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 시작, 45일간의 미국 로드 트립
첫날, 예상도 못한 "신용카드 없이는 차를 빌릴 수 없다"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시차 적응도 안 된 상태로 비몽사몽 잠에 빠졌다.
사실 나는 예전에는 걱정을 사서 하는 타입이었다. 중요한 일이 있으면 침대에 누워 별별 상황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밤을 지새웠다. 그러다 보면 복통, 두통, 심지어 치통까지 몰려와, 내 몸과 마음이 괴롭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하나, 스스로를 괴롭히던 중 2018년에 큰 결심을 하고 캐나다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내 안의 불안과 강박을 조금씩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 다행히도 지금은 미래의 걱정보다는 현재를 즐기며 사는 편이다.
그렇게 시차에 뒤척이다가 잠에서 깼고, 이번엔 정말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우리는 분업에 능한 편이다. 렌트카 재예약은 내 짝꿍이 맡고, 나는 짐 정리에 들어갔다. 짝꿍은 플랫폼을 바꿔가며 알라모(Alamo)에서 선결제로 예약을 끝냈다. 결혼 선물로 친구가 보내준 2,000달러의 트립닷컴 쿠폰 덕분에 약 850달러로 결제가 완료됐고, 예약 확정 메일이 왔다. 그런데 역시나 보증금 납부를 위해 실물 신용카드가 필요하다는 안내가 있었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심정으로 우버를 타고 LAX 근처의 알라모로 향했다. 묘하게 일이 잘 풀릴 것 같았고,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잘 될 것 같았다.
알라모의 분위기는 헐츠(Hertz)와 사뭇 달랐다. 직원들은 여유롭고 친절했고, 사람도 많지 않았다.
무하마드 라는 직원분이 우리를 응대해주었는데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던 중 보증금을 납부해야하니, 신용카드를 꽂아달라고 하였다. 나는 내 체크카드를 꽂았고, 그 직원분은 "음 이건 체크카드라서 안되니까 신용카드를 꽂아줘" 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나는 신용카드가 없다. 다른 외국 호텔에서도 보증금을 낼때 내 체크카드로 다 가능하다고 했는데 괜찮을까?"라고 하니, 그 분은 "그건 호텔이고, 렌트카 업체는 달라. 우리가 너의 카드를 체크할때 1) 이 카드가 메이저 은행으로 부터 발행됐는지 와 2)너의 이름이 우리 전산상 뜨는지를 체크해야 해" 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나는 신용카드가 없고, 1) 이거는 한국에서 정말 유명하 은행으로 부터 발행된 카드이다. 2) 이름은 카드에 나와있는데?" 라고 했다. 나는 3개의 체크카드를 가지고 있었고, 3개의 카드를 모두 시도해달라고 하였다.
내 짝꿍은 설마 오늘도 자동차를 빌리지 못할까봐 옆에서 긴장하고 있었고, 나는 오늘은 자동차를 빌릴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2년 전 미국에서 살면서 느낀 건, 직원들의 기분과 태도에 따라 해결될 일도 있고 아닐 때도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자신 있게 밀어붙였다. 세 번째 카드가 통과됐다!
우리는 드디어 차를 빌릴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빌리려던 차는 chevy suburban인데, chevy suburban은 몇 분 기다려야 빌릴 수 있다고 하여 짝꿍과 여러 자동차를 살펴보며 Jeep Wagoneer를 선택했다. 짝꿍은 더 기다려서 chevy suburban를 빌리고 싶다고 하였는데 나는 더이상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짝꿍을 설득하여 결국 우리는 Jeep Wagoneer를 타고 원래 첫날 가려던 UCLA의 훠궈집으로 출발하며, 드디어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짝꿍은 그 맛이 예전 같지 않다고 했지만, 나는 여전히 맛있게 먹었다. 유튜브에 “전 세계 마라탕 속으로”라는 컨텐츠를 올릴 계획이라, 이곳을 시작으로 마라탕 투어를 할 생각에 들떴다.
식사를 마치고 UCLA로 가서 2년 전 자주 데이트하던 추억 속 캠퍼스에 누워 여유를 만끽했다. 초록 잔디에 누워 있는 학생들을 보며 '드디어 미국에 왔구나'라는 실감이 들었다.
2년 전 일했던 베벌리힐즈의 부동산 앞을 지나치며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일할 때, 회사 구성원 중 유일한 동양인으로서 느꼈던 슬픔, 씁쓸함, 불안함, 그리고 즐거움과 설렘이 한데 어우러져 있던 날들이었다. 그 순간의 감정들이 스쳐 지나가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때 즐겨 마셨던 민트 모히토 커피로 유명한 필츠 커피(Philz Coffee)도 들러 추억의 맛을 음미했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자 짝꿍과 산타모니카 Ross에 들러 차박에 필요한 용품들도 사고 내가 미국에 있을때 거의 주식 처럼 먹었던 Chipotle에 들러 음식을 포장하여 산타모니카로 향했다.
이곳은 2022년 우리 커플이 첫 반지를 맞추고 노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던 특별한 곳이다. 해변에 도착했을 때, 넓은 하늘 위로 펼쳐진 분홍빛과 주황빛 노을은 사진과 영상으로 담을 수 없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노을을 배경 삼아 최고의 치폴레를 즐기며, 산타모니카에서의 추억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고는 숙소로 돌아왔다.
우리의 첫 차박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기대해 주세요!