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노가더 일기 4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시국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갑자기 비상계엄이다, 내란이다, 나라가 시끄러워지는 통에 한동안 글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엄중한 시기에 한가하게 잡설이나 풀고 있을 순 없지요. 그렇다고 여의도로 달려갈 수도 없었습니다. 직장인 시절엔 광화문에 더러 나가긴 했었지요. 지금은 묵묵히 하루 한 대가리(공수) 채워 나가는 초보 노가더의 삶에 충실하는 편이 더 좋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어쩌면 각자의 삶에 충실한 덕분에 오늘, 지금, 현재 우리가 이토록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이번에 처음으로 국회의원들에게 그들에게 주어진 직무와 삶에 충실하라고 응원했던 것 같습니다. 위험천만하고 아슬아슬했던 모든 순간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순조롭고 평화롭게 지나간 것 같습니다.
이 시국에 오늘은 술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뜬금없이 웬 술?인가 싶을 수 있겠지만 저는 이번에 벌어진 일련의 모든 사건들이 술과 큰 상관관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습니다.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소문의 진위 여부와는 무관하게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그렇게라도 가정해보지 않으면 이 비현실적인 시국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면도 분명 있기 때문일 겁니다. 정말 ‘웃프’지 않을 수 없는 시국입니다.
시국은 그렇다 치고, 상시로 위험천만한 노가다 현장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도 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노가다 현장’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각인된 이미지들 가운데 하나가 점심시간에 함바집(건설 현장의 식당)에서 막걸리 한잔 마시고 나무 그늘 아래 쪽잠을 자는 인부들의 모습입니다. 과거와는 달리 이제 노가다 현장에서 술을 보기가 힘들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현장 어디선가 술병이 돌아다니는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안전을 위해 절대 금지해야 할 모습이지만 하루하루 고된 삶을 이어가는 노동자의 낭만적 시각으로 보면 ‘까짓 가볍게 한잔 마시는 게 뭐 대순가’ 싶은, ‘박절하게’ 생각할 수만은 없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제가 현장에서 지켜본 그들의 모습은 막걸리 한 병 몰래 품에 숨겨 놓고 서너 명이 나눠 먹는 수준이니까요.
관리자가 술을 마시는 경우는 얘기가 다릅니다. 절대 낭만적 시각으로 봐선 안 됩니다. 관리자의 작은 판단 실수나 관리 소홀이 큰 위험을 부르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으니까요. 어떤 관리자는 술을 마시면 아예 현장에서 사라져 버리기도 합니다. 원청 직원이나 상위 관리자의 눈을 피해 어디선가 숨어 잠이라도 청하러 간 것이겠죠. 관리자가 없으니 현장 상황은 알아서? 돌아가게 됩니다. 한편 관리자가 술을 마시면 아래 인부들까지 덩달아 한잔 더 마시기 마련입니다. 달뜬 분위기는 싸움이 되기도 하고 작은 사고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큰 사고가 나지 않으면 다음 날도 술과 함께 하는 같은 날의 반복인 것입니다.
초보 노가더인 제가 인력소장에게 감히 반기?를 들고 특정 현장을 가릴 때가 있는데 1순위가 바로 위의 경우입니다. ‘남자답다’는 정서가 최고의 덕목인 노가다 현장에서 웃음거리가 될 각오를 하고 저는 그냥 다른 현장으로 도망가 버립니다. 몇 번인가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작은 사고의 장면들을 똑똑히 목격하고부터는 말이지요.
어쩌면 정말 이 시국은 술 때문에 벌어진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더 자주 하는 요즘입니다. 초보 노가더에 쫄보인 저로서는 지금의 정치판이 노가다판보다 훨씬 위험해 보입니다. 역시 결론은 오늘도 한 대가리 채우는 노가더 삶에나 충실하자! 면서도 한편 아시바(원형 파이프)를 정리하다 말고 곰곰 생각하다 보면 이런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술 때문에 벌어진 일, 술 때문에 어그러진 것일 수도 있겠다 하는...
부디 주취감경은 없기를.
2024/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