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이경필 목사, 1910~1920.
할아버지는 충북 옥천 전주 이 씨 차남으로 1876년 6월 출생. 1903년 8월 대한제국 정부 9품 종사랑에 임명됨. 국세징수 업무. 1906년 금산에서 처음으로 세례를 받음. 세례자 마로덕 선교사. 1915년 평양신학교 졸업 후 마로덕 선교사와 함께 전북 이리 여산지방 5개 교회를 목회. 이후 1917년 이후 목포 양동교회 목회, 1919년 3·1 운동 당시 이경필(제8대) 담임목사는 교인들을 비롯해 영흥학교, 정명여학교의 학생, 교사들과 함께 목포에서의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전개함으로써 독립의지를 보여주었다. 1921년 이후 제주도 모슬포 교회당 신축과 자립에 사재를 희사하며 기여, 1930년 이후 광주 금정교회 등에서 목회.
할아버지 이경필 목사와 할머니 박애란 집사. 1931~1940.
할아버지는 아들 하나, 할머니는 딸 하나 두고 각각 배우자와 사별했다. 할머니는 진도에 귀양 온 박 씨 집안의 따님. 1890년 4월 출생. 모교인 목포정명여고에 인력거 타고 강의하러 다녔다. 두 분이 재혼하여 1919년에 아버지 元主원주 출산.
할머니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이원주, 고창고보 5학년, 1937. 예술제에서 노래 부르기 직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