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만큼 아프지만 죽지 않는
1. 신사동
처음엔 누가 등뒤에서 칼로 찔렀다고 생각했다.
결혼 하기 몇년 전이었다. 친하게 지내던 과선배랑 신사역에서 된장숙성삼겹살과 소주를 먹고 2차로 노래방을 갔다. 노래하는 도중에 뭐라고 말할 수 없는 통증이 허리랑 등에 계속 느껴져서, 어쩔 수 없이 오늘은 일찍 파하자고 얘기하고 신사동 야쿠르트 빌딩(현재 hy 빌딩) 옆 언덕길을 힘겹게 올랐다.
갑자기 등뒤를 찌르는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엄청난 격통에 나는 바닥에 거의 쓰러지다시피 주저 앉아서 한동안 일어나질 못했다. 지나가던 누군가가 나를 칼로 찌른 줄 알았을 정도로 엄청나게 아팠다. 겨우겨우 선배가 잡아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나는 끽소리도 못내고 뒷좌석에서 아픔에 겨워 소리도 못지르고 엎어졌다 일어나 앉았다 누웠다 발을 동동 굴렀다가 하면서 정말 지랄발광을 했다. 당시 흘끔흘끔 백미러로 날 쳐다보던 기사의 그 표정 (⊙_⊙) 이 아직도 기억난다.
근데 그 끔찍한 고통은 석촌호수 앞에서 택시를 내리자마자 씻은듯이 사라졌다. 다음날에도 하나도 안아파서 나는 병원 가볼 생각도 안하고 멍청하게도 그렇게 그 일을 잊어버렸다.
2. 강화도
결혼 몇개월 전이었다. 당시 여친-현와이프-를 내 똥차(이 똥차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에 태우고 강화도로 여행을 갔다. 바람만 쐬고 오려고 했으나 바다가 보이는 횟집에서 광어회를 먹다보니 소주가 땡겨서 한잔했고, 그러다보니 1박을 하는게 낫겠다 싶어 횟집에서 같이 운영하는 2층의 싸구려민박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술을 잘 못마시는 여친은 일찍 잠들었고 나는 가게에서 사온 맥주와 과자안주로 혼자 2차를 했다. 상당히 기분 좋은 밤이었으나 몇년 전에 느꼈던 그 격통이 또 엄습해왔고, 당시 택시에서보다도 더 격렬하게 숙소 바닥을 온몸으로 구르며 고통스럽게 몸부림쳤다. 정말 너무 아팠다.
밤새 잠을 못자고(여친은 내가 아팠던 것도 모르고 잘 잤으나 다음날 내 얘기를 전해 듣고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벌건 눈으로 운전해서 돌아오는 길에 배와 등쪽에 묵직한 통증은 남아있었으나 밤사이의 고통보다는 덜 했기에 나는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고, 생각보다 금새 괜찮아졌기에 이러다 말겠지 하면서 병원 가는 것을 또 까먹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고통이 도대체 뭔지 몰라서 어느 병원 어느 과로 가는게 맞는지도 몰랐던 것 같다.
3. 삼성동
결혼을 앞두고 처남될 사람과 인사하려고 여친과 함께 호텔 부페에서 만났다. 맛있게 저녁을 먹고 나오는데 또 예전에 느꼈던 뭔가가 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격통은 아니었고 전조증상(뭔지 모르겠지만 너무 기분나쁘게 허리나 배가 아픈)이 계속되었다. 도대체 이 통증은 뭐지.. 정말 죽을병에 걸린 것인가.. 고민이 깊었지만 도대체 어디가 어떻게 아프고 원인이 뭔지 검색을 해보고 주변에 물어봐도 알수가 없었다.
부페에서 나와서 같이 걷던 여친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빠. 나도 잘 모르지만 아마도 요로결석일 것 같아." 지난번 강화도 사건 이후 예비신랑의 몸을 걱정하던 차에 여기저기 물어봤는데, 여친의 외할머니께서 그 답을 알고 계셨다. 외삼촌 중 한분이 오랫동안 요로결석을 알았기 때문에 내 증상을 듣고는 높은 확률로 요로결석이라고 하셨다고.. 암튼 여친은 병원에 빨리 가보자고 했지만, 데굴데굴 구를만큼의 격통이 없었기에 예전처럼 또 이러다 말겠지 하고 멍청하게 버텼다.
