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가 스텐첼 사진전_집안의 초현실주의
어느 루틴 없이 하루하루의 계획을 세우는 요즘. 사람을 만나거나 혼자 시간을 보내거나. 특히 혼자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면, 먼저 카카오톡의 내 프로필을 클릭해 본다. 그동안 수집해 온 온갖 정보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들, 인상적인 문장들, 읽고 싶은 책들, 만들어보고 싶은 요리 레시피 링크 등이 무작위로 담겨 있다. 이번에는 그중에서 전시 관련 정보들을 찾아보았다.
작년 하반기에는 딱히 큰 이유 없이, 전시를 잘 보러 가지 않았다. 일종의 귀차니즘 때문일지도. 당장 비용을 지출하는 것도 그렇고, 부지런히 움직일 원동력이 그때는 없었나 보다. 하지만 지난 1월에는 벌써 영화도 두 편을 보았으며, 전시도 두 개나 다녀왔다. 새해의 힘인 걸까?
이 와중에 이번 '헬가 스텐첼 사진전'은 기대하고 있던 전시 중 하나다. 일찍이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하고 있던 작가였는데, 한국에서 전시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매치가 되지 않았다. '이게 그 작가인가?' 하며 혼자 긴가민가했더랬다. 티켓 할인 정보까지 알게 되었을 때는 더 망설이지 않았다. '일단 사놓고 보자'.
이후 그 전시를 볼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근처에서 일정을 마치고, 조금만 걸어가면 전시장에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심오한 내용도 아니고, 가볍게 보고 올 수 있는 느낌이 딱이었다.
나는 전시를 볼 때, 작품과 함께 있는 설명 텍스트도 다 읽는다. 조금 과장하자면, 그 텍스트들도 작품처럼 여기며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진전은 텍스트가 많지 않았고, 오히려 QR코드를 통한 오디오 가이드가 마련되어 있었다. 원래 오디오 가이드를 잘 듣지 않는 편인데, 이번에는 설명 텍스트도 없다 보니 더 궁금해졌다. QR코드 인식을 통해 한 어플까지 다운 받아가면서 오디오 가이드를 들었다.
헬가 스텐첼 작가는 먼저 얻은 영감을 소재로 표현한 것이 아닌, 그저 일상 속의 소재들을 빤히 보는 것으로 영감을 얻는다고 했다. 빨랫줄에 널린 옷가지, 건물 벽에 있는 창문, 심지어 다 마시고 난 티백, 체리와 바나나 등의 과일까지. 그렇게 소재를 촬영한 다음, 몇 가지 채색 작업이나 편집을 거쳐 귀여운 작품들을 만들어낸다.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하게 되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할 수 있지?' 전시장에는 액자에 걸린 작품들만이 아니라 콘센트, 비상구 표지판 등 이 전시 공간에만 있는 시설과 구조물에 익살스럽게 그려낸 작품들도 있었다. 이 전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들인 것이다.
주변에 있는 너무도 익숙한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나만의 작품을 만드는 것. 그 단순한 과정으로 이렇게 작품 활동은 물론 전시까지 이루어진 것에 묘한 위로를 얻었다. 나도 글을 쓰는 것이나, 누군가를 위한 선물을 준비할 때 이런 사소함에서 시작하곤 한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직접 표현하고 만들면서 나오는 결과물이 괜찮을 때면 그렇게 즐거울 수 없다. 나만이 아는 즐거움. 하지만 가끔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하는 생각이 불쑥 들 때면 주춤한다. 외로움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복잡한 마음들이, 작가가 남겨놓은 문구에 위로를 받았다.
"Do something that's genuinely interesting to you, experiment and take path in creative competitions."
(진정으로 흥미로운 일을 하고, 실험을 하고 창조적인 경쟁에 참여하세요.)
지금 생각하면 그럴 정도의 메시지는 아닌 것 같은데. 그 순간에는 뭔가 울림이 있었다. 이래서 직접 전시를 보러 가는 건가 보다.
전시를 보고 나올 때면 엽서 굿즈를 사는 편이다. 이번에는 꼭 사고 싶은 엽서가 있었다. '이 작품을 담은 엽서 굿즈가 있다면 꼭 사야지.' 하면서. 바로 52개의 젤리곰을 직접 붙여 만든 포도송이였다.
우리 삶 속에 숨어있는, 젤리곰 같은 행복과 달콤함. 잊어버릴 수 있으나 내 일상에 늘 가까이 있다. 발견할 수 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는 메시지를 담았단다. 내 닉네임(Grape)이라 그런지 더 눈길이 가는 작품이었다.
지금 내가 보내는 시간. 내가 하고 있는 노력들. 내가 아니면 또 누가 나 자신을 존중하며 소중히 여길 수 있을까. 하루하루 내 곁의 젤리곰들을 발견하며, 즐겁게 지내보자. 그렇게 행복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