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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pe Feb 09. 2023

나도 누군가에게는 타인

<타인의 집> 손원평

출근길마다 온라인 서점 어플로 베스트셀러 순위를 확인하던 때. 뚱한 표정을 한 소년이 그려진 표지가 매번 눈에 띄었다. 바로 <아몬드>라는 소설이었다. 각종 상을 수상하고 외국어로 번역되어 세계 독자들이 읽고 있다는 책. 덕분에 손원평 작가의 이름도 내 뇌리에 남았다.


역내 스마트도서관 앞에서 읽을 책을 찾아 기웃대던 내게, 또 하나의 표지가 눈에 띄었다. 바로 <타인의 집>이라는 소설이었다. 또 손원평 작가의 책이었다. 특성상 선택의 폭이 좁은 스마트도서관이지만, 익숙한 작가의 책이 있다니 반갑기만 했다.




<타인의 집>은 단편 여덟 개를 모은 소설집이다. '4월의 눈', '괴물들', 'zip', '아리아드네 정원', '타인의 집', '상자 속의 남자', '문학이란 무엇인가', '열리지 않은 책방'. 소설집이라고 하니 뭔가 입문용인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짧게 여러 작품을 한 번에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내 기준으로는 하나의 단편만 빼고는 뭔가, 각자만의 우울한 분위기를 지녔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도 보인다. 바로 사람과 공간. 나 자신 또한 누군가에게는 타인이라는 것. 그 이야기들이 '집'이라는 소재와 함께 묶인 것 같다.


<타인의 집>은 목차에 '해설'이 들어가 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다 읽고 난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각 단편을 읽을 때마다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를 마주하는 느낌이었으니. 하지만 나는 아직 '해설' 파트를 읽지 않았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순수한 소감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봤자 인상적이었던 문장들을 나열하는 정도라서 쑥스럽긴 하지만.



때로는 뭔가를 더 완성시키기 위해 힘을 보태는 것이 모든 것을 어그러지게 한다는 걸, 그때는 몰랐었다.
_'괴물들' 51쪽
영화는 말없이 운전을 했다. 왜 귀에는 덮개가 없을까. 눈은 감아버리면 되고 입은 닫아버리면 되고 숨은 턱 끝에 차오를 때까지 참아버리면 그만인데 귀는 왜 이렇게 속수무책인 걸까. 왜 의지로는, 자력으로는 단 한마디도 걸러낼 수가 없는 거지. 게다가 나는 지금 손으로 귀를 막을 수도 없잖아.
_'zip' 85쪽


ㄴ완벽을 바라지만 결코 완벽해질 수 없는 인간. 그 차이를 깨달은 순간은 확실히 괴롭고 답답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래서 다행이라고 여기며 안심한다. 나만큼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고민을 한다는 생각에.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굳이 블렌딩 인 될 필요 없다고요. 결국 마이웨이로 사는 사람이 살아남아요."
_'타인의 집' 156쪽
이만하면 만족한다고 위안하다가도, 발밑의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화해 제자리걸음은 곧 퇴보라는 불안감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럴 때면 모든 게 갖춰진 내 방의 벽도 여전히 벽이라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과연 나는 조금이라도 도약할 수 있을까.
_'타인의 집' 158~159쪽


ㄴ'배려'와 '눈치'의 미묘한 차이에 늘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요즘 드는 생각은 이렇다. 먼저 나 자신에게 당당하고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 여기서 비롯된 행동들이 곧 신뢰가 되어, 상대에게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마이웨이. 나의 마이웨이란 무엇인지 고민 좀 해봐야겠다. 세상과 비교했을 때 제자리걸음 같아도, 나 스스로는 어떻게든 움직이고 있는 거니까.



"있잖아, 이미 일어나버린 일에 만약이란 없어. 그건 책임지지 못할 꿈을 꾸는 거나 마찬가지야. 하지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지. 어떻게 하든 누군가는 아프게 된다고. ...반대로 말하면 누군가는 기쁘게 되는 거야."
...세상에 일어나는 무수한 일들에 정답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_'상자 속의 남자' 191쪽


ㄴ이미 일어나버린 일에 만약은 없으며, 세상의 무수한 일들에 정답 같은 건 없다. 더 나은 정답이 있었을 거란 생각은 나를 괴롭히는 것 중 하나다. 앞으로는 더 나은 정답을 찾을 수 있을 테니, 지난 일에 너무 마음을 쓰지 말자.



아마도 나는 변함없이 상자 안에 숨어서 안전한 삶을 꿈꿀 거다. 이미 굳어진 어른의 마음은 쉽게 변하기가 힘든 법이니까. 그렇지만 누군가를 향해 손을 멀리 뻗지는 못한다 해도 주먹 쥔 손을 펴서 누군가와 악수를 나눌 용기쯤은 가끔씩 내볼 수 있을까.
_'상자 속의 남자' 200쪽


ㄴ용기란, 일단 성공 여부를 따지지 않고 질러보는 것이다. 나를 깨고 나올 정도의 용기. 간헐적으로 용기내기. 그 단어가 지닌 의미 자체가 너무 큰 것 같지만.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 용기이다. 크든 작든 가끔이라도 내보자. 용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글쓰기가 좋아서가 아니었다. 그저, '글쓰기를 그만둘 수 없음'을 타고났기 때문이었다.
_'문학이란 무엇인가' 216쪽


ㄴ막연히 글쓰기를 붙들며 살아왔다. 그런 내 모습을, 감히 이 문장으로 표현해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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