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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pe May 05. 2023

음료와 디저트까지 모두 시킨다는 것

서울 성동구 '제네랄플랜트'

우리 동네에는 높고 낮은 언덕길이 많다. 그래서 산책을 할 때도 나름의 멋이 있다. 평면에서는 볼 수 없는, 높낮이가 다른 데서 보이는 재미있는 장면들이 많다. 요즘 나의 아지트가 되어가는 '제네랄플랜트'도 그 장면들 중 하나이다.


어느 날 동네를 산책하던 때, 평소 가지 않은 다른 골목으로 가본 적이 있었다. 원래 알던 곳보다 더욱 깊숙이. 그러다가 마주친 어떤 한 건물의 1층 카페. 건물을 지나 조금만 더 가면 한강과 그를 지나는 다리가 내려다 보이는 곳. '이런 데 카페가 있었다니!' 처음에는 지갑도 없이 몸만 나온 상태였기에, 다음에 꼭 한번 와봐야지 하고 그냥 지나갔었다.


그 뒤로 종종 찾아왔다. 책을 들고, 노트북을 들고, 또 어느 날은 친구와 함께. 요즘은 새 직장으로 출근을 시작하게 된 탓에, 한낮의 여유를 즐기고 싶을 때 찾는 곳이 되었다. 한쪽 벽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그날 날씨와 풍경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곳. 꽃과 화분을 비롯해 판매하는 몇 가지의 잡화들로 눈도 즐거워지는 곳이다.



나만의 소소한 호사가 있다. 바로 카페에서 음료뿐만 아니라 디저트까지 함께 주문해서 먹는 것. 일행이 있으면 디저트를 시키는 것이 평범한 일일 수 있지만. 혼자 갈 때 디저트까지 주문하는 것은 비용과 양의 면에서 부담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호사를 누리고 싶다는 건. 보다 카페에서 오래도록 시간을 보내며 나를 쉬게 하고, 또 여유를 주고픈 무의식의 발현인지도 모르겠다.


시간마다 다른 소리와 모양을 뽐내며 비가 하루종일 오던 날. 비닐우산에 맺히는 빗방울 모양들에 슬금슬금 감탄하며 '제네랄플랜트'로 향했다. 나만의 소소한 호사를 위해서. 그런데 웬걸. 평소에 디저트가 놓여있던 쇼케이스가 텅 비어 있었다. '다른 데로 가야 하나?'


하지만 쇼케이스를 자세히 보고 사장님께 물어보니, 오늘 디저트들은 냉장 보관 중이라고 했다. 놀랐던 가슴을 쓸어내렸다. 막상 관심을 갖고 보니 생각보다 다양한 디저트 메뉴들.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가,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스콘을 주문했다. 낮 시간인 만큼 아직은 아메리카노를 마셔도 괜찮은 시간이었다. 카페인에 약한 나는 나름의 커피 통금시간(?)이 있다. 디저트와 함께 먹기에는 아무래도 아메리카노가 좋다. 라테는 우유가 들어가서 배가 금방 찬다.


스콘은 촉촉했다. 마치 떡에 가까운 식감. 평소 입 안에 꽉 차는 빵의 식감을 좋아하기에 스콘 컨디션은 매우 적절했다. 스콘만 떼어먹었다가, 딸기잼도 발라서 먹었다가, 커피 한 모금에 적셔 먹었다가. 이렇게 써놓고 보니 대단한 미식가인 것만 같네. 그저 하나의 스콘을 다양하게 즐기려는 시도였을 뿐이다.



'혹시나 몰라' 하는 마음에 늘 가방의 무게가 무겁다. 이것저것 챙겨 오는 게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은 책과 다이어리만 딱 챙겨서 나갔다. 요즘 나의 바람, 나의 생각들에 소름 돋게 공감해 주는 에세이다. 카페의 배경음악은 생각보다 리듬감이 넘치는 음악이라 나도 모르게 둠칫거리기도 했지만. 오히려 한번 집중하면 그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여러 모양으로 스콘을 먹다가, 커피를 마시다가,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다가, 책을 읽다가, 가끔 밖을 보며 멍 때리다가,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실제 카페에 있을 때에는 이런 느낌까지 들지 않았는데. 이렇게 쓰고 보니 참. 그 시간들을 참 여유롭게 보냈네.


휴일을 보내고 나면 이상하게 더 힘이 빠지는 부분이 있다. 내가 잘 쉰 게 맞나 아쉬워하는 것. 참 미련하게, 왜 그런지 모르겠다. 어떤 모양이든, 내가 만족하고 즐거웠다면 그게 최고의 휴식이 아닐까. 매번 새로이 마음을 달래준다. 왜 쉴 때도 눈치를 보는 걸까. 그러지 말자.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 있는 것. 스스로가 무얼 좋아하는지 알고 있다는 증거인 것 같아 참 다행이고 감사하다. 그저 이 순간. 현재에 집중하길. 그렇게 오늘의 행복을 누릴 수 있길. 자신을 사랑하는 데에서 나의 자존감과 당당함이 우러나온다. 이것이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인 에너지와 행복을 전해줄 수 있을 것이다.


비가 와서 그런가?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잘 쉬다 와서 그런가. 오늘따라 감성이 더 넘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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