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 시작, 45일간의 미국 로드 트립
새벽 5시 30분, 우리는 에어비앤비를 체크아웃하고 모든 짐을 차에 실었다. 이틀 동안 차박을 위해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하나 구비하고 세팅까지 어느정도 마쳤다. 떠나기 전, 아침을 맞이할 장소로 UCLA 근처의 스타벅스를 선택했다.
세계 일주를 준비하며 우리는 단순히 여행만 하다 지칠까 걱정했다. 어떻게 해야 여행 중에도 틈틈이 자기 계발 시간을 가질 수 있을지 고민했다. 평소에도 출근 전이나 주말 아침이면 스타벅스에 가서 따뜻한 음료와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습관이 있었기에, 세계 일주 중에도 매일 아침 카페에 들러 글을 쓰고 이야기를 나누는 루틴을 지키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오늘, 그 루틴의 첫걸음을 UCLA 스타벅스에서 떼기로 한 것이다.
미국의 스타벅스는 대부분 새벽 4시 30분이나 새벽 5시와 같이 매우 이른 시간에 문을 연다.
UCLA 스타벅스는 내 짝꿍에게는 특히나 뜻깊은 장소였다. 대학 시절 이른 새벽마다 이곳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던 기억이 깃든 곳이기 때문이다. 그 추억이 담긴 장소에서, 이제는 우리의 새로운 여행 일상을 시작하는 게 왠지 모르게 의미 있게 느껴졌다. 한 시간 정도 글을 쓰고 이야기를 나눈 뒤, 우리는 첫 번째 목적지인 말리부로 출발했다.
어제 갔던 산타모니카와 오늘 방문한 말리부 해변은 각각 활기와 고요함으로 나뉜다.
산타모니카가 활기차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해변이라면, 말리부는 고요하고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느끼기 좋은 곳이다. 특히, 말리부의 Point Dume Natural Preserve는 나만의 숨겨진 보석 같은 장소다. 오랜만에 이곳을 찾게 되어 설렜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넓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던 중, 어디선가 바다사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를 다섯 번은 왔는데 바다사자 소리는 처음이야!” 기대에 차서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니, 바위 위에서 햇볕을 즐기는 바다사자들이 보였다. 헤엄치며 한가롭게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에 우리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예상치 못한 만남에 감사하며 말리부의 자연을 충분히 즐긴 후, 다음 목적지인 산타바바라로 향했다.
산타바바라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미국 도시 중 하나다. 말리부보다도 더 조용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곳은 그 아담한 크기만큼이나 아늑하다.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도시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산타바바라라고 할 정도로 이곳의 매력을 사랑한다.
산타바바라에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찾아간 곳은 파머스 마켓이었다.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이 시장에서는 현지 농부들이 직접 재배한 신선한 농산물을 만날 수 있다. 파머스 마켓에서만 느낄 수 있는 현지의 따뜻함과 활기, 그리고 각양각색의 농산물들이 늘 나를 설레게 한다.
미국 파머스 마켓을 여러군데 다녀봤지만, 짝꿍이랑은 가본적이 없어서 이번 미국 여행때는 꼭 파머스 마켓을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침! 토요일인 오늘 딱 파머스 마켓이 열리는 날이었다. 미국 파머스 마켓은 대부분 오전 8시에 열어서 오후 1시에 닫는데, 이곳도 그랬다.
시장을 돌아다니던 중, 내 짝꿍이 좋아하는 피스타치오를 파는 상점이 눈에 띄었다. 흰 수염의 할아버지께서 직접 재배한 피스타치오라며 하나 맛보라고 권하셨다. 나 역시 견과류에 큰 흥미가 없었지만, 그 바삭하고 고소한 맛에 깜짝 놀랐다. 할아버지는 이 피스타치오가 산타바바라 산에서 5~7년 동안 정성으로 키워낸 나무에서 수확한 것이라며, 자부심 가득한 미소로 설명해주셨다. 그 맛 속에 담긴 농부의 애정이 느껴져서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파머스 마켓에서 다양한 시식으로 가볍게 배를 채우고 나니 어느덧 점심시간이었다. 그래서 산타바바라에서 늘 찾는 Public Market으로 향했다. 여러 음식점이 모인 이곳에서 각자 취향에 맞는 음식을 주문할 수 있어 편리하다. 나는 '타이 똠양꿍 누들'을, 짝꿍은 이름부터 호기심을 자극하는 ‘해장 국수’를 선택했다. 국물이 있을 줄 알았지만 예상과 달리 볶음면이 나왔다. 국물 없는 똠양꿍이라니 상상이 안 갔지만, 시고, 달고, 짜고, 매운 맛이 어우러져 정말 맛있었다. 짝꿍의 해장 국수는 팟타이와 비슷한 맛이어서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밥을 맛있게 먹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려던 찰나, 아까 파머스 마켓에서 시식했던 딸기와 블랙베리가 떠올랐다. 미국에서 먹었던 딸기들은 대개 싱겁고 새콤해서 그저 그런 줄 알았는데, 산타바바라산 딸기는 달콤하면서도 적당히 새콤해 정말 놀라웠다. 일반 마트에서 파는 딸기보다 가격은 조금 비쌌지만, 한입 베어 물 때마다 전혀 아깝지 않은 맛이었다. 결국, 딸기와 블랙베리를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는 다시 떠나야 할 시간! 짝꿍이 나와 꼭 같이 가고 싶다고 한 "Big Sur"로 향했다.
짝꿍이 오랜 기억 속에 간직한 그 장엄한 해안 절벽과 태평양이 펼쳐진 풍경을 드디어 함께 보게 되어 나도 설렜다. 빅서는 캘리포니아 1번 고속도로를 따라 펼쳐진 절경으로 유명하다. 드라이브하는 동안 눈앞에 펼쳐지는 바다와 숲의 조화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약 4시간을 달려 도착한 빅서 브리지는 경이로웠다. 가장 미국스러운 모습을 한 브리지를 찾자면 이곳이 아닐까? 이곳에서 일몰도 보고, 일몰을 배경으로 컵라면과 샐러드로 저녁을 먹었다.
이번 여정의 미국에서의 첫 차박!
이제 차박을 할 곳을 찾아야 했는데, 어디를 가도 ‘주차 금지’ 표지판이 보였다. 호텔 주차장에서 잠을 잘까 했지만 주차권이 없어 쫓겨날까 걱정되었고, 월마트 주차장은 너무 밝고 안전할지 불안했다. 결국 공원 관리자에게 물어보니 길가에 주차하는 것은 단속 대상은 아니지만, 만약 단속을 하게 된다면 벌금$1,000이 부과될 수도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결국 우리는 이리저리 돌다가 해변가에 차를 대고 잤고, 한번 잠에 들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모르는 나는 너무 피곤했는지 정말 깊은 잠에 빠졌다. 그런데 잠에 예민한 내 짝꿍은 혹시 자다가 누가 찾아오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 빠르게 달리는 차 소리에 잠을 계속 설쳤다고 한다.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스타벅스로 향해, 오늘 밤 차박을 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찾아보기로 했다. 이 여행의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잊지 못할 추억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끼며 또 다른 모험을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