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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특별 May 27. 2022

[나의 잔병치레답사기] 이하선종양 part 2.

예쁜 맘 예쁜 꿈

이하선종양 제거를 위해 여러가지 검사를 하고 드디어 수술 당일이 되었다. 귀 옆 부분을 절개하여 열고 종양을 제거하는 것이라, 전신마취 수술을 해야한다. 병실에서 대기하고 있으니 간호사가 어디론가 데려간다. 지금부터는 인상 깊었던 것만 적어보기로 한다.


1. 수술복을 입는다

집도의나 간호사들도 수술용 복장을 하는 것처럼, 수술을 받는 사람도 수술복을 입는다. 나의 경우에는 귀 옆 부분을 절개하는 두경부 수술인데도 양옆이 다 터진 다소 민망한 수술복을 입었다. (왜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수술중 내 몸에 일어나는 여러가지 반응을 보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민망함은 잠시, 이때부터 긴장감이 고조된다. 


2. 침대에 누워 이동한다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바퀴달린 침대에 누워서 천장에 있는 타일과 형광등을 보고 주위를 힐끗거리면서 수술대기실로 간다. 수술 모든 과정에서는 나를 만나는 간호사나 의사가 내 생년월일 이름을 꼭 확인하므로, 수술날 여러번 내 생일과 이름을 얘기했던 것 같다. 이동 침상에 누워 내가 움직이는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는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여러가지 생각이 들면서(수술이 잘 될까? 전신마취 처음 받아보는데 수술 도중에 깨면 어쩌지? 등등) 더 긴장된다. 


3. 수술 전 음악이 나오는 대기실이 있다

수술실로 곧바로 입장하는 것이 아니다. 상당히 큰 대기실이 있고 이곳에서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수술실 입장 전까지 침대에 누워 몇십분 이상을 기다리게 된다. 

천장은 일반적인 병원 천장과는 달리 안정감을 주는 고운 색의 그림들이 그려져 있고, 클래식과 같은 부드러운 음악이 상시 흐르고 있어서 침대에 누워 천장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큰 수술을 기다리는 다양한 사연의 환자들이 조금이라도 덜 긴장하게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다. 나역시 이곳에서 긴장을 좀 많이 풀었다. 


이 공간에서는 마취의들이 각 담당 환자들에게 가서 신원확인을 한 후 이것저것 질문한다. 내 옆에서는 뭔가가 사전에 체크되지 않았는지 의사 한명이 담당과에 전화해서 조용한 목소리로 화를 내고 있었다. 잘 기억은 안나지만, 상당히 사소한 것이었는데도 저렇게 따박따박 따지는 걸 보니, 전신마취수술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체크해야하는 건가 싶었다.


4. 드디어 수술실로

도대체 언제 들어가는거지..? 하면서 있으면 다시 간호사가 와서 내 신원을 확인하고 수술실로 데려간다. 짠 하고 들어가면 생각보다 공간이 밝고 (당연히 밝아야하겠지), 큰 공간임에도 예상외로 이것저것 밀도가 높다. (집도의, 간호사, 바닥에 뭔가 고무호스같은것도 보이고 + 각종 무서워보이는 장비 등등)

집도의들 몇명이 오늘 특별씨 수술을 맡았다면서 짧게 인사를 하고, 나한테 수술용 침대로 옮겨 누우라고 한다. 여기가 나한테는 2가지 부분에서 하일라이트였는데  

1) 원래 누워있던 침대와는 상대가 안되게 좌우폭이 몹시 좁다. 덩치가 좀 있는 나로서는 수술받다가 굴러떨어지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2) 내가 스스로 움직여서 수술용 침상에 눕는다. 나는 그래도 누군가가 내가 눕는 것을 도와줄 줄 알았는데, 민망한 수술복을 입고서는 수술관계자들이 쳐다보는 가운데 DIY해야 한다.(아마 몸이 불편한 분들은 간호사분들이 도와주실듯) 안그래도 환한 공간인데 뭔가 민망했다. 


5. 생전 처음으로 받아보는 전신마취

사실 이 부분은 잘 기억이 안난다. 왼팔 정맥에 꼽아두었던 곳으로 마취액이 주사된 것인지, 내 입에 씌운 호흡기 같은 것을 통해 마취기체가 흡입된 것인지 잘은 모른다.  

마취의인지 집도의인지가 이제 마취를 시작한다고 하고 숫자를 세었는지 긴장하지 마시라고 했었는지 기억이 희미하다.(벌써 10년도 넘었으니) 그냥 부지불식간의 찰나에 느낌도 없이 까맣게 블랙아웃이 되었는데, 이 과정은 위나 대장 내시경을 할 때 서서히 기분좋게 잠드는 프로포폴/미다졸람의 느낌과는 완전히 다르다. 


