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상철 Aug 01. 2019

인덕션 요리, 할만한가요

아날로그 가스레인지에서 디지털 인덕션까지


요리는 불과 친해지는 기량이다. 요리는 늘 ‘딸칵’ 하며 가스레인지에 불을 댕기면서 시작했다. 각종 팬이나 냄비 등 용기들은 불이 없이는 존재가치가 떨어진다. 용기 밑면은 화력을 잘 전달하고 잘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 주방 불 앞에 서는 행위를 요리라 일컫기도 한다.

사실 불의 사용은 인간 진화의 열쇠다. 문명의 시작이자 현재이며 미래의 견인차다. 불을 안정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생존은 물론 문명을 지금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요리사들은 정말 불을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불맛’의 대명사인 중화요리를 보면 정말 불로 웍을 다루는 기술은 일품이다.

나도 요리를 가스불로 시작했고 배웠다. 2013년 요리학원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손질돼 나온 재료를 앞에 놓고서 강사가 하라는 대로 따라 했다. 그 절차 중의 하나가 가스불을 켜고 불의 세기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스위치를 돌리면서 화력의 크기와 세기를 확인하도록 했다.

육수가 끓거나 조리 중에 있는 음식일 경우 정말 불의 세기에 따라 과정이 달라진다. 수분이 줄어드는 모습이나 재료가 익는 속도가 달라졌다. 찌개든 탕이든 볶음이든 조림이든 불의 세기는 정말 요리의 과정과 결과물의 차이를 눈 앞에서 그대로 보여주었다.

한식은 특히 화력이 중요하다. 국물을 많이 이용하는 한식은 불의 세기에 따라 정말 결과는 달라진다. 특히 간을 할 때는 불의 조절이 중요하다. 국물이 뜨거우면 입에 대기도 부담스럽지만, 간을 확인하기도 어렵다. 국물 간은 미지근할 때 가장 정확하다. 그래서 간을 할 때는 약불에 놓고 한다.

보통 국물 요리는 약불로 간을 한 후에 대파와 청양고추, 홍고추를 마지막 과정으로 썰어 넣게 된다. 이때 중불로 한소끔 끓여 그 재료의 향을 배게 한 후 완성시키게 된다. 물론 간을 다시 더 하려면 약불에 놓고 하면 된다. 다만 간을 자주 보는 것은 좋지 않다. 미각이란 게 몇 번 맛보다 보면 금방 중화돼 버리기 때문이다.


그만큼 가스레인지의 화력 조절은 요리의 중요한 과정이었다. 그래서 진짜 요리사들은 가스불을 선호한다. 아날로그의 미세한 불 조절이 맛의 미묘함으로 대치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불꽃을 보면서 익는 속도를 느끼는 요리는 요리사만이 가지는 숙련의 코스인 셈이다.



이제는 디지털의 세계다. 인덕션이 어느새 주방을 점령하고 있다. 불꽃을 댕기는 특별한 행위가 필요 없게 됐다. 눈으로 불을 확인할 수도 없다. 요리는 이제 느낌이나 감으로 시작되고 진행된다. 팬과 냄비에 전해지는 온기와 촉각만이 디지털 신호와 함께 감지될 뿐이다.

내가 인덕션을 사용한 지는 2년이 안 됐다. 아파트를 리모델링 인테리어로 싹 바꾸면서 함께 바꿨다. 인덕션이 비싸 백화점에서 전시용품으로 절반값에 구입했다. 익숙해진 지금은 잘 바꿨다는 생각이 든다. 여름철 선풍기 바람에 신경 쓸 필요가 없고, 국물이 흘러넘쳐도 청소가 너무 편하다. 불 조절은 디지털 숫자의 크기로 가능하다. 전용 용기만 따로 한번 교체하면 된다.

인덕션이 처음 들어온 날이 재작년 추석 연휴 이틀 전이었다. 보통 명절에는 내가 명절 음식 메인 요리들을 계획하고 담당한다. 하지만 인덕션이 변수였다. 불을 사용할 수 있어야 요리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리 인덕션 사용법과 특성에 대해 검색으로 어느 정도 머리에 그려놨다.

문제는 사용 당일이었다. 인테리어가 끝난 후 포장이사 짐을 다시 옮기는 시간에 인덕션도 함께 설치됐다. 복잡한 짐정리로 매뉴얼을 찾을 수 없는 상태에서 인덕션을 작동해야 했다. 전혀 작동방법을 알 수 없는 터라 출근한 아내에게 전화로 도움을 청했다. 알 만한 동료에게 확인한 아내가 간단한 답변을 보내왔다.


 한 번 ‘터치’해 보래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이없는 일이다. 디지털 기기의 터치 조작은 너무 익숙한 상황이 아니던가. 당시 나는 뭘 터치하라고 하는 건지 정말 1도 몰라, 한참 생각을 거듭했다. 인덕션 바닥판은 그저 어두운 얼굴로 빤히 나를 응시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병원에서 바쁜 일을 하고 있는 아내에게 다시 연락하기도 내키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웹 검색을 통해 주워들은 건 있었다. 전기 코일을 통해 열을 전달시킨다는 것 등등. 문제는 구체적인 작동에서 막혔다. 다시 한번 그 원리와 터치에 관해 연관성을 곰곰이 생각했다. 무엇을 터치하라는 것인지에 대해 집중했다. 궁리 끝에 올려진 냄비부터 손끝으로 조심스레 ‘터치’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우습고, 멍청할 정도로 쑥스러운 일이지만 당시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고, 난감한 일이었다. 장점이 많은 희망의 디지털 기기였지만, 첫 작동을 하지 못해 못 쓰는 일이 발생하다니.
요리는 그래도 내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던가. 추석을 맞아 음식을 빨리 준비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그날 인덕션을 결국 다루지 못했고, 그해 추석 차례를 처남댁으로 옮겨서 치러야 했다.




인류가 불을 발견한 이후 마음대로 만들 수 있기까지는 수만 년이 걸렸다. 불을 생성하는 데 사용한 여러 가지 방법을 상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선사시대 이래로 원시인들 사이에서 불을 만드는 방법으로 가장 널리 퍼져 있던 것은 마찰을 이용해 불을 생성하는 것이다.


부싯돌과 강철, 인을 사용한 성냥, 전기 등을 이용해 불을 쉽게 만들게 되면서, 현재 우리들은 불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문명의 각 발전과정에서 불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음식의 조리, 개간, 동굴의 난방과 조명은 물론 광석에서 구리나 주석을 추출해 청동을 만들고(BC 3000) 철광석에서 철을 얻을 때도(BC 1000) 요긴했다.


현대 과학은 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에너지 양의 지속적인 증가로 특징된다. 인간이 새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된 에너지의 대부분은 불의 양과 종류가 확대된 결과로써 생긴 것이다. 원자 에너지의 제어는 불을 이용하는 방법 중에 가장 최신 기술 버전이다.


이전 05화 분양보다 값진 선택, 리모델링 인테리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