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과거]돼지.

30년도 더 지났지만 아직도 눈에 선하다.

by 김특별

C시 A리는 늘 지루했다. 특히 P시를 떠나 1달 여를 좋으나 싫으나 붙어있어야 했던 방학 기간에는 늘어지는 일상과 그 일상을 버텨내는 인내심 지루함과 지저분함을 포기할 줄 아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나는 그런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나의 뇌리에 아직까지 강력하게 각인되어 있는 기억이 몇개 있다. 돼지와 소. 지금도 시골에서는 평화로운 모습으로 특유의 분뇨 냄새와 함께 언제든 별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평화로운 가축들이지만 내 기억회로에 생생하게 남아 30년도 더 넘은 아직까지 언제든 꺼내어 볼 수 있는 정도이다.


노쇠하셔서 일을 그만두시기 전까지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늘 논농사와 밭농사를 지으셨고, 그래서 집 대문 옆 외양간에는 농번기를 도와줄 소 한마리가 늘 여물을 되새김질하며 있었고 그 옆을 지키는 종을 알 수 없는 잡종 개 한마리가 할아버지 댁 가축의 전부였었다. 할아버지 댁에서는 돼지를 치지는 않았고, 그래서 할아버지댁의 주요 가축으로는 등장하지 않지만 내 기억속 주연을 담당했던 돼지에 대한 이야기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에 없지만 내가 국민학교 1학년 또는 2학년 정도의 어느 여름이었고, P시에서 여름방학을 맞은 나는 정례행사처럼 부모님 손에 이끌려 홀로 C시 A리 할아버지댁에 한달여 맡겨졌다. 할아버지가 주요 자리의 상석에 계셨던 것으로 기억나는 걸 보니 어떤 이유에서인지 특정 마을 잔치의 주체이셨던 것 같고, 그 잔치용으로 돼지를 한마리 사왔던 것 같다. 잔치가 있던 날 C시 A리의 할아버지 댁 옆 작은 공터와 그 옆을 지키고 있는 수령이 100년이 넘는 밑둥이 비정상적으로 크고 둥근 느티나무까지 활기가 넘쳤고, 내가 방학 때마다 봤던 평균적인 어른들의 수보다 훨씬 많은 수의 어른들과 아이들이 흥겹고 시끌벅적하게 할아버지 댁 주위에 모였다.


지금도 김장철마다 자주 보이는 붉은색 고무다라이가 여러개 있었고, 불 위에 놓이거나 매달린 커다란 냄비들에서는 물이 끓기 시작했다. 상 위나 옆자리에는 소금 간장 고춧가루 김치 등 각종 조미료들과 반찬, 알 수 없는 용도의 꼬챙이들과 부엌칼들 나무도마들이 준비되었고 어른들이나 아이들 할 것 없이 곧 클라이막스에 다다를 마을 잔치를 기다리며 목적이 있든 없든 모두 웃고 소리지르고 분주하고 말이 많았다. 어느 틈에 기다란 밧줄이 돼지의 목에 걸렸고 그게 불편했는지 꽥꽥거리기 시작했으며, 돼지 목으로부터 이어진 긴 밧줄은 수령이 100년이 넘는 느티나무 밑둥을 둘러 단단히 몇번이고 묶였다. 돼지 역시 사람들처럼 정신 없이 분주해지고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니기 시작하자 처음보는 강인한 인상의 아저씨들 몇 명이 밧줄을 손에 그러쥐고 잡아당기고 발로 차면서 돼지를 느티나무 옆 고랑으로 몰았다. 고랑은 원래부터 느티나무 옆에 있었으며 돼지를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보니 고랑으로 들어간 돼지는 양쪽으로 긴 고랑을 뛰어나가려고 용을 썼으며 그때마다 동네 사람들이 흥분한 채 소리를 질렀고, 그럴수록 강인한 인상의 아저씨들이 바짝 옆에 붙어 밧줄을 바투잡았고 점점 돼지는 점점 움직이기 어려워졌다. 십여분이 지나 돼지는 상당히 잠잠해졌고 행동반경과 움직임이 많이 작아졌다.


