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트라우마가 먼저 치유되어야 한다.

by 이순미

임상심리학자 니콜 르페라는 《내 안의 어린아이가 울고 있다》에서 평생 트라우마를 전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고 한다. 신경학자 로버트 스케어의 정의로는 ‘비교적 무력한 상태에서 발생하는’ 모든 부정적인 인생 경험이 트라우마다. 부모가 자신의 아동기 트라우마에서 비롯되어 해소되지 않은 고통스러운 감정을 잘 다루지 못한 채 아이를 키우는 경우도 많다.

니콜이 정리한 아동기 트라우마의 6가지 형태를 알아보자.

아이의 현실을 부정하는 부모

어떤 사람과 함께 있으면 불편하다고 엄마한테 털어놓았는데, 엄마는 “그냥 너한테 잘해주려고 그러시는 거지. 고맙잖아. 예의 바르게 굴어라” 부모가 아이의 현실을 부정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아이에게 자신의 느낌, 기분을 부정하라고 가르치는 셈이 된다. 자기 자신을 불신하게 된다. 해소되지 못한 감정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은 보통 아이의 감정 표현을 불편하게 여기고 무시하려고 든다. 불편한 감정을 털어놓는 아이에게 “긍정적이어야 해”라고 단정적으로 조언하면 자신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신뢰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현재 느끼는 기분이나 감정을 비록 화나 우울등의 부정적인 감정일지라도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는 것이 실제적인 긍정성이다.

나는 세 살 때 부모가 이혼하고 할머니 슬하에 자랐다.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생모와 함께 살게 되었다. 함께 살다 보니 내가 경험한 것과 어머니가 나의 세계를 판단하는 것은 너무나 달랐다. 나는 뭔가 부족하고 잘못하는 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 느낌과 기분이 진실인지 어머니의 관점이 옳은 건지 헷갈렸다. 자신의 현실이 부정되는 경험을 반복하다 보면 자신감과 자존감이 떨어지게 된다.

대학교 4학년 때 이장호교수님이 강의하신 상담심리학개론강의시간 첫 시간에 인간관계에 문제를 느끼거나 해서 개선하고 싶은 사람은 짐단상담이라는 것을 시작하니, 학생생활연구소에(요즘은 학생상담센터라고 한다) 신청하라고 하셨다. 나는 뛰어가서 신청했다. 한참 집단상담에 참여하던 중 어느 날 교수님이 나보고 화를 내본 적이 있냐고 물으셨다. 그 말이 내게는 충격적이었다. ‘화를 내도 된다고?’

아이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부모

아이들은 성장기동안 부모에게 특히 엄마에게 ‘엄마 나 좀 봐줘, 나 좀 봐줘’ 하면서 부모의 관심을 구한다. 부모가 자식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비를 대고 하지만 정서적으로 소통된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부모가 자신의 감정에 압도되어 있고 장기적 스트레스에 온 정신이 팔려 있거나 자신만의 생각에 사로잡혀서 바쁘게 일하느라 자기 앞에 있는 아이를 제대로 바로 보지 못할 수 있다. 부모가 정신적으로 함께 있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와 깊은 정서적 관계를 맺지 못한다.

나의 경우 고등학교교사로서 기진맥진한 상태로 집에 돌아와 준비된 식사 후 싱크대 위찬장에 머리를 기대고 설거지를 하곤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딸은 내 옆에 와서 재잘재잘 제 이야기를 해댔다. 에너지가 고갈되어, ‘얘는 왜 이렇게 말이 많은 거지?’ 했다. 아이를 바라보며 얘기를 들어주지 못하고, 설거지를 마치고는 방에 가서 쓰러져 누웠다.

아이를 통해 대리만족하려는 부모

무대파 부모라고도 볼 수 있다. 자신의 명예욕과 성취욕, 혹은 관심받고 싶은 욕구를 채우기 위해 아이를 밀어붙인다. 아이를 통해 대리만족하려는 부모는 자신이 실패자 거나 어떤 면에서는 부적절한 사람이라는 고통스러운 믿음이 있을 수 있다. 이런 부모밑에서 자라는 아이는 성공해야 한다는 엄청난 압박감을 느낄 수 있다. 또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려고 진정한 자기의 일부분을 버리기도 한다. 번듯한 직업군에 속하는 사람들 중에 간혹 어떤 사람은 변호사를 관두고 공예공방을 차리거나, 치과의사를 관두고 부동산사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한 외국인 신부의 인터뷰기사에서 읽었다. 형제 중 가장 똑똑한 남동생이 의대에 합격한 날 자살했다 한다. 자식들 직업이 변호사 아님 의사여야 한다고 강력히 밀어붙혔던 엄마 원대로 다 이루어 주었으니 이제 됐죠?

경계를 보여주지 못하는 부모

여기서 경계는 심리적 공간의 경계를 뜻한다. 한쪽 부모가 자식에게 다른 부모와의 개인적인 문제를 험담할 때도 경계 침범이 일어난다. 친구한테 털어놓을 내용을 자식한테 털어놓는 경우 아이는 압도되거나 다른 부모에 대한 부정적인 얘기에 불편함을 느낀다. 또, 아이의 일기를 읽고 간섭을 한다거나 야단을 치는 일은 부모자식 사이에서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침범을 자주 경험하면서 성장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침범도 허락하거나 자신도 다른 사람의 경계를 대수롭지 않게 침범할 수 있다. 반대로 개인적인 정보를 극단적으로 비밀로 해서 보호할 수도 있다.