4. 분당 모 병원 응급실
전조증상은 며칠 지나지 않아 극심한 통으로 이어졌고, 나는 생전 처음으로 근무시간에 회사에서 기어나와 응급실을 내 발로 걸어들어갔다. 너무 아파서 숨을 쉴수도 없고 몸을 배배 꼬고 있던 나를 택시들은 절대 태워주지 않았고(내가 택시기사라도 안태워줬을 것 같은 비주얼) 그나마 회사에서 큰병원이 가까워서 나는 굼벵이처럼 기다시피 응급실을 갔다. 그 20여분은.. 내 인생에 가장 억겁과 같은 순간이었다. 진짜 태어나서 겪어봤던 고통중에 최고였고 말도 못하게 아팠다. (오죽하면 극형을 받아 마땅한 파렴치한 범죄자들 요로에다가 결석 10개씩만 넣어주면 자동 교화될거라는 말을 나중에는 농담처럼 하고 다녔다. 죽을만큼 아프지만 절대 죽지는 않으니.. 일벌백계의 효과가 있을 것이다)
배를 두손으로 움켜잡고 가쁜 숨을 몰아쉬어가며 응급실 접수처로 갔더니 보호자가 누구냐길래 나라고 하고 가까운 의자에 앉았다. 새우처럼 등을 구부리고 신음소리만 내고 있으니 잠시 후 간호사가 와서 어디가 아프시냐고 해서 배가 너무 아파요 죽을 것 같아요 라고 겨우 소리를 내어 얘기했다. 예전에도 이런적 있는지를 물어봐서 이런건 누가 요로결석이라고 한것 같아요 그거 외엔 잘 모르겠어요 라고 했더니 다른 간호사를 보고 "스톤~!" 이라고 외쳤다. 그 당시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뭔지 몰랐지만 병원에서는 결석을 스톤이라고 하는구나를 처음 알았.. 개뿔 돌이니까 스톤이지. 암튼..
그러고 20여분을 방치되었고 나는 더 심해진 통증으로 의자에서 온몸비틀기를 하며 굴렀다. 그때 한줄기 빛처럼 의사 한분이 지나가다 나를 발견하더니 아까 '스톤'이라 외치신 간호사분한테 버럭 화를 냈다. 환자가 이렇게 아픈데 아무 처치도 안하고 있다면서. 덕분에 나는 즉시 침대에 눕혀졌고 그 상태로 X레이를 찍으러 갔다.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고마운 의사분이셨는데 감사인사도 못했네)
X레이를 찍고나서 의사는 나한테 사진을 보여주면서 요로결석이라고 얘기해줬고(드디어 몇년간 나를 괴롭혀온 것의 이름을 알게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 돌은 현재 가장 아픈 부위에 있고 크기는 크지 않으나 자연 배출이 어려울 수 있다 그리고 여자가 애를 낳는 것 이상으로 고통이 심할 거다 얘기를 해주면서 진통제를 놔주었다. 이 즈음에 가까운 곳에서 술을 마시던 매제와 멀리 목동에서 근무하던 여친이 병원에 도착했고, 나는 진통제를 맞았으나 여전히 신음소리도 못내고 침대위에서 온몸을 비비 꼬았다. 너무 고통이 심해서 다시 의사를 불렀고, 의사는 생각보다도 고통이 너무 심한 것 같다면서 마약성 진통제를 추가로 다시 놔주었다. 그러고 몇분이 지나자 겨우 말을 할 수도 있었고 그렇게 다시 제대로 숨도 쉴 수 있었다.
당시 여친은 내가 침대에서 온몸비틀기를 하던 그때 침대 옆에 앉아서 지지리도 자기가 복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렇게 아픈거면 죽을병인 것 같은데, 그것도 잘 모르고 죽을병 걸린 사람과 결혼을 약속했구나 하면서.
암튼 몇시간을 그렇게 응급실에서 있다가, 하루 정도를 버틸 수 있는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고 나왔다. 진통제로 고통은 한시름 놓았지만, 어쨌든 내 요로에 걸려있는 결석은 빼야만 했기에.. 응급실에서는 다음날 해당 병원 비뇨기과 예약을 해주었다. 그렇게 또 다른 고통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