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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상철 Mar 23. 2019

카톡방에서 펼치는 요가 매트

숭례문학당 온라인 운동모임 요가 수련 체험

요가는 낯선 체험이었다. 내 몸은 적어도 나무토막이었다. 유연성을 소홀히 대해 온 결과다. 이런 몸에 요가가 가능할까 의문의 날들이었다. 요가 모임은 온라인으로 이루어졌다. 숭례문학당 프로그램의 하나였다. 숭례문학당은 주로 공부하는 곳이다. 체력을 기르기 위한 활동도 한다. 요가만이 아니라 스쿼트, 걷기, 달리기 등 모임이 다양하게 있다.


목덜미에 땀이 내리고, 등골엔 땀이 새싹처럼 피어난다. 요가는 내 몸에 생소한 땀 길을 냈다. 첫 온라인 요가 모임 후 105일을 달려왔다. 하고 싶지 않은 날도 있었다. 그때마다 내 몸에 내 맘을 맡겼다. 그렇게 하루가 갔고, 또 하루가 왔다.


요가는 내게 절망의 의미를 깨닫게 해 줬다. 누구보다 굳어버린 절망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그건 몸이 아닌 맘이었다. 몸과 맘의 조응 그것이었다. 그렇게 요가는 몸과 맘의 불일치에 대한 단초를 주었다. 몸의 현실에 대해 맘이 솔직히 응대해주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단 하루의 수련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매일 밤 매트는 친구가 돼주었다. 오직 나만을 환대해줬고 어수선한 무게를 잘 견뎌줬다. 매일 밤 지나온 시간은, 52년이라는 낡은 골격을 조금씩 돌려세웠다. 그동안 쌓여온 몸의 현실이 그대로 맘에 새겨졌다. 뺄 것도 더할 것도 없는 육체의 성토였고 절규였다. 그 모든 과정이 하루의 나를 새롭게 확인시켜 준 것이다.


매일 밤 둘둘 말린 요가 매트를 편다. 요가는 늘 자기 전에 이루어진다. 요가 후 간단한 후기를 카톡방에 올린다. 매트를 말고 펴는 일이 소중했다. 내 삶의 공간에 매트가 들어온 것이다. 매트 한 장에 처음 체중을 얹은 날을 기억한다. 매트는 낯설어했을 것이다. 아직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눈치챘을 것이다. 매일 반복하면서 매트와 나는 한 몸이 돼갔다.

그 매트는 내게 꿈이었다. 매트에 의지하는 나를 발견했다. 별것 아닌 한 장의 매트가 희망을 품게 했다. 그렇지만 매번 절망감도 요구했다. 매트 한 장에 결코 모든 것을 걸지 않았다. 결국 매트의 마력에 제압되고 말았다. 매트는 삶의 입구이고 출구였다. 매트는 희망과 절망의 무대였다.


매트는 행복의 거점이었다. 육체의 절망을 인정했기에 희망을 품었다. 육체의 균형을 갈구했기에 고통을 참았다. 매트 한 장에 실은 비명과 온기는 몸의 진로였다. 매트 한 장에 얹은 무게와 흔적은 맘의 성장이었다. 매트는 희망이 절망을 상쇄하는 근거였고 보금자리였다. 매트는 그렇게 마음의 쉼터였고 재기의 장이었다. 하루를 정리하는 삶의 이유였다.


요가는 일상을 더욱 성실하게 만들었다. 모든 것이 몸으로 연결됐고, 맘으로 이어졌다. 매사에 신중함이 더해졌고, 또 다른 세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 않았던 걷기를 하고, 하지 못했던 생각을 하게 됐다. 중단된 과거도 소환해내, 현재의 상태로 불러 세웠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습작을 다시 써나갔다. 요가는 꺼져있던 몸의 회로를 끄집어내, 풍부한 나의 현실로 다시 살려놓았다.


그렇게 나는 매일 밤 ‘체담’을 나눴다. 돌아보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밤에 피는 장미보다 더 아련한 생장이었다. 숙면의 밤이 하루를 더욱 숙성시켰다. 수련은 늘 몸으로부터 파생된 질문이었고, 맘으로 새겨 나온 답변이었다. 매일 밤 나는 고통과 희열을 맛봤다. 누구도 가라 하지 않은 길을 밤마다 밟았다. 그리곤 꿈을 꾼다. 또 다른 내일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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