6. 수술후 회복실

어느 순간 잠에서 깨었다. 내 오른쪽 귀 옆으로는 뭔가가 붙어있는 것 같았고 머리가 몹시 무겁고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았기에 뭔가 현실세계 같지가 않았다. 그렇게 멍하니 누워서 촛점없는 눈을 어딘가에 맞춰보려고 시도하다가 현실감각이 돌아오게 된 것은, 바로 옆에서 나보다 먼저 수술을 마치고 나온 다른 분이 아프다면서 침상 위에서 힘없는 신음을 내고 침상위에서 몸을 분주하게 떨며 뒤척거리는 소란스러움 덕분이었다.

사실 나는 아프지는 않았고 얼른 감각이 돌아와서 가족들이 기다리는 병실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렇게 여기저기 들리는 환자들의 신음소리를 들으면서 몇십분을 대기하다보면 드디어 누군가가 내 신원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내 이동침상을 잡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상태가 좋으니 중환자실 같은 곳으로 가는 게 아니고 병실로 가는 것이다. 


7. 다시 병실로

회복실에서 나와서도 여전히 정신이 없고 뭔가 몽롱하다. 침대에 누워 조금 이동하니 기다리고 있던 어머니와 내무부장관님이 고생 많았다면서 반갑게 맞아준다. 4시간반인가 5시간인가를 기다렸다고 한다. 이때부터 나는 아직도 말을 듣지 않는 몸을 들썩이며 혀가 꼬부라진 채 침을 흘리며 노래를 불렀다. "마음이 예쁘면~ 꿈도 예쁘죠~ 예쁜 꿈 꾸면~ 나비 같이 날아~" 이 부분을 신나게 반복해서 목청껏 불렀다. (이 때 부른 노래는 산울림의 '예쁜 맘 예쁜 꿈'인데, 나는 이 노래를 산울림 앨범으로 들은 것이 아니라, 당시 첫째가 좋아하던 뽀로로를 같이 보다가 좋아하게 되었다.) 


침대 위에 노래를 부르는 동안 병실까지 같이 걷는 어머니는 어리둥절해했고, 수술이 잘 끝나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며 나오겠다던 얘기를 기억했는지 내무부장관은 웃었다. (훗날 어머니는 내가 수술을 받고 머리가 이상해진줄 알았다고 하셨다.)


수술 후 나에게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의외로 첫 소변을 봐야했던 때이다. 수술후 몇시간 내로 소변을 보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하니 강제로 소변줄을 꼽아야 한다고 해서(상당히 고통스럽다고 겁까지 줌) 나는 병실로 돌아와 정신이 어느정도 들자마자 화장실로 가서 20분인가를 서서 소변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아직 몸이 돌아오지 않아서 이뇨작용마저도 자의로 컨트롤하는데 꽤 오랫 시간이 걸렸는데 이 과정이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다.어쨌든 소변을 보는것을 성공하고, 그렇게 나는 인생의 첫 전신마취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며칠 후에 퇴원했다. 



PS.

<수술 후 어느정도 회복을 하고 병원안 산책 중에>

수술 과정을 가볍고 유쾌하게 적었지만, 내가 일주일 정도 있던 삼성서울병원의 암병동은 사실 생과 사가 엇갈리는 심각한 곳이었다. 손쓸수도 없이 커진 암조직을 제대로 수술도 못하고 덮어야했다는 이야기, 남자인데 유방암이 걸린 이야기, 몸이 아파 병원에 왔는데 이미 4기여서 병원 로비에서 펑펑 운 20대 젊은이 이야기, 그리고 누군가가 죽었다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이 병실에서 병실로, 환자들이 산책하는 작은 동산에서 여기저기 전파가 되고 슬퍼하고 덧없어하고 씁쓸해했다. 물론 누군가는 수술을 잘 마치고 나처럼 퇴원했겠지만.


나같은 나이롱 환자(이하선 종양은 암센터에서 수술을 하지만 심각한 건 절대 아니다)는 결코 닿지 못할 분위기가 거기 무겁게 머물러 있었고, 그 짧은 일주일동안이었지만 정말 많은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이때의 여러 기억이, 몇년 후에 읽게 된 김보통작가의 '아만자'라는 만화를 좋아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생사를 넘나드는 수술을 하고 계실 것이다. 다들 수술 잘 마치시고 병실로 돌아오는 길에 나처럼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즐거우시면 좋겠다. 그리고 건강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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