몸을 빨리 망가트리기로 작정한 사람 같거든요.
_봄의 단어, '스트레칭' 272쪽

 

에세이를 읽다 보면 공감선이 생기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표현도 쓸 수 있구나'하며 감탄하기도 한다. 밑줄치고 싶은 단어와 문장들이 많다는 건 그만큼 애정이 생겼다는 뜻이겠다. 최근 2주 동안 나의 오후 시간대를 책임졌던 <오늘의 단어>. 하루를 바라보고, 그를 표현할 단어를 고르면서 생동감을 느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는 것도 나름 재밌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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