어느새 목장갑을 낀 또다른 아저씨가 나무자루로 된 큼직한 망치를 들고 나타났으며 아저씨들이 이제 사람들보고 비키라는 소리를 지르자 아이들이나 여자어른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돼지 주위를 둘러싼 남자어른들 뒤로 숨었다. 그 틈에 시야가 가려서 퍽 하는 소리 그리고 꽤액하는 엄청난 돼지의 우는 소리와 소리지르는 사람들을 보고서야 나는 한번도 보지 못한 장면이 진즉 시작되었음을 알았고, 황급히 눈을 돌려 쳐다본 장면에서는 돼지가 미친듯이 고랑을 뛰어 올라가려고 했던 걸 보니 목장갑의 아저씨가 솜씨가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밧줄은 더 팽팽하게 당겨졌고 목장갑 아저씨는 한두번 더 망치로 돼지 머리를 내려쳤으며 그때마다 사람들은 소리를 질렀고 돼지 역시 엄청난 소리를 냈다. 끝내 엎어지듯 옆으로 쓰러진 돼지는 거친 숨을 몰아쉬다가 점점 잠잠해졌고 곧이어 강인한 인상의 아저씨들이 그 위로 끓던 뜨거운 물을 붓고 칼로 돼지 껍데기 털을 슥슥 밀어냈으며 여전히 사람들은 활기차게 웅성댔다. 어느 정도 면도가 된 돼지 옆에는 붉은색 고무다라이와 어떤 용도로 썼을지 모르겠는 다양한 재질과 모양의 세숫대야같이 생긴 것들이 놓였다. 돼지털이 벗겨질동안 담배를 피우던 목장갑 아저씨는 그새 부엌칼보다는 작으나 손잡이가 튼튼하게 생긴 칼을 들고 등장했다. 칼은 처음에 돼지의 멱을 푹 찔렀고, 이미 죽은 것으로 보였던 돼지는 다시 한번 이상한 소리를 내며 크게 꿈틀거렸으며 아저씨들은 다시 한번 밧줄을 꽉 잡고 눌렀다. 멱에서 치솟듯 나온 뜨끈한 피는 이미 옆에 놓인 양철모양 세숫대야에 콸콸 쏟아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쏟아진 선지는 상당한 양이어서, 커다란 양철대야 몇 개 이상을 계속 채웠다.


대야에 받아낸 피와 대야에 들어가지 못한 피가 고랑의 흙과 만나 새빨갛게 피거품을 남기며 바닥으로 스며들었으며, 이윽고 돼지는 하늘을 향해 배를 드러낸 형태로 바닥에 눕혀졌다. 돼지 절명의 마지막 순간을 결정했던 칼은 다시 한번 돼지의 윗배 부분으로 들어갔고 들어간곳으로부터 일자로 죽 그어졌으며 아마도 그 순간 소리가 있었다면 부왁 이런 소리였을 것이다. 일자로 그어진 틈에서 돼지의 창자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밖으로 일제히 쏟아지듯 튀어나왔다. 돼지의 뱃속에 어떻게 저만큼의 창자가 들어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틈사이를 비집고 나온 양은 엄청나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튀어나온 것들은 칼질이 되고 분류가 되어 또 다른 세숫대야 모양의 통들에 여기저기 담겼다.


이 이후는 몇 개 장면만 기억이 난다. 돼지의 대장처럼 보이는 창자를 발로 잡고 꽉 눌러 당기면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배설물을 잡아 빼는 모습과, 떼어낸 돼지 오줌통이 바닥에 던져지고 아이들이 그걸 장난삼아 발로 찼더니 찰때마다 고약한 냄새와 안에서 오줌물이 새어나오던 모습. 그리고 내 마지막 돼지에 대한 기억은, 돼지의 해체가 거의 다 끝날 무렵 할아버지 댁 뒷간 옆의 창고에 할아버지가 C시 A리의 촌로 몇 분과 - 사실 이 장면 때문에 나는 아직도 그 마을잔치의 주체 중 한명이 할아버지였을거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 작은 화톳불을 피우고 은밀하게 앉아있던 장면이다. 내가 그 장소를 찾아들어간 것이 아니라, 밖에서 정신없이 이것저것 구경을 하던 손주를 할아버지가 손을 잡고 그리로 데려간 것이었으며, 내가 들어가자 촌로 중 한분이 뭔가를 석쇠에 얹어 화톳불 위에 굽고 있었다. 다들 떠들석한 판국에 뒷간 옆 창고는 상대적으로 조용했으며 할아버지를 포함한 촌로들은 누런 짚을 깔고 앉아 고기 타는 냄새가 나는 석쇠를 보며 모두 말을 아끼고 있었다. 석쇠 외에도 도마와 소주, 술잔들이 준비되어 있었으며 누군가가 도마에 구워진 것을 한입크기로 썰어 놓자 다들 소금에 찍어 소주와 함께 먹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도마 위에 있는 고기 한점을 소금에 찍어 나에게 건네셨다. 할아버지 이게 뭐에요. 라는 내 질문에 할아버지는 몸에 좋은 고기여. 얼른 입에 넣고 씹어. 라고 하며 내 입에 넣어주었으나 내 입과 혀에는 익숙한 고기의 식감이 아니었다. 억지로 삼키고 다시 한번 할아버지 이게 뭐에요. 라고 하자 그제서야 할아버지가 돼지 불알이여 이놈아. 엄청 귀한거여. 라고 하셨고 다들 껄껄거리면서 나보고 도로 나가서 놀으라고 했다. 그 당시에는 뭔가 놀림을 받았던 것 같았다. 굳이 맛있는 부위를 놔두고 왜 그걸. 나에게. 라는 생각을 하며 뒷간 옆 창고에서 나왔고 그 날의 나머지는 부지런히 여기저기 쏘다니며 삶거나 구운 돼지의 다른 부위들을 구경하고 얻어먹고 다녔다.


아직도 나에게 선명하게 남아있는 그날의 기억은 충격적으로 죽어가던 돼지의 모습이기도 하고 다시는 맛보지 못할 특수한 고기를 입에 넣어주던 할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는 않지만 아직도 그날의 돼지가 그리고 할아버지가 선명한 색깔과 소리와 냄새와 맛으로 내 머리속 기억회로에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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