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게 어지간히 어려웠던 적이 있었다. 다음날 6시에는 일어나야 했기에 빨리 잠들기 위해서 책에서 읽은 대로 무수히 많은 양들을 한 마리씩 옮기는 상상을 시작했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숫자가 늘어갈수록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졌기에 이 방법은 나와는 맞지 않는구나라고 느끼고 잠시 다른 생각에 잠길 때의 일이다.
그날따라 낮에 보았던 서까래, 대청마루, 나무 기둥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에 지은 집이라고 했는데 재료로 쓰인 나무는 적당히 손길을 탔는지 윤기가 흘러넘치다 못해 오히려 살아있을 때보다 더 생기가 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중간마다 보이는 옹이의 자국만이 이 나무가 지금은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처음에는 오래된 나무 특유의 윤기에 사로잡혀서 쳐다보기 시작했지만, 깊게 파인 나뭇결이 신기해서 계속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기시감이 생겼다. 분명히 나뭇결을 따라 깊게 갈라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무거운 기왓장을 받치며 그 틈이 더 커지거나 휘지 않고 굳건히 버티고 있는 모습이 옆집 담벼락에 덕지덕지 발라져 있는 시멘트보다 단단하고 믿음직스러웠다.
나이가 들어 건축을 배우며 알게 된 지식이지만, 나무는 베어진 순간부터 오랜 기간 동안 건조되는데 그 나무가 품고 있는 물의 양, 즉 함수율이 점차 줄어들며 오히려 강도가 커진다. 이러한 함수율이 30%가 될 때를 섬유포화점이라 하며, 이때부터 강도가 이상적으로 발현되기 시작하기 때문에 나무를 어떻게 건조하냐에 따라 건축 자재로서의 성능이 결정된다.
물론 이러한 지식이 전무했던 어린 시절, 잠 못 드는 밤에 그날 있었던 일들을 돌이켜보며 생각을 했을 때는 그저 나무가 단단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오히려 그 틈이 더 커져서 집이 무너지면 어쩌지 하고 걱정이 됐는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쓰다 남은 찰흙으로 그 틈을 메꿔볼까 생각도 해보았다. 물론 뒷수습이 더 무서웠기에 행동으로 옮기진 못했다.
이런저런 걱정 때문이었을까. 스스륵 빠져든 꿈에서 나는 나무로 된 큰 건물을 보았다. 온통 빨간색으로 칠해진 나무가 +자 모양으로 격자무늬를 이루며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우리 집을 받치고 있는 나무 기둥보다 10배 이상은 커 보이는 곧게 뻗은 나무들이 서로를 지탱하며 높은 건물을 이루고 있는 모습에 잠시 넋이 나갔다. 그리고 높은 곳을 싫어하는 나는 차마 꼭대기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른 쪽으로 향해 걸어갔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서 뒤를 돌아보니 가까이서 봤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꼭대기의 절도 볼 수 있었다. 마치 큰 나무가 하늘로 솟아 있는 듯이 보였다.
서로 지탱해 주던 나무들도 멀리서 보니 하나의 나무처럼 보였다. 그때 불현듯 떠올랐다. 어쩌면 작은 나무 조직들이 모이고 쌓여서 큰 구조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 이 세상 자연의 이치가 아닐까.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지은 집이라는 것은 어쩌면 작은 단위의 자연을 재료와 구조로 엮어서 큰 단위의 새로운 자연을 만들어 내는 것. 원래부터 그곳에 존재했던 이치를 흉내 내면서 건축이라는 형태가 만들어졌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 말이다.
어린 시절 두꺼비 집을 지으며 터득했던 경험과 지식들이 무의식적으로 쌓이면서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버린 아이처럼 그날의 꿈속에서 보았던 나무로 지어진 절과 구조가 갑자기 떠올라 글로 남겨본다. 무의식과 자연의 모방, 그리고 건축 속에 숨겨져 있는 자연의 이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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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DX51 (51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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