외모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부모

우리 모두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평생 지니고 산다. 부모가 항상 남부끄럽지 않은 이미지 유지에 가치를 많이 두는 모습을 보며 성장하는 아이는 본인의 있는 그대로 모습보다는 비치는 모습을 중요시하는 태도를 갖게 된다. 쇼윈도 부부라는 말이 있다. 외부에 비치는 모습은 그럴듯하게 포장하지만, 실제로 화목하지는 않은 부모의 모습을 보고 아이들은 가면 같은 페르소나를 발달시킨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부모

보통 우리는 감정이 일어날 때 그 감정을 경험하고 감각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감정에 이름표를 부칠 수 있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고 조절할 힘을 가지게 되는 시작점이다.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감정을 몸과 기분으로 알아차리는 것이 먼저다. 감정을 알아차리면 감정과 혼연일체상태에서 벗어나 감정과 약간의 거리를 둘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부모가 화가 나면 화가 하나가 되어 소리 지르거나 물건을 부수거나 사람을 구타하거나 하는 경우 아이들은 불안하고 집을 편안하게 느끼지 못한다.

또 다른 경우는 격렬한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침묵하거나 다른 사람을 무시한다. 극단적으로 감정을 표출하거나 감정을 차단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면 감정조절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심리치료사 린지 깁슨은 정서적 미성숙이란 ‘아이의 정서적 욕구를 충족하는데 필요한 정서적 반응 부족이라고 했다.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는 외롭다. 따뜻한 밥을 먹게 해 주고 편안히 잘 수 있고 학교공부시켜 주는 것만으로는 한 사람이 온전하게 성장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

나의 경우 나이 들어서까지 어머니를 원망했다. 한참 정신분석 스타일 심리상담을 받을 때는 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올라와서 연락을 두절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은 현실은 어머니가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30대에‘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이런 패턴을 내 대에서 끊겠어’ 결심했는데, 15년이 지나 딸한테서 ‘나는 아이를 낳으면 엄마한테 안 맡길 거예요. 내 대에서 끊을 거예요’ 소리를 들었다. 나 역시 정서적으로 무능한 엄마였다. 아이를 잘 키워야지 하고 결심하거나 신앙생활과 기도를 열심히 한다고 정서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은 아님을 나의 경우나 다른 사람의 경우에서 체험했다. 정서적 성숙 역시 훌륭한 모델을 따라 배우고 소통기술을 배워 훈련해야 하는 분야다. 정서적 결핍상태의 원가족에서 자랐다 할지라도 정서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길이 있으니 희망이 있다. 정서적 지지와 모델이 될 사람을 찾으면 된다.

부모가 자녀에게 느끼게 해 주면 중요한 태도는 ‘실수할 수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돼’이다.

부모가 아이의 현실을 경청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면, 아이는 진정한 자기의 의견과 기분을 바깥세상에 표현하고 의문을 던질 수 있다. 안전한 심리적 공간에서 아이는 정직성과 안정성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안전이 보장된 곳에서는 주변 세상을 자유롭게 탐색하고 마음껏 실수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난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역경이 닥쳐도 자신의 내적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에 회복탄력성이 높아진다.

나의 경우 대학 3학년 때 짝사랑하다 차였다고 느꼈을 때 우울증이 왔다. 아침마다 일어나기 싫고 밤이 되면 조금 나아졌다. 그때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소리가 ‘날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엄마가 있으면 좋겠다.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난 짓 할 때도 그냥 존재 자체로 사랑해 주는 엄마가 있으면 좋겠다!’ ‘너 내 맘에 안 들게 그딴 식으로 행동하면 나는 너하고 말 안 한다.’ 침묵으로 날 대하는 엄마와 10대를 보내며 모성결핍을 느꼈던 것 같다. 이제 와서 돌이켜 보니.

아이가 학교에서 겪었던 일, 누군가와 겪었던 일을 얘기해도 부모가 제대로 듣지 않고, 아무 일 없었다는 식으로 다 너를 위해서 하는 일이야 하며 넘어가 버릇하면 부모한테 점점 이야기하지 않게 된다. 크고 작은 학교폭력을 경험하기 시작할 때 부모와 긴밀히 소통하면 피해가 확산되는 것을 멈출 수 있다. 세상에 어떤 일을 경험했어도 그 얘기를 털어놓을 사람이 한 사람만 있으면 사람은 죽지 않는다고 한다.

정서적 성숙 가운데 하나는 오해를 받아도 평온을 유지할 수 있는 태도이다. 고통을 견디어 나가는 것도 정서적으로 힘이 있다는 증거이다. 정서적으로 성숙해지면 나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커진다. 차이를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또한 정서적으로 성숙하면 자신의 정서적 한계를 알고 두려움이나 죄책 감 없이 자신의 상태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다. 정서적으로 성숙해 가면 역경이 닥쳐왔을 때 압도되어 쓰러지거나 남을 원망하다가도 다시 정신을 추스를 수 있다.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안팎의 자원을 찾아내어 활용할 수 있다. 에리히 프롬의 말이 생각난다. 오직 자기만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나의 정서적 치유와 성장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적어보자.

새벽에 물 마시기,

명상과 독경, 기도

걷기나 운동,

아침 텃밭 일하기,

글이나 그림으로 무작정 일기 쓰기,

경전이나 의식계발 책을 필사하기,

노래하거나 춤추기, 기타 놀이나 취미생활,

실력 있는 상담자와 상담, 특히 춤동작 통합예술심리상담,

아로마 감정오일세러피,

공동체 찾기,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성숙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기,

하나만이라도 시작해 보면 된다.


자기를 치유하는 것은 주변 세상을 치유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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