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과거]어복쟁반.

아이러니하게 처음 맛본 곳은 한국이 아니었다.

by 김특별

20세기가 끝나고 21세기가 시작되던 어느 때 즈음에 어학연수를 가게 되었다. 너무나 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당시 사귀던 사람이 갑자기 어학연수를 간다길래 나도 그 사람을 따라 가고 싶어졌고 돈이 없던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 P시에 있는 부모님을 졸랐다. P시에 있던 큰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하기 위해 아버지는 집에 있는 돈을 털어 사업에 밀어넣은 상황이었고 나에게 보태줄 수 있는 여력은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무조건 어학연수라는 것을 가보고 싶었기에, 코엑스 유학박람회를 통해 알게된 모 유학원을 통해, 학생 신분으로 일하는게 가능했던 나라 중 하나였던 영국의 런던에 소재한 매우 저렴한 영어학원을 찾아냈고, 비행기는 일단 편도만 끊는 것으로 했다. 6개월의 학원비(그래봤자 월 20만원 꼴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와 편도 비행기표를 끊는 것도 부담스러웠던 상황이었기에, 유학원을 통해 추가적으로 영국에 도착해서 살집에 거주하고 있던 한국인 분들을 통해 청소 일자리까지 미리 알아두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런던에서는 일주일도 안되어 모 학교에서 새벽 청소일을 시작했고, 돈을 좀 더 벌고 싶었던 나는 오후에 특수학교 청소도 맡아서 시작했다. (청소를 하던 유색인종은 늘 쓰레기 취급을 받았지만 여기서 더 얘기할 부분은 아니고) 그렇게 해서 나중에는 당시 환율로 월 150만원 정도 벌었던 것 같다.


어복쟁반을 위해 다소 장황한 서두를 시작했지만, 어쨌든 영국 어학연수 당시의 나는 일을 곧바로 시작했음에도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황이었고, 나중에서야 청소를 아침 저녁으로 두 곳을 뛰면서 그나마 경제적으로 넉넉해졌다. 그러던 어느날, 내 생일이었는지 아니면 주급을 받고 기분이 좋았던 날이었는지 아무튼 꽤 좋았 날에 비싼 외식을 하고 싶어졌다. 다만 조건이 있었다. 돈을 아끼기 위해 식빵에 소세지와 양파를 구워 끼워먹던 짓을 자주 했던 터라, 한국식당을 가고 싶었고, 거기서 늘 먹던 찌개류나 짜장면 말고 뭔가 요리스러운 걸 먹고 싶었다. 그래서 별다른 생각 없이 몇번 가봤던 한국 식당을 갔다. 누구랑 갔었는지, 한국 식당 이름이 뭐였는지는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기억이 나질 않지만 암튼 내가 기분이 좋았으니 산다고 했을거고, 그래서 당연히 친한 한국인 친구 2~3명이 같이 가지 않았을까 싶다. (당시 한국식당이 런던에 몇개 있었는데, 김치찌개부터 비빔밥, 짜장면, 전골류까지 정말 김밥천국 이상의 여러가지를 다 팔았다. 그리고 지금과 달리 korean food가 워낙 local의 extreme하고 exotic 한 음식으로 인식되고 있었어서, 영국 사람들-틈만나면 특유의 눈동자 위아래 굴리기로 유색인종을 쳐다보던-은 한식당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P시에서 어머니가 가끔 해주셨던 시원한 동태탕 같으면서 뭔가 그보다는 비싼 뭔가 없을까하고 메뉴판을 기웃거리던 나에게 '어복쟁반'이라는 난생 처음보는 이름이 거기 있었다. '어'가 들어가 있으니 내가 좋아하는 '어(魚)'가 들어가겠구나 생각하면서 마침 현지인들의 이해를 위한 메뉴판 사진을 보니, 그럴듯한 궁중전골 냄비 위에 뭔가 야채같은게 수북하면서 국물이 보이는 이미지였기에 나는 무조건 어복쟁반을 골랐다. 가격도 비싸서 마음에 들었다.


그러고 받아든 어복쟁반에는 충격적이게도 생선이 들어가지 않았다. 해산물을 엄청 먹고 싶었던 날이었으니, 스마트폰이 있었던 시절이라면 검색해보고 시키지 않았을 법도 했다. 아무튼 내심 기대했는데 당황스러웠다. 더 당황스러웠던 것은 맛이 예상외로 정말 좋았다.


그렇게 원하던 생선은 커녕 소고기가 편육형태로 잔뜩 들어 있었고, 소고기와 같이 계란과 만두, 쑥갓 등이 육수 위에서 보글보글 끓었다. 그것들을 가운데 있는 간장종지에 찍어먹었고, 나중에는 육수를 추가하고 면을 넣어 끓여서 먹었다. 흥에 겨워 소주도 먹었을 것 같았는데 기억은 나지 않는 걸 보면, 어복쟁반의 맛과 만족감 때문 아니었을까 싶다. MSG 덕분이었는지 주인아줌마의 손맛이었는지 아니면 한국스러운 정취에 취했는지 맛에 겨워 거의 안남기고 면까지 빨아먹듯 먹어치웠고, 국물 한입 고기 한입 계란 한입 만두 한입 면 한입 모두 내 위장에서 곧바로 내 피와 살로 변하는 느낌을 줄만큼 내 영혼과 육체를 끝까지 스며드는 맛이 있었다. 어찌나 맛있게 잘 먹었던지, 영국 있을동안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음식은 어복쟁반이었다.


그러고 영국에서 왜인지 다신 먹지 못했고, 그래서 영국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복쟁반을 먹고 나서는, 귀국하고 학교생활을 하면서 구직활동을 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어복쟁반을 잊었다. 어복쟁반을 맛본지 10년쯤 지난 어느날, 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나기로 약속했던 서울 선릉에 소재한 모 이북음식 전문점에서 어복쟁반이라는 반가운 이름을 보았고, 내가 영국에서 가장 좋아했던 한국음식이 어복쟁반이었다는 말에 친구들은 모든 테이블에 어복쟁반 대짜를 시켰고 부어라 마셔라 했다. 그날도 어복쟁반의 모든 내용물은 여전히 내 영혼과 육체를 타고 스며들었다. 영국에서 먹었던 것보다는 꽤 밍밍한 맛이었지만, 곧 그 맛에 익숙해졌다. 어쨌든 이곳은 이후 몇년간 내가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점들 중 하나가 되었고, 이후에 갈 때마다 늘 어복쟁반을 주문해서 먹었다. 지금은 어복쟁반을 하는 이북음식점들이 엄청 많아져서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메뉴가 되었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영국에서의 생활을 떠오르게 하는 사연있는 유별난 음식이다. 뉴몰든 쪽에 있었던 그 한식당은 지금 어떻게 변해 있으려나. 20년 정도가 지났으니 없어졌거나, 여전히 남아있다면 40대 중반이 된 지금의 나만큼 엄청 많이 변했겠지. 뜬금없이 가보고 싶고 그때 그 맛을 또 다시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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