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사범 심상과 교수와 학생들. 1938~1939.
오른쪽에서 세 번째 손태희 학생이다. 어머니의 생모 이평안여사가 충남 서산군 태안면 손명환댁에 씨받이로 들어갔다. 아들을 생산하지 못했으나, 그 댁에서 외할머니가 데리고 온 딸에게 손 씨 성을 마련해 주고 재산을 마련해 주어 모녀를 내보냈다. 외할머니는 손 씨 집에서 받은 재산으로 과자공장을 운영하고 재산을 일구어 딸 손태희를 양육함. 어머니 손태희는 숙명여고보에 떨어지고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에 들어갔고 수석졸업한 것으로 알고 있다.
충남 소학교 복수학년을 담임하고 전체 학년 율동 가르쳐서 학교 운동회를 성공적으로 치름. 너무 힘들어서 이 학년을 가르치고, 휴직. 학생들 연령대가 다양해 보인다. 선생보다 더 나이 많은 학생도 있어 보인다. 동생을 학교에 데리고 다닌 학생들도 있었구나. 맨발에 고무신 신거나, 게다를 신은 학생도 보인다. 교장은 일본인 같다.
혼인전이나 혼인 직후 손태희, 1941~1942.
이지적이다. 학교에 근무할 때 입었던 저고리인 걸로 보아 선보기 위한 사